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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 행세로 강제 혼인 피한 당돌한 규수」 [기문총화]

    돈만 많은 탐욕스러운 늙은 부자에게 억지로 시집갈 위기에 처한 영리한 처녀가 밤마다 소복을 입고 귀신 행세를 하여 파혼을 이끌어내고, 평소 흠모하던 가난하지만 정직한 옆집 도령과 짜릿하게 맺어진 이야기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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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내일모레 환갑인 늙은 두꺼비 영감에게 시집을 가라고요? 차라리 혼례 첫날밤에 소복을 입고 대들보에 목을 매달겠습니다!" 가세가 기운 양반가의 어여쁜 규수,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끔찍한 운명에 처합니다. 동네에서 돈 많고 탐욕스럽기로 소문난 데다 첩만 셋을 거느렸던 최영감의 후처로 팔려가듯 시집갈 위기에 놓인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영리하고 당돌한 은아 낭자는 가만히 방구석에 앉아 운명에 순응하며 눈물만 흘릴 위인이 아닙니다. 매일 밤 새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늙은 영감의 방 앞을 서성이며 기상천외하고 서늘한 귀신 소동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과연 그녀는 끔찍한 강제 혼인을 무사히 파혼으로 이끌고, 남몰래 밤마다 담장 너머로 애틋한 눈길을 주고받던 가난하지만 잘생긴 옆집 도령과 짜릿하고 뜨거운 사랑을 맺을 수 있을까요? 조선 팔도를 들썩이게 할, 통쾌한 해학과 아찔한 로맨스가 지금 귓가에 펼쳐집니다!

    ※ 1: 담장 너머의 밀회, 절망의 눈물 속에서 피어난 앙큼한 계략

    빛바랜 단청 아래, 스산한 가을바람이 마당의 마른 낙엽을 거칠게 휩쓸고 지나간다. 한때는 제법 위세를 떨쳤던 안동 김씨 가문의 고택이지만, 이제는 곳간의 쥐조차 기근에 허덕일 만큼 가세가 기울어버린 지 오래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는 앳된 여인의 목소리였다.

    "아버님! 어찌 제게 이러실 수 있사옵니까? 제 나이 이제 갓 열아홉이옵니다. 그런데 내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동네에서 늙은 두꺼비라 조롱받는 최영감의 후처로 들어가라니요! 그 영감이 벌써 부인 셋을 무덤으로 보낸 끔찍한 사내라는 것을 온 고을이 다 아는데, 차라리 제 입에 사약을 부어 주시옵소서!"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은아는 고운 치맛자락을 으스러져라 움켜쥐고 차가운 방바닥에 엎드렸다. 그 가녀린 어깨가 가을바람을 맞은 가녀린 코스모스처럼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차마 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애꿎은 곰방대만 방바닥에 탁탁 두드렸다.

    "오냐, 내 죄가 크다... 허나 어찌하겠느냐! 그 영감에게 노름판에서 빌려 쓴 빚이 이미 태산이라, 당장 내달 초하루까지 갚지 못하면 이 집구석마저 다 넘어가고 우리 식솔들은 모조리 관아에 끌려가 노비 신세가 될 판인 것을! 애비라고 네 청춘을 짐승 같은 늙은이에게 던져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줄 아느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거칠게 열리고 은아가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서러운 눈물이 하얀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려 고운 비단 동정을 적셨다. 밤이 깊어 달빛만이 처량하게 마당을 비추는 가운데, 은아는 습관처럼 뒤뜰의 야트막한 돌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진흙이 예쁜 당혜를 더럽히는 것도 모른 채, 돌담에 기대어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담장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급하면서도 다정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아 낭자! 밤이 이리도 찬데 어찌 그곳에서 그리 서럽게 울고 계시오. 낭자의 가녀린 울음소리에 글을 읽던 내 마음이 다 찢어지는 듯하여 견딜 수가 없소."

    담장 너머에는 옆집에 사는 가난한 선비, 도진이 서 있었다. 낡고 해진 도포 자락을 걸쳤으나, 달빛에 비친 그의 이목구비는 붓으로 정교하게 그려낸 듯 수려했고,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깊고 곧았다. 은아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참았던 설움이 폭발하여 돌담 위로 얼굴을 묻었다. 도진이 까치발을 들고 거친 돌담 위로 손을 뻗어, 굳은살이 박인 따뜻하고 큰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이토록 다정하고 곧은 사내를 두고, 내 어찌 그 탐욕스럽고 추잡한 늙은이의 품에 안긴단 말인가. 벼슬길이 막혀 매일 밤 호롱불 아래서 책만 파고드는 가난한 서생이면 어떠한가. 내 평생을 바쳐 지어미로 섬기고 싶은 이는 오직 도진 도령뿐인 것을...'

    은아는 도진의 손길에 잠시 기대어 눈을 감았다. 도진의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가 그녀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는 듯했다. 이윽고 눈물을 훔쳐낸 은아의 눈빛이 스산한 밤바람 속에서 묘하게 번쩍였다. 절망뿐이던 그녀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하나의 앙큼한 묘안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도령, 제게 묘안이 하나 있습니다. 그 탐욕스럽고 아둔한 늙은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제 발로 사색이 되어 혼담을 물리게 할 방도가요."

    은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은밀하고 발칙한 계획을 들은 도진의 두 눈이 화들짝 커졌다.

    "아니, 낭자! 그게 대체 무슨 당돌하고 위험천만한 소리요! 자칫하다간 낭자의 평판마저 진흙탕에 떨어져 영영 시집을 가지 못할 수도 있소!"
    "평판 따위가 무어 그리 대수입니까? 그 징그러운 늙은 두꺼비의 품에 안기느니, 차라리 동네방네 미친년 소리를 듣고 평생 홀로 늙어 죽는 것이 백번 낫습니다. 도령, 부디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굳은 결의가 담긴 은아의 시선이 도진을 똑바로 향했다. 도진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작고 차가운 두 손을 덥석 맞잡았다. 그의 커다란 두 손 안에서 은아의 손이 맥없이 빨려 들어갔다.

    "내 비록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서생이나, 낭자를 끔찍한 구렁텅이에서 건져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이 한 몸 던져 그 계획을 돕겠소. 낭자의 그 당돌함이... 참으로 나를 미치게 하는구려."

    달빛이 구름 사이로 숨어버린 어두운 돌담 곁, 두 사람의 손은 오랫동안 떨어질 줄을 몰랐다.

    ※ 2: 늙은 두꺼비의 행차와 소복을 짓는 서늘하고 적막한 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은아네 마을 어귀가 요란한 소리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으리으리한 사인교(四人轎) 한 채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좁은 골목길을 거만하게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가마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최영감이었다. 최고급 비단으로 지은 화려한 도포를 턱없이 부푼 배 위로 간신히 여미고, 얼굴에는 값비싼 사향 기름을 발라 번들거렸지만,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심술이 잔뜩 덕지덕지 붙은 입매는 어찌 감출 방도가 없었다. 한눈에 보아도 탐욕이 뚝뚝 떨어지는 기괴한 몰골이었다.

    은아의 아버지는 버선발로 마당까지 뛰어나와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최영감을 맞이했다. 최영감은 거만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몇 번 내뱉더니, 마루 위를 힐끗거리며 탐욕스러운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흐흐흐, 집안 꼴은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빈티가 줄줄 흐르지만, 그 계집애의 인물 하나는 기가 막히게 곱다지. 내 돈 몇 푼 쥐여주고 저잣거리에서 뒹굴 뻔한 양반가 규수의 어린 속살을 취하게 생겼으니, 이 얼마나 남는 장사란 말이냐. 오늘 밤 당장 사주단자를 밀어 넣고 길일을 잡아 속히 신방을 꾸려야겠구나. 오장육부가 다 끓어오르는 기분이다.'

    최영감의 음흉하고 끈적이는 시선이 은아가 머무는 안채 쪽을 향해 뱀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는 혼례 절차를 서두르겠다며 억지를 부려, 기어코 오늘 밤 은아네 사랑채에 묵어가기로 작정을 했다.

    같은 시각, 사랑채와 멀리 떨어진 좁고 어두운 별당. 은아는 바늘에 찔려 피가 맺힌 손끝을 입으로 호호 불며 숨죽여 바느질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무명천이 놓여 있었다. 상을 당했을 때나 입는 섬뜩한 소복이었다. 어제 도진과 돌담 너머로 계획을 모의한 직후부터, 그녀는 밤을 꼬박 새워가며 자신에게 딱 맞는 소복을 직접 짓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마을 전체가 무덤처럼 고요해진 깊은 밤이 찾아왔다. 사랑채에서는 최영감이 내지르는 짐승 같은 코골이 소리만이 드르렁거리며 흉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은아는 마침내 바늘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입고 있던 화려한 비단 치마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빳빳하고 차가운 질감의 새하얀 소복으로 갈아입었다. 옷고름을 헐겁게 매고, 참빗으로 곱게 빗어 넘겼던 긴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풀어 헤쳐 앞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은아는 청동 거울 앞에 앉아 서랍 깊숙한 곳에서 하얀 분가루를 꺼내 들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 가루를 얼굴 전체에 두껍게 찍어 바르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한 맺힌 귀신 그 자체였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미소가 그녀의 붉은 입술 위에 스쳤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시지. 그 더럽고 탐욕스러운 심장으로 죽은 자의 원한을 버텨낼 수 있을지. 오늘 밤, 당신의 그 알량한 담력을 시험해 주마.'

    가을바람이 창호지를 파르르 떨게 만드는 으스스한 밤. 소복 자락을 땅에 질질 끌며 별당 문을 나서는 은아의 맨발은 차가운 흙바닥에 닿을 때마다 소리 없이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 3: 한밤중의 귀신 소동, 탐욕스러운 늙은 영감의 추악하고 우스꽝스러운 민낯

    구름이 달을 삼켜버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 사랑채 안에서는 최영감이 뜨끈하게 데워진 아랫목에 누워 배를 긁적이며 요란한 소리로 코를 골고 있었다. 마치 늪에 빠진 커다란 두꺼비가 울부짖는 듯한 그 끔찍한 소리가 고요한 마당을 어지럽혔다.

    그때였다. 사방을 압도하는 고요함 속에서 찌그덕, 하고 낡은 마루통판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영감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몸을 뒤척였을 뿐,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윽고 사랑채 창호지 문밖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스윽... 스으윽...

    마치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종이를 긁어대는 듯한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었다. 최영감의 코골이가 멈칫하더니, 이내 그의 퉁퉁 부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번쩍 뜨였다.

    "음냐... 이 한밤중에 어느 발칙한 쥐새끼가 남의 단잠을 깨우는 게야..."

    투덜거리며 윗몸을 일으킨 최영감의 시선이 자연스레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창호지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최영감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며 쩍 벌어졌다. 문풍지 밖으로 사람의 형상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바람에 미친 듯이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 그리고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목덜미의 실루엣.

    "아이고... 원통해라... 억울해서 내 이승을 뜰 수가 없구나..."

    뼛속까지 시려오는 듯한, 쇳소리가 섞인 여인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최영감은 순간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고 뒷덜미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누, 누구냐! 당장 물러가지 못할까! 내 이 마을의 사또와도 호형호제하는 사이거늘!"

    최영감이 이불자락을 목끝까지 끌어올리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지만, 밖의 기척은 물러나기는커녕 점점 더 문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달그락, 문고리가 기괴하게 흔들리더니 스르륵 하고 사랑채 문이 틈을 보이며 열리기 시작했다.

    열린 틈 사이로 새하얀 소복 자락이 펄럭였다. 머리를 산발한 채,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 새하얀 얼굴을 한 여인이 천천히 방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바로 은아였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동자만 위로 치켜떠 최영감을 노려보며, 입가에 기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이놈... 네 탐욕에 눈이 멀어 억울하게 목을 매고 죽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 오늘 밤, 기필코 네놈의 숨통을 끊어 저승길 동무로 삼을 것이야..."

    소름 끼치게 변조된 은아의 목소리에 최영감은 그만 숨을 헉 들이켰다. 그의 눈에 은아는 영락없이 억울하게 죽은 처녀 귀신이었다. 은아가 핏기 없는 하얀 손(실은 밀가루를 듬뿍 바른 손)을 최영감의 목을 향해 천천히 뻗자, 최영감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다 벽에 머리를 강하게 들이박고 말았다.

    "사, 살려주시오! 내, 내가 돈이 많으니 굿을... 아니 절을 지어 영혼을 달래주겠소! 제발 목숨만은... 으아아악!"

    최영감은 눈물 콧물을 쏙 빼며 손발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기 시작했다. 그 거만하고 위세 등등하던 영감탱이가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꼴이라니! 은아는 하마터면 속에서 터져 나오는 폭소를 주체하지 못하고 실수를 할 뻔했다. 심지어 최영감의 다리 사이로 뜨뜻한 액체가 흘러나와 최고급 비단 이부자리를 노랗게 적시는 것을 보자, 은아는 경멸과 통쾌함이 뒤섞인 감정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더러운 목숨 따위... 내일 밤 다시 와서 거두어 주마..."

    은아는 음산한 한마디를 남기고 방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방 안에는 지린내를 풍기며 거품을 물고 반쯤 기절해 버린 늙은 두꺼비 한 마리만이 나동그라져 있을 뿐이었다.

    ※ 4: 달빛 아래의 숨 가쁜 입맞춤, 짜릿한 공모가 부른 아찔한 열기

    다음 날 아침, 은아네 저택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아침 해가 훤히 밝았음에도 사랑채에서 인기척이 없자 문을 열어본 하인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있는 최영감을 발견했다. 귀신을 보았다는 수치스러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최영감은 밤사이 급한 풍한(감기)이 들었다며 핑계를 대고는, 아침상도 물린 채 앓아누워 끙끙대기 바빴다. 그 우스꽝스러운 꼴을 멀리서 지켜보던 은아는 소맷자락으로 입을 가리고 몰래 키득거렸다.

    그리고 다시 밤이 찾아왔다. 은아는 주위의 시선을 피해 잰걸음으로 뒤뜰의 돌담으로 향했다. 담장 너머에는 이미 도진이 초조한 얼굴로 서성이고 있었다. 은아의 그림자를 발견한 도진은 다급하게 두 팔을 뻗어 은아의 가는 허리를 단숨에 끌어안았다.

    "앗!"

    은아가 짧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도진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 자신의 집 담장 안으로 훌쩍 넘겼다. 중심을 잃은 두 사람은 어두운 도진의 집 마루 위로 함께 뒤엉켜 넘어지고 말았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은아가 도진의 넓고 단단한 가슴 위로 엎어졌다.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도진의 가슴 안쪽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은아의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낭자, 무사해서 다행이오... 밤새 내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단 말이오."

    도진의 목소리는 평소의 점잖은 톤과는 달리 짙게 잠겨 있었고,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빛이 전에 없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은아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도진의 가슴에 얹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도령... 걱정 마셔요. 그 늙은 두꺼비는 오줌까지 지리며 혼비백산하였답니다. 내일 밤 한 번만 더 들쑤시면 당장 파혼을 외치며 도망갈 것이 뻔해요."

    은아는 통쾌함에 젖어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도진은 웃지 않았다. 아찔한 계획을 성공시켰다는 안도감과, 밤새도록 그녀가 무사하기만을 바랐던 애타는 갈증이 한데 뒤섞여 그의 이성을 뒤흔들고 있었다. 도진의 커다란 손이 은아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이내 그녀의 부드러운 목덜미로 올라와 뜨겁게 감싸 쥐었다.

    "이리도 겁이 없고 무모한 여인이라니... 허나, 나마저 낭자의 그 요망한 장난에 완전히 홀려버린 듯하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진은 은아의 뒷목을 강하게 끌어당겨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붉은 입술에 거칠게 포갰다.
    "읍...!"
    은아의 작은 입술 사이로 놀란 숨이 터져 나왔지만, 도진은 틈을 주지 않고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차가운 가을밤의 공기와는 대조적으로 두 사람의 입술은 데일 듯이 뜨거웠고, 숨결은 거칠게 뒤엉켰다. 짜릿한 공모가 가져다준 아드레날린과 오랫동안 숨겨왔던 애타는 연모의 정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도진의 혀가 은아의 입안을 헤집으며 달콤한 타액을 삼킬 때마다, 은아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짜릿한 전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도진의 넓은 어깨를 본능적으로 꽉 움켜쥐었다. 두 사람의 격렬한 움직임에 은아의 저고리 옷고름이 스르륵 풀려 느슨해졌고, 도진의 거친 숨결이 드러난 하얀 쇄골 위로 뜨겁게 내려앉았다.

    '이토록 뜨거운 사내였다니... 온몸이 불덩이처럼 녹아내릴 것만 같다.'

    은아는 눈을 감은 채 도진의 탐욕스러운 키스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달빛조차 숨죽인 어두운 마루 위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아찔한 쾌감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 5: 기절초풍 최영감, 혼비백산하여 야반도주를 감행하다

    숨 막히는 적막이 내려앉은 두 번째 밤, 은아네 집 사랑채는 그야말로 기묘한 공포의 도가니였다. 최영감은 어젯밤의 충격으로 인해 퀭하게 파인 눈 주위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 채, 방 한가운데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낮에 이웃 마을 용한 무당을 찾아가 거금을 주고 빼앗듯 가져온 부적이 땀에 젖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방 안에는 행여나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올까 두려워 호롱불을 무려 네 개나 환하게 밝혀두었고, 머리맡에는 놋쇠 요강까지 끌어다 둔 상태였다. 그 위세 등등하던 안동 제일의 부자 영감은 온데간데없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겁에 질린 늙고 초라한 사내만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었다.

    '내 오늘 밤만 두 눈을 부릅뜨고 무사히 넘기면, 날이 밝자마자 이 저주받은 집구석을 떠나리라. 어린 계집의 보드라운 살결 한번 취해보려다가 내 명에 못 살고 저승사자 구경부터 하게 생겼으니,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냐! 관세음보살, 옥황상제님, 제발 이 가엾은 늙은이를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최영감의 비겁하고 초라한 다짐이 귓가에 맴돌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방 안을 밝히던 네 개의 호롱불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파르르 떨리며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호지 밖으로 스산하고 차가운 가을바람이 훅 불어닥치더니, 치이익 소리와 함께 불꽃이 동시에 꺼져버렸다. 매캐한 연기 냄새와 함께 사랑채는 순식간에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완벽한 암흑으로 뒤덮였다.

    "히, 히익! 누, 누구냐! 불이 왜 꺼지는 게야! 밖에 게 아무도 없느냐! 마당쇠야! 돌쇠야!"

    최영감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문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을 때, 밖에서 어제보다 훨씬 더 기괴하고 거대한, 뼛속까지 울리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오—! 내 아이를 돌려다오! 내 정조를 앗아간 저 추악한 늙은이의 심장을 도려내어 지옥불에 던져버리라—!"

    그것은 가녀린 처녀 귀신의 소리가 아니었다. 담장 너머에서 도진이 커다란 빈 독에 입을 바짝 대고 토해내는, 땅이 흔들릴 듯한 거친 괴성이었다. 그 소리는 텅 빈 마당을 휘감으며 사랑채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어 은아가 미리 굵은 낚싯줄에 매달아 둔 짐승의 뼈다귀들이 창호지 문에 탁탁 부딪히며 기괴한 난타를 시작했다. 달그락달그락,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들이 문을 부수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끼이익—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내며 사랑채 문이 활짝 열렸다. 은아는 어제와 같은 새하얀 소복 차림이었지만, 이번에는 턱밑부터 가슴팍까지 붉은 닭피를 길게 흘린 채 나타났다. 달빛을 등진 그녀의 손에는 서늘한 광채를 내뿜는 시퍼런 식칼이 들려 있었다.

    "영감... 어제는 자비로운 경고였으나, 오늘은 끝을 보러 왔노라... 네놈의 그 더러운 탐욕으로 짓밟은 처녀들의 원혼이 나를 불렀다. 네놈이 또 다른 어린 규수의 몸을 취하여 생기를 빨아먹기 전에, 내가 먼저 네놈의 아랫도리를 갈기갈기 찢어 저승의 굶주린 개들에게 먹이로 던져주마!"

    은아는 마치 진짜 귀신에 씌기라도 한 듯,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방 안으로 한 걸음 성큼 들어섰다. 칼끝이 바닥을 긁으며 스스슥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최영감은 그만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마저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그는 비명을 지를 기력조차 잃어버린 채, 흡사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거리며 컥컥 소리를 냈다. 뒷걸음질을 치던 그는 머리맡에 두었던 요강을 그대로 걷어찼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물이 쏟아지며 비단옷을 처참하게 적셨다.

    "아, 아이고 사람 살려! 아니, 귀신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오! 내 두 번 다시 혼인 따위는 입에 올리지도 않겠소! 당장 이 마을에서, 아니 조선 팔도 어디든 당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겠소! 내 전 재산을 부처님께 바칠 테니 제발 저 칼 좀 치워주시오! 으아아악!"

    최영감은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모두 오물통에 내팽개친 채, 오직 목숨을 부지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방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굴러떨어졌다. 신발도 신지 못한 맨발에, 속곳 바람으로 헐레벌떡 뛰쳐나가는 꼴이 가관이었다. 그는 열린 대문을 향해 짐승처럼 질주하며 연신 "귀신이다! 사람 잡아먹는 원귀가 나타났다!"라고 발악을 해댔다. 은아는 대문 밖까지 쫓아가 식칼을 허공에 붕붕 휘두르며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공포를 심어주었다. 최영감이 타고 왔던 화려한 가마조차 버려둔 채, 그의 뚱뚱한 뒷모습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우스꽝스럽게 굴러가듯 사라졌다. 그가 흩뿌리고 간 요란하고 찌질한 비명만이 공허한 가을밤 하늘에 길게 메아리쳤다.

    멀어지는 최영감의 뒷모습을 확인한 은아의 입에서 마침내 참았던 폭소가 터져 나왔다. 손에 들고 있던 식칼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배를 부여잡고 웃는 은아의 곁으로, 담장을 넘어온 도진이 달려왔다.

    "성공이에요, 도령! 보셨습니까? 저 비겁하고 추악한 두꺼비가 제 발로 똥물을 뒤집어쓰고 도망가는 꼴을요!"

    도진은 흥분으로 달아오른 은아의 어깨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마주 웃었다. 두 사람은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 서로의 뜨거운 체온을 느끼며, 다시는 그 탐욕스러운 늙은이가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완벽하고 짜릿한 승리를 만끽했다.

    ※ 6: 통쾌한 파혼장과 두 연인의 은밀하고 달콤한 맹세

    이튿날 아침 햇살이 마당을 눈부시게 비출 무렵, 고을 전체는 최영감의 기상천외한 야반도주 소식으로 발칵 뒤집혀 있었다. 하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바에 따르면, 최영감은 새벽녘에 똥오줌을 지린 속곳 차림으로 헐레벌떡 자기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곧장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사시나무 떨듯 앓아누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채 해가 중천에 오르기도 전에, 최영감네 집사가 은아네 대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그의 손에는 바들바들 떨리는 글씨로 갈겨쓴 파혼장이 쥐어져 있었다.

    은아의 아버지는 툇마루에 주저앉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편지의 내용은 단순히 혼사를 무르겠다는 것을 넘어섰다.

    '내 영애의 뛰어난 용모와 덕성을 감당할 그릇이 못 되오니 이 혼사는 없던 일로 해주시오. 또한, 그동안 내어주었던 빚 백 냥은 천지신명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전부 탕감해 줄 터이니, 제발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만 올리겠소. 나를 찾지도 말고, 은아 낭자의 이름조차 내 귀에 들리지 않게 해주시오!'

    거의 애원에 가까운, 공포에 질린 자의 항복 선언이었다. 아버지는 들고 있던 편지를 파르르 떨며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이게...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냐... 귀신이라니?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신들께서 이 아비의 못난 짓을 꾸짖으시고 은아 너를 가련히 여겨 하늘에서 도우신 게 분명하구나! 오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절을 했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은아의 두 손을 꼭 움켜쥐었다. 빚쟁이의 굴레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이 늙은 아비의 주름진 얼굴에 환하게 번졌다. 은아는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겉으로는 놀라고 다행스럽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다소곳이 숙였다.

    '조상신이 도운 것이 아니라, 제 당돌한 계략과 도진 도령의 그 맹렬한 용기가 만들어낸 완벽한 기적이지요. 아버님, 용서하세요. 이 앙큼한 거짓말은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상황이 진정되자마자, 은아는 치맛자락을 가볍게 쥐고 뒤뜰로 잰걸음을 쳤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돌담 너머에는, 간밤의 그 요란했던 귀신 흉내꾼은 온데간데없이 단정하고 늠름한 선비의 태를 갖춘 도진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은아의 그림자가 아른거리자 도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지난밤의 긴박함 대신, 오직 서로를 향한 수줍고 애타는 설렘만이 가득 차올랐다.

    "도령! 다 끝났습니다. 그 두꺼비 영감이 빚까지 모조리 탕감해 주겠다며 제발 살려달라는 파혼장을 보내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자유입니다!"

    은아가 담장에 기대어 까치발을 들고 속삭이자, 도진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거친 돌담 위로 몸을 바짝 기대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도진은 품 안에서 밤새 정성스럽게 쓴 한지 한 장을 꺼내어 은아의 손에 조심스레 쥐여주었다.

    "낭자, 내 비록 지금은 이 가난한 초가집에서 비 새는 지붕을 이고 사는 처지라, 낭자에게 최고급 비단옷 한 벌 편히 입혀줄 능력이 못 되오. 하지만 내 이 목숨을 걸고 약속하리다. 이번 가을 과거에서 반드시 장원급제하여, 낭자를 세상 누구보다 귀하고 정당하게 내 정실부인으로 맞이하고 싶소. 그 늙은이의 파혼장이 낭자에게 끔찍한 굴레로부터의 자유를 주었다면, 내 진심이 붉게 배어 있는 이 서한은 낭자에게 평생토록 변치 않을 든든한 안식처가 되고 싶소. 부디 나의 아내가 되어 주시겠소?"

    도진의 투박하지만 심장을 울리는 진심 어린 청혼에, 은아의 눈시울이 이번에는 거짓이 아닌 진짜 감동의 눈물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서한을 자신의 가슴에 소중히 품어 안으며, 눈물이 맺힌 눈으로 도진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령, 제게 필요한 것은 으리으리한 아흔아홉 칸짜리 기와집이나 수십 명의 하녀가 시중을 드는 삶이 아닙니다. 이토록 차갑고 아슬아슬한 밤마다 몰래 담장을 넘지 않아도 되는, 도령과 함께 같은 이불을 덮고 눈을 뜨며 잠들 수 있는 소박한 방 한 칸이면 제게는 과분합니다. 제가 여기서 조신하게 기다릴 터이니, 부디 멋지게 어사화를 꽂고 돌아와 이 당돌하고 요망한 규수를 냉큼 데려가 주셔요."

    도진은 담장 너머로 몸을 쑥 내밀어 은아의 작은 두 손을 자신의 넓은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대낮의 눈부신 햇살 아래서 단단하게 마주 잡은 두 사람의 손에는 그 어떤 시련도 베어낼 수 없는 굳건한 맹세가 서려 있었다. 억지 혼인의 사슬을 제 손으로 끊어낸 지혜로운 은아와, 그녀를 위해 기꺼이 캄캄한 어둠 속의 공범이 되어준 도진. 고을 사람들은 그저 최영감이 노망이 나서 헛것을 본 것이라며 혀를 끌쯧 찼지만, 은아와 도진 두 사람에게 그 서늘했던 밤의 소동은 세상에서 가장 짜릿하고 달콤한 사랑의 전설로 영원히 기억될 터였다.

    ※ 7: 가난한 초가집을 가득 채운 거칠고 뜨거운 첫날밤

    시간은 흐르는 강물처럼 빠르게 지나, 마침내 도진의 굳은 약속이 현실이 되는 날이 찾아왔다. 피나는 노력 끝에 과거에 당당히 급제한 도진은, 은아의 집안이 진 빚을 모두 청산하는 것을 넘어 어엿한 고을의 현감으로 금의환향했다. 산해진미가 넘쳐나는 화려한 혼례식은 아니었으나, 마을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축복 속에 두 사람은 드디어 서로의 눈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해가 저물고, 도진의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꾸며진 초가집 안방에서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날밤이 시작되었다.

    방 안에는 은은한 향내가 피어오르고, 아른거리는 촛불 그림자가 묘한 긴장감과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은아는 더 이상 밀가루 떡칠을 한 끔찍한 소복 귀신이 아니었다. 뺨에는 발그레한 연지 곤지를 찍고, 머리에는 칠보단장 족두리를 얹은, 세상 그 어떤 여인보다 눈부시게 아리따운 신부의 모습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떨리는 무릎 위로 도진의 크고 따뜻한 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은아... 나의 부인.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미치도록 꿈꿔왔는지 아시오? 그 차가운 담장 너머로 당신의 애타는 숨소리만 훔쳐 듣고, 행여나 누가 볼까 달빛 아래서 짧은 입맞춤으로 만족해야 했던 그 애끓던 긴 밤들이, 오늘 밤 비로소 완전한 보상을 받는구려."

    도진의 굵직하고 짙은 저음이 은아의 귓바퀴를 달콤하게 간지럽혔다. 그의 손이 은아의 고개를 부드럽게 들어 올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짓누르던 무거운 족두리를 벗겨내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촛불의 심지를 나직하게 줄여 방안을 더욱 아늑한 어둠으로 물들인 도진의 눈빛에는, 이제껏 이성으로 꾹꾹 눌러 담았던 사내의 맹렬한 갈증이 고스란히 타오르고 있었다.

    도진의 떨리는 손가락이 은아의 고운 다홍빛 저고리 고름으로 향했다. 매듭이 스르르 풀리는 찰나의 소리조차 벼락처럼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은아는 수줍음에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꾹 감으며, 도진의 넓고 단단한 목에 두 팔을 서서히 감아올렸다. 치맛자락이 스르륵 흘러내리고 티 없이 맑은 하얀 속적삼이 달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나자, 도진의 숨소리가 단숨에 거칠어졌다.

    그는 은아의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 안으며 이부자리 위로 천천히 눕혔다. 방바닥의 온기가 은아의 등줄기로 전해졌지만, 그녀를 위에서 온전히 내려다보는 도진의 뜨거운 시선이 주는 열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달빛과 촛불이 섞여 만들어낸 부드러운 빛 아래 드러난 은아의 속살은 백옥처럼 눈부셨다. 도진의 뜨거운 입술이 은아의 매끄러운 이마에 닿았고, 이어 오뚝한 콧날을 지나 붉게 달아오른 입술을 깊숙이 집어삼켰다.

    과거 담장 밑에서 쫓기듯 나누었던 다급한 입맞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서로의 숨결부터 영혼의 깊은 곳까지 모조리 소유하겠다는 듯, 탐욕스럽고 진득한 키스가 끝없이 이어졌다. 도진의 혀가 은아의 달콤한 입안을 집요하게 헤집을 때마다, 은아의 허리가 아치형으로 휘어지며 아찔한 쾌감을 토해냈다.

    "아... 하앗, 도령... 아니, 이제는 서방님..."

    은아의 붉은 입술 사이로 참을 수 없는 애틋한 교성이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도진의 거칠고 커다란 손이 은아의 얇은 속적삼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그녀의 매끄러운 허리선을 타고 둔덕으로 내려가자, 은아는 등줄기를 타고 뇌리까지 뻗쳐오르는 찌릿한 전율에 몸을 비틀며 도진의 넓은 어깨를 본능적으로 꽉 움켜쥐었다. 도진은 그녀의 여린 목덜미에 뜨거운 얼굴을 묻고 짐승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며,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맹렬한 수컷의 본능을 가감 없이 폭발시켰다.

    두 사람의 뒤엉킨 그림자가 방 안의 낡은 벽면을 따라 격정적으로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뜨거운 몸짓에 맞춰 낡은 목조 가옥의 바닥이 규칙적으로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그것조차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합주곡처럼 들릴 뿐이었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단단한 사내의 가슴과 보드라운 여인의 몸이 하나로 포개지고 부딪힐 때마다, 은아는 도진의 단단한 등을 손톱으로 길게 할퀴며 극치에 달한 아득한 쾌감을 온몸으로 삼켜냈다.

    '아아... 이것이 진짜 여인으로서 누리는 사랑이구나. 만약 내가 그 탐욕스럽고 더러운 늙은이에게 저항 없이 팔려 갔더라면 평생토록 절대 알지 못했을, 내 영혼과 육신을 하얗게 태워버릴 듯한 이 미치도록 아찔한 뜨거움...'

    은아는 숨이 넘어갈 듯한 쾌락 속에서도 도진의 귓가에 사랑한다는 고백을 쉼 없이 속삭였다. 창밖에서는 가을밤의 풀벌레들이 그들의 밤을 축복하듯 밤새도록 노래를 불렀고,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둥근 보름달은 두 연인의 지칠 줄 모르는 짐승 같은 사랑의 유희를 은밀하고 고요하게 비추고 있었다. 지혜롭고 당돌했던 어린 규수의 목숨 건 반란은, 그렇게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뜨거운 사랑의 결실을 맺으며 조선의 깊고 은밀한 밤속으로 한없이 녹아들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이야기, 통쾌하게 들으셨나요? 돈과 권력만 믿고 어린 처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으려 했던 탐욕스러운 최영감! 결국 자신이 가진 그 알량한 겁쟁이 같은 심보 때문에 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 말았네요. 우리 은아 낭자처럼 위기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과 지혜가 있다면, 어떤 거대한 불운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진정한 행복은 금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는 진실한 마음과 용기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사실, 잊지 마세요! 여러분의 삶에도 은아와 도진 같은 뜨겁고 정의로운 사랑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다음에도 더 해학 넘치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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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cinematic, hyper-realistic 16:9 3D rendering. A beautiful Korean lady in a white traditional 'Sobok' (mourning dress) with long, messy black hair covering her face slightly. She is standing in a misty, dark traditional Korean courtyard (Hanok) at night, illuminated by eerie blue moonlight. In the background, a terrified old man in colorful silk Hanbok is falling backward with a comical, shocked expression. The atmosphere is a blend of horror and satire. High contrast, volumetric lighting, 8k resolution,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