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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재총화』가 전하는 궁궐 귀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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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조선 성종 17년, 어느 겨울 아침이었습니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듣건대 호조 좌랑 이두의 집에 요귀가 있다 하는데, 지금도 있는가."
    나라의 공식 기록인 『성종실록』에 정말로 남아 있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불려 온 신하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신의 집에 구월부터 과연 요귀가 있사옵니다."
    그 뒤에 그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실록은 한 글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사람이 늙은 손으로 적어두었지요. 예조판서까지 오른 관료, 성현이었습니다.
    오늘 『용재총화』가 전하는 궁궐 귀신담, 지금 시작합니다.

    ※ 1: 임금이 물은 것

    연산 갑자년 봄, 나는 예순여섯의 늙은 몸으로 붓을 들었다. 눈이 흐려 글자가 두 겹으로 보이고, 손목은 저녁마다 시렸다. 그래도 적어두어야 할 것이 있었다.

    평생 나는 기록하는 자리에 있었다. 예문관에서 교서를 다듬고, 승정원에서 임금의 말씀을 받아 적고, 예조에서 나라의 의례를 정했다. 내가 적은 글자들은 모두 공변된 것이었다. 어느 해 어느 날, 상께서 무엇을 명하시고 신하들이 무엇을 아뢰었는가. 그것뿐이었다.

    허나 붓이 적지 못하고 남겨둔 것들이 있었다. 관복을 벗고 집으로 돌아가 사랑방에 모여 앉았을 때, 벼슬아치들이 목소리를 낮추어 주고받던 이야기들. 공식 문서에는 한 줄도 오르지 못했으나, 그날 그 자리의 사람들 얼굴빛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던 이야기들.

    '실록은 임금이 무엇을 물었는지는 적는다. 그러나 그 물음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지 않는다. 그 뒤를 적는 것이 나의 몫이다.'

    이야기는 성종 십칠년, 병오년 겨울에서 시작한다.

    그해 동짓달은 유난히 추웠다. 경복궁 승정원 뜰의 돌이 서리로 하얗게 덮여, 아침이면 아전들이 가마니를 깔고 다녔다. 나는 그 무렵 승정원을 자주 드나들던 터라, 그날의 일을 바로 곁에서 보았다.

    스물다섯 날 아침이었다. 상께서 평소와 다른 전교를 내리셨다.

    "듣건대 호조 좌랑 이두의 집에 요귀가 있다 하는데, 지금도 있는가. 그것을 물어서 아뢰라."

    전교를 받아 적던 주서의 붓이 잠깐 멎었다. 나는 그 멈춤을 보았다. 붓털 끝이 종이 위에 떠 있던 그 짧은 동안, 방 안의 공기가 한 겹 바뀌었다.

    '요귀라 하셨는가. 이 조정의 공문서에 요귀라는 두 글자가 오르는 것인가.'

    승정원에서 하루에 오가는 문서는 수십 건이다. 흉년이 든 고을의 환곡을 어찌할 것인가, 북방의 성을 언제 쌓을 것인가, 과거 시험의 날짜를 어느 날로 정할 것인가. 모두 발이 땅에 붙은 일들이다. 그런데 그날 아침 상께서 물으신 것은, 남의 집 안방에 무엇이 들어앉았느냐는 것이었다.

    도승지가 헛기침을 하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들으셨다 하니, 소문이 이미 대궐까지 들어온 모양일세."

    한 승지가 낮게 답했다.

    "호조 안에서는 벌써 여러 날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좌랑이 사흘 걸러 하루씩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온다고요."

    "그 사람 본디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위인이 아닌데."

    "그러니 더 괴이하지요."

    사람을 보내 부르자, 이두가 왔다. 호조 좌랑 이두. 나는 그를 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문이라 불릴 만한 유학자였고, 말이 적고 몸가짐이 반듯한 사람이었다. 문서의 숫자를 다룰 때 한 치도 어긋남이 없어, 호조의 늙은 아전들도 그 앞에서는 셈을 두 번씩 확인했다.

    그날 그가 뜰을 건너오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놀랐다.

    '저 사람이 저리 말랐던가.'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관복의 어깨가 비어 있었다. 걸음은 반듯했으나 그 반듯함이 애써 붙잡아 세운 반듯함이었다. 눈 밑이 푸르스름했고, 무엇보다 눈동자가 자주 한곳에 머물렀다. 사람을 보지 않고, 사람의 어깨 너머 빈 데를 보았다.

    그가 엎드려 아뢰었다. 목소리는 뜻밖에도 가라앉아 있었다.

    "신의 집에 구월부터 과연 요귀가 있사옵니다."

    과연, 이라는 말이 방 안에 떨어졌다. 부인하지 않았다. 그 한마디로 승정원의 모든 붓이 멈추었다.

    "혹은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자취를 감추기도 하며, 창문 종이를 찢기도 하고, 불빛을 내기도 하며, 기와나 돌을 던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부딪혀도 다치는 일은 없으나, 다만 신의 아내가 살쩍께를 맞아 잠시 다쳐서 피가 났습니다."

    "그대는 보았는가."

    "신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고, 단지 밤에 두 번 사람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옵니다."

    "종들은 무어라 하던가."

    이두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이 길었다.

    "종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이 사람과 다름이 없고, 비록 그 온몸은 보이지 아니하나, 허리 아래는 여자의 복색과 방불한데 흰 치마가 남루하다 하옵니다."

    허리 아래는 여자의 복색과 방불한데 흰 치마가 남루하다. 나는 그 말을 세 번 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이 거짓을 지어낼 때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거짓은 온몸을 다 그린다. 보이는 데까지만 말하고 보이지 않는 데서 멈추는 말, 그것이 본 사람의 말버릇이다.

    "피하지는 않았는가."

    "신이 처자를 이끌고 다른 지붕 아래로 피해 있었더니, 얼마 아니 되어 또 따라와서 때 없이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기에, 신이 생각하기를 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여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요귀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요귀가 없었습니다. 그 마지막 한마디에 방 안의 누군가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없다는 말이 어찌 저리 무서운가. 저이는 지금 없다고 아뢰는 것이 아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아뢰는 것이다.'

    아뢰기를 마치고 이두는 물러갔다. 뜰을 건너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도승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성상께서 왜 저것을 물으셨을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임금도 사람이다. 밤이면 대궐 깊은 곳 침전에 홀로 누워, 처마 끝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궁궐만큼 밤이 긴 집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날 승정원 일기에는 이렇게만 올랐다. 상께서 호조 좌랑 이두의 집에 요귀가 있는지 물으시니, 이두가 와서 이러이러하게 아뢰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공식 문서는 거기서 붓을 놓는다. 묻고, 답을 받고, 적는다. 그 뒤에 이두의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가 어찌 되었는지는 한 글자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적는다.

    ※ 2: 종이 치마와 검은 다리

    이두의 집은 북촌 기슭에 있었다. 솟을대문은 아니었으나 마당이 넓고 장독대가 반듯한, 벼슬아치의 집다운 집이었다. 뒤란에 감나무가 한 그루 섰는데, 그해 가을 그 감나무에 열매가 유난히 많이 달렸다 한다.

    시작은 구월 어느 밤, 부엌이었다.

    늦은 저녁, 부엌어미가 설거지를 마치고 불씨를 재로 덮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얘야."

    부엌어미는 대답하며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손은 이미 앞치마에 닦고 있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던 것이다. 그만큼 귀에 익은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저렇게 부르던 분은 한 분뿐인데.'

    이두의 숙고(叔姑), 그러니까 그의 고모였다. 시집가지 못하고 이 집에서 늙어 죽은 분이었다. 살아생전 살림을 틀어쥐고, 부엌 문턱에 서서 "얘야" 하고 부르던 그 목소리. 그분이 세상을 뜬 지 이미 십 년이었다.

    이튿날 아침, 안방 쪽에서 그 목소리가 또 들렸다. 이번에는 또렷했다.

    "오늘은 무를 썰어 넣거라. 지난번처럼 설익히지 말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장난인 줄 알았다. 종들을 모아놓고 하나하나 목소리를 내보게 했다. 비슷한 소리를 내는 자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열 살 먹은 계집종이 어찌 환갑 넘은 노부인의 목청을 흉내 내겠는가.

    그 목소리는 나날이 당당해졌다.

    처음에는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올리라 했다. 집안에서는 혼이 배고픈가 보다 하여, 조상께 올리듯 상을 차려 안방 윗목에 놓았다. 그러면 상은 놓인 그대로였다. 수저를 드는 것도 보이지 않고, 밥알이 줄어드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 식경쯤 뒤에 가보면, 국그릇은 바닥이 드러나고 나물은 자취가 없었다. 밥만 소복이 남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영락없이 목소리가 성이 났다.

    "이것이 밥이냐. 쌀을 어디다 두고 이런 뉘를 섞었느냐."

    차츰 요구가 늘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찾았다. 어느 날은 조기를 구워 오라 하고, 어느 날은 꿀을 넣은 약과를 찾았다. 섣달에 참외를 찾은 적도 있었다 한다. 구할 수 없다고 아뢰면 노기가 집안을 휩쓸었다. 창문 종이가 북북 찢어지고, 마당의 기와 조각이 날아와 섬돌에 부딪혔다.

    더 무서운 것은 지휘였다. 그 귀물은 살림을 일일이 간섭했다.

    "장은 내일 담가라. 모레는 날이 궂다."

    "그 광목은 끊지 마라. 아랫것 혼수에 쓸 것이다."

    "뒤란 장작은 동쪽으로 쌓아라. 몇 번을 말하느냐."

    그리고 과연 이튿날은 맑고 모레는 비가 왔다.

    집안사람들은 점점 이상한 상태가 되어갔다. 무서워하면서도 따랐다. 따르다 보니 익숙해졌다. 익숙해지니 더 깊이 들어왔다. 밥을 지을 때마다 윗목을 흘끔거리고, 무엇을 결정할 때마다 안방 쪽 기척을 살폈다. 산 사람의 집을 죽은 목소리가 살고 있었다.

    모습을 본 자들이 생긴 것은 그다음이었다.

    어린 계집종 하나가 저물녘에 안방 앞을 지나다가 주저앉았다.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그저 숨만 가빠서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달려와 일으키며 물었다.

    "무엇을 보았느냐."

    "치마가요."

    "치마가 어쨌다는 게냐."

    "흰 치마가, 종이였어요."

    허리 위는 보이지 않았다 한다.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의 허리께 높이에서 위로는 그냥 저녁 공기였다. 그런데 허리 아래로는 치마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치마가 베가 아니라 종이였다. 장례에 쓰는 지전(紙錢) 같은, 바스락거리는 흰 종이였다.

    그리고 그 치마 아래로 두 다리가 나와 있었다. 살이 없었다. 바싹 마른 뼈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그 빛이 검었다. 옻칠을 한 것처럼 번들거리는 검정이었다.

    뒷날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한다. 안방 윗목을 향해, 목소리를 떨면서.

    "다리가 어찌 그와 같으십니까."

    대답은 태연했다.

    "죽은 지 오랜 지하 사람이 어찌 이와 같지 않겠느냐."

    '이 집은 저 대답 한마디에 무너졌다.'

    나는 뒷날 이 말을 전해 듣고 오래 생각했다. 그 귀물은 변명하지 않았다. 성내지도 않았다. 사람이 죽어 땅속에 십 년을 있었으면 다리가 뼈만 남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냐고, 거의 다정하게 되물었다. 그 태연함이야말로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이두는 그때껏 한 번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밤중에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두 번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보지 못하는 것이 더 괴로웠으리라. 온 집안이 보는 것을 가장만 보지 못하니, 그는 밤마다 어둠 속에 누워 눈을 뜨고 있었다.

    그는 선비였다. 선비의 방법으로 싸웠다.

    먼저 경전을 읽었다. 촛불을 켜고 밤새 소리 내어 읽었다. 소용이 없었다. 다음에는 무당을 불렀다. 유학자가 무당을 부르는 것은 스스로 무너지는 일이었으나, 그는 불렀다. 굿을 하는 동안은 조용했고, 굿이 끝나자 그 목소리가 웃었다 한다.

    "떠들썩하니 좋더구나."

    절에 시주도 했고, 복숭아나무 가지로 문을 치기도 했고, 부적을 들보에 붙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빌었으나, 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처자를 데리고 다른 집으로 옮겨 갔다. 그러자 그것도 따라왔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다. 승정원에서 상께 아뢴 그 말, "그때는 요귀가 없었습니다"는 바로 그 돌아온 날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안도했다. 상께서도 더 묻지 않으셨다. 일은 그것으로 마무리된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 아니 되어, 이두가 병을 얻었다.

    열이 오르고 밥을 넘기지 못했다. 의원이 드나들었으나 병명을 짚지 못했다. 그저 기운이 빠져나간다고만 했다. 사람이 앓는 것이 아니라 등잔의 기름이 줄듯이 줄어들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호조에서는 아무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벼슬아치가 귀신에 홀려 죽었다는 말이 돌면 집안에 누가 되기 때문이다. 공문서에는 다만 졸(卒)이라는 한 글자가 올랐을 것이다.

    나는 그 한 글자 옆에 이 이야기를 적어둔다. 사문 이두는 호조 정랑에 이르렀고, 집안에 귀물이 들어와 나쁜 짓을 하였으며, 그 목소리는 죽은 지 십 년 된 고모의 것이었고, 여러 가지로 빌었으나 되지 않았고,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어 죽었다고.

    ※ 3: 솥 안의 글자

    내 집 이웃에 기씨 재상이 살았다. 당대의 명현이라 불리던 어른이었다.

    나는 어려서 그 집 손자 유(裕)와 사귀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라, 서로의 집 마당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함께 글을 배우고, 함께 활을 쏘고, 함께 과거를 보았다. 뒤에 나란히 벼슬길에 올랐으니, 세상에 흔치 않은 벗이었다.

    재상 어른이 돌아가시고, 유는 집안일을 맡아 본가에 남았다. 나는 관직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그러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는데, 어느 해 돌아와 보니 그 큰 집이 비어 있었다.

    '대문에 거미줄이 쳤구나. 사람 사는 집에 어찌 저럴 수가.'

    이웃에게 물으니, 그 집이 흉하여 사람이 들어가지 못한 지 여러 해라 했다. 유도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했다.

    이야기는 어린 종 하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아이가 저녁 무렵 문 밖에 서 있었다. 심부름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등에 무슨 물건이 붙었다. 무게가 대단해서 견딜 수 없었다. 쌀섬을 진 것처럼 어깨가 내려앉고 무릎이 꺾였다.

    아이는 어리둥절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등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옷을 벗겨 털어보아도 없었다. 그런데 무게는 그대로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스르르 풀렸고, 그제야 아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 뒤로 괴상한 일이 끊이지 않았다.

    밥을 지으려고 솥뚜껑을 열면, 뚜껑은 그대로 덮여 있었는데 솥 안에 똥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어둔 밥은 뜰에 흩어져 있었다. 밥알이 마당 가득 뿌려진 아침, 그것을 쓸어 담으며 종들이 울었다.

    소반과 바리를 집어 공중에 던지는 일은 예사였다. 어느 때는 그 무거운 가마솥을 들어 올려 허공에서 빙빙 돌렸다. 누가 작대기로 치면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큰 종을 치는 소리 같았다. 대낮에 들려오는 종소리에 이웃 사람들이 담 너머로 목을 뺐다.

    남새밭도 성하지 못했다. 아침에 나가보면 채소가 모두 뽑혀 거꾸로 심겨 있었다. 뿌리가 하늘을 보고, 잎이 땅에 묻혀 있었다. 그렇게 심긴 것들은 잠깐 사이에 말라 죽었다.

    가장 소름이 끼친 것은 옷장이었다.

    자물쇠를 채워둔 옷장에서, 아침이면 옷이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자물쇠는 잠긴 그대로였다. 그런데 올려다보면 대들보 위에 옷들이 널려 있었다. 비단 저고리며 모시 치마며, 폭폭이 펼쳐져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옷폭마다 글자가 붙어 있었다.

    종이를 오려 만든 글자였다. 한 폭에 하나씩, 혹은 두셋씩. 그런데 읽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아는 글자가 아니었다. 획이 올챙이처럼 머리가 굵고 꼬리가 가늘어, 옛적 과두문자(蝌蚪文字)라 하는 것과 흡사했다.

    유가 그 글자를 베껴 내게 보여준 적이 있다. 나는 평생 문한(文翰)의 자리에 있으면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온갖 글씨체를 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사람을 놀래려면 차라리 또렷한 저주의 글귀를 쓸 일이다. 읽히지 않는 글자를 남기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오래 보고 있으려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읽을 수 없는 글자는 읽을 수 있는 글자보다 무섭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사람의 마음이 제멋대로 가장 나쁜 말을 채워 넣기 때문이다.

    불이 가장 위험했다.

    사람이 없는 아궁이에서 불빛이 갑자기 일어났다. 끄려고 달려들면, 불은 끄는 손을 피해 문간방으로 옮겨 붙었다. 그렇게 문간방 하나가 다 탔다. 그 뒤로 식구들은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번을 서듯 돌아가며 아궁이를 지켰다.

    마침내 집을 버렸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런데 유가 어느 날 분연히 일어섰다. 그 성정을 나는 안다. 평소에는 느긋하다가도 한번 옳다고 믿으면 꺾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선조가 살던 집을 오랫동안 수리하지 못하니, 어찌 사람 된 자로서 선조를 받드는 뜻이겠는가."

    그가 내게 그리 말했다. 나는 말렸다.

    "벗이여, 사람이 이기지 못할 것이 있네. 집 한 채가 조상보다 무겁지는 않네."

    "대장부가 어찌 귀신을 두려워할 것인가."

    그는 곧 들어가 거처했다.

    사흘은 조용했다 한다. 나흘째 밤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밥바리가 저 혼자 옮겨 다니고, 자는 사람 얼굴에 똥을 칠했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만져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사람이 느끼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모욕이다. 그 귀신은 사람을 해치기보다 사람을 깔보았다.

    유가 참다못해 마당 한가운데 나가 꾸짖었다.

    "네 무엇이관데 남의 집에 붙어 이 짓을 하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그러자 공중에서 소리가 났다. 사람의 목소리였고, 조롱하는 가락이 있었다.

    "기 도사가 어찌 이와 같이 하느냐."

    '기 도사라.'

    그 호칭에 유의 낯빛이 변했다 한다. 집안에서만 쓰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바깥사람은 알 수 없는 말. 그것으로 그는 알았다. 저것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것을.

    얼마 아니 되어 유도 병을 얻어 죽었다.

    벗의 상에 나는 곡을 했다. 나이 사십도 되지 않았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자란 아이가 먼저 갔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말했다.

    "기유의 외사촌 유계량이 난리를 음모하다가 사형당하더니, 그 귀신이 이 집에 붙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유계량.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세조 말년 북방에서 난이 일었을 때, 도성 안에서 그와 내응했다는 혐의로 끌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이다. 재산은 적몰되고, 이름은 지워지고, 제사 지내줄 자손도 끊겼다.

    밤에 홀로 앉아 생각했다.

    '솥에 똥을 넣고 밥을 흩고 채소를 거꾸로 심는 것은, 원통한 자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는 나라를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남의 밥상을 엎었다. 저도 그 집에서 밥을 먹던 사람이었으니까.'

    역모로 죽은 자의 혼은 제사를 받지 못한다. 받을 자손이 없다. 제사를 받지 못한 혼이 찾아가는 곳은 결국 밥 냄새가 나는 곳, 제가 알던 부엌이다.

    조정의 문서에는 그 사람이 죄인으로 처형되었다는 기록만 남았다. 그 뒤에 그의 외사촌 집에서 여러 해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무엇이 대들보 위에 읽을 수 없는 글자를 걸어놓았는지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적는다. 지워진 이름이 어느 집 솥 안에서 다시 떠올랐다는 것을.

    ※ 4: 늙은 꾀꼬리의 혀

    이 이야기는 내가 대부인께 직접 들은 것이다. 내 장모 되시는 정씨 부인 말이다.

    부인은 양주에서 자라셨다. 한양에서 하루 길쯤 되는 곳, 산자락에 기대어 앉은 큰 집이었다. 그 집안은 고려 말부터 벼슬이 끊이지 않았으니, 상국 정구 어른과 그 아우 정부 어른이 바로 그 집 사람이다.

    부인이 예닐곱 살 무렵, 그 집에 귀신이 내렸다.

    내린 자리는 어린 계집종이었다. 열 살이나 되었을까, 부엌 심부름이나 하던 아이였다. 어느 날부터 그 아이의 입에서 제 목소리가 아닌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맑았다 한다. 유난히 맑아서, 늙은 꾀꼬리의 혀와 같았다고 부인은 말씀하셨다. 꾀꼬리인데 늙은 꾀꼬리다. 고운데 어딘가 바래고 갈라진 데가 있는 소리. 그 소리를 한 번 들은 사람은 평생 잊지 못했다.

    '고운 소리가 무서운 법이다. 사람은 흉한 소리에는 대비를 하지만, 고운 소리에는 귀를 열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낮이면 공중에 떠 있었다. 밤이면 대들보 위에 깃들었다. 아이는 멀쩡히 제 일을 하다가도, 문득 발이 땅에서 뜬 채로 처마 밑을 둥둥 떠다녔다. 밤에 안방 들보를 올려다보면 어둠 속 어딘가에서 숨소리가 났다.

    그런 것이 수년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집안에 아무 탈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앓지도 않고, 재물이 축나지도 않고, 불이 나지도 않았다. 그것은 해를 끼치지 않았다. 다만 알았다.

    화복과 길흉을 물으면 맞히지 못하는 적이 없었다. 누가 병이 나면 며칠 만에 일어날지 말했고, 길 떠난 사람이 언제 돌아올지 말했고, 그해 장마가 언제 질지 말했다. 말을 하면 번번이 들어맞았다.

    그러니 집안사람들은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숨기려는 뜻이 있어도 숨겨지지 않았다. 모두가 두려워했다.

    그 무렵 이웃에 대대로 명문인 집이 하나 있었다. 그 집 주부, 그러니까 안주인이 보물로 여기던 비녀를 잃어버렸다.

    안주인은 계집종을 의심했다. 날마다 때렸다. 종은 훔치지 않았으나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힐 길이 없었다. 매를 견디다 못한 종이 담을 넘어 정씨 집으로 왔다. 그리고 대들보를 향해 울며 물었다.

    "비녀가 어디 있는지 아시거든 일러주십시오. 저는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맑은 목소리가 한동안 조용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있는 곳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네게 말하기는 거북하니, 네 주인이 오면 말하겠다."

    종이 돌아가 그대로 아뢰었다. 안주인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좁쌀 한 됫박을 들고 몸소 찾아왔다. 복채였다. 그리고 묻자, 그 목소리가 이번에도 머뭇거렸다.

    "있는 곳을 알고는 있으나,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내가 한 번 말하면 그대는 매우 무안하리라."

    '저 귀신은 지금 사람을 봐주고 있구나.'

    그러나 안주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물었다. 끝내 응하지 않자 성을 내며 꾸짖었다.

    "요물이 사람을 희롱하는구나.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른다 할 것이지, 어찌 말을 돌리느냐."

    그러자 목소리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한다.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아무 날 저녁에 그대가 이웃 아무개와 같이 닥나무 밭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 비녀는 그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종이 달려가 보니, 과연 닥나무 가지에 비녀가 걸려 있었다. 안주인은 그 비녀를 받아들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매를 맞던 종은 그날로 매를 면했고, 안주인은 그 뒤로 오래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또 한번은 그 집 종이 물건을 훔친 일이 있었다. 목소리가 말했다.

    "아무개가 그것을 훔쳐 아무 방에 감추었다."

    들킨 종이 발끈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제 잘못보다 제 체면이 급해지는 법이다. 그는 대들보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어디에 있던 요물이 남의 집에 와서 의지하느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종이 땅에 자빠졌다. 눈을 뒤집고 사지가 뻣뻣해져, 한참이 지나서야 숨을 돌렸다. 사람들이 물으니 떨면서 말했다.

    "자색 수염이 난 장부가 제 머리털을 끌어당기기에, 황홀하여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맑은 꾀꼬리 소리 뒤에 자색 수염 난 장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집안사람들의 두려움은 다른 종류가 되었다.

    차츰 싫어하는 마음이 쌓였다. 해를 끼치지 않아도, 속을 다 들여다보이며 사는 일은 사람이 견디기 어렵다.

    그 무렵 상국 정구 어른과 아우 정부 어른이 집에 들르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분이 대문에 들어서기만 하면 귀신이 두려워하여 달아났다. 그리고 두 분이 떠난 뒤에야 돌아왔다.

    '귀신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가. 아니면 두려운 것은 그 사람의 벼슬이 아니라, 그 사람이 평생 쌓아 올린 무엇인가.'

    상국이 그 사연을 듣고, 하루는 집에 머물며 귀신을 불렀다. 마루에 앉아 대들보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너는 숲으로 가라. 인가에 오래 머무는 것이 부당하다."

    한참 만에 목소리가 대답했다. 떨리고 있었다 한다.

    "내가 여기 온 뒤로 집안 복을 더하도록 힘썼으며, 한 번도 재앙을 일으킨 일이 없었습니다.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 집을 잘 받들고자 하였는데, 대인의 가르침이 있으니 감히 순종치 않겠습니까."

    그리고 마침내 통곡하며 떠났다.

    대부인께서 이 대목을 말씀하실 때, 늙으신 눈가가 젖으셨다. 어린 날 들보 밑에서 들었던 그 울음소리를 평생 기억하셨던 것이다.

    귀신이 떠난 뒤로는 끝내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계집종은 평범한 아이로 돌아가 제 나이대로 늙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적으며 오래 망설였다. 앞의 두 집은 귀물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고, 떠나는 쪽이 울었다.

    이두의 집 귀물은 밥을 달라 했고, 기유의 집 귀물은 밥상을 엎었고, 이 집 귀물은 집안 복을 더하려 애썼다 했다. 같은 귀신인데 어찌 이리 다른가.

    '혹 귀신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맞은 사람의 집이 달랐던 것은 아닐까.'

    ※ 5: 우물이 소처럼 울다

    귀신 이야기를 남의 집에서만 주워 적었다면 나는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내 눈으로 본 것, 내 피붙이가 겪은 것이 있어 적는다.

    먼저 외삼촌의 일이다.

    외삼촌께서는 한때 부여 땅에 머무르셨다. 가을 어스름, 사냥개를 데리고 들길을 걸어 돌아오던 참이었다. 개가 먼저 멈춰 섰다. 멈춘 것이 아니라 얼어붙었다. 털이 등줄기를 따라 곧추서고, 짖지도 못한 채 목구멍으로만 소리를 냈다.

    외삼촌이 개가 보는 쪽을 보셨다. 길가 늙은 나무에 무엇이 기대어 있었다.

    사람의 형상이기는 한데, 얼굴이 몸보다 컸다. 그리고 그 큰 얼굴 위에 높다란 관을 쓰고 있었다. 관과 얼굴의 무게를 작은 몸이 감당하지 못해, 그것은 제 힘으로 서지 못하고 나무둥치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관이 높고 얼굴이 크다 하여, 뒷날 사람들은 그것을 고관대면이라 불렀다.

    외삼촌께서는 달아나지 않으셨다. 뒷걸음질치면 따라올 것 같아, 도리어 두 발을 버티고 서서 그것을 똑바로 노려보셨다 한다. 그러자 그 거대한 얼굴이 슬그머니 기울더니, 어스름 속으로 스러졌다.

    "어찌 도망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어려서 여쭈었더니 외삼촌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사람이 등을 보이면, 등 뒤의 것이 커진다."

    또 한번은 서원, 지금의 파주 땅에서였다.

    그 고을에 하늘을 뒤덮을 만한 큰 나무가 있었다. 밤이면 그 나무에서 빛이 났다. 잎사귀 사이사이에서 반딧불 같은 것이 일어나 가지를 따라 흘렀다. 그리고 소리가 났다. 휘파람 같은 가락이 흐르다가, 문득 수십 사람이 한꺼번에 떠드는 말소리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말 속에는 차마 옮길 수 없는 것이 섞여 있다 했다. 남의 집 흉사를 들추고, 살아 있는 사람의 죽을 날을 지껄인다 했다.

    그 나무를 베려 한 자가 있었다. 도끼를 들고 갔다가 사흘 만에 실성해서 돌아왔다. 눈이 풀리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데, 그 지껄이는 가락이 나무의 소리와 닮았더라는 것이다.

    고을의 늙은이가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칼처럼 깎았다. 그리고 그 칼로 미친 사람의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베는 척만 했다. 그랬더니 사흘 뒤에 정신이 돌아왔다.

    '사람의 넋을 한 번 끊었다가 다시 잇는 시늉인가. 나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적어두는 것이 기록하는 자의 도리다.'

    그다음은 관아의 우물 이야기다.

    내가 들은 바로는, 임천 고을 객사 뒤뜰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었다. 물맛이 좋아 관아 사람들이 다 그 물을 먹었는데, 어느 해부터 우물 안에서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두레박이 벽을 긁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두레박을 내리지 않은 밤에도 났다. 깊은 데서 올라오는, 소가 우는 것 같은 울음이었다. 음메 하고 길게 끄는데, 그 끝이 사람의 흐느낌으로 갈라졌다.

    고을 아전들이 말하기를, 여러 해 전 그 우물에 몸을 던진 관비가 있었다 했다. 수령이 갈려 갈 때 따라가지 못하고 남겨진 여자라고도 하고, 억울한 일로 매를 맞고 난 뒤라고도 했다. 이야기가 여럿인 것은, 아무도 똑똑히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새로 부임한 수령이 그 소리를 사흘 듣고 명을 내렸다.

    "메워라."

    흙과 돌을 져다 부었다. 꼬박 이틀이 걸렸다. 우물 자리는 평평해졌고, 그 위에 잔디를 입혔다.

    그런데 메운 그 자리에서 소리가 계속 났다. 땅 밑에서, 흙을 사이에 두고, 더 먹먹하게.

    수령은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체직을 청해 떠났다 한다. 떠나면서 아전들에게 이리 말했다는 것이다.

    "입을 막는다고 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더구나."

    '관아는 억울함을 들어주는 곳이다. 그 집 뒤뜰에서 울음이 나는데 그것을 흙으로 덮었으니, 그 수령은 제 할 일을 거꾸로 한 셈이다.'

    마지막은 내가 직접 본 것이다.

    어느 해, 남강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볼일을 마치고 떠나려니 해가 기울어, 말고삐를 잡은 종 하나만 데리고 밤길을 걸었다. 강바람이 비릿했고, 달은 구름에 들락날락했다.

    강둑을 돌아설 때였다. 종이 먼저 소리를 삼켰다.

    앞쪽 길 가운데 무엇이 서 있었다. 키가 어른 두 길은 되어 보였다. 머리에는 삿갓을 썼는데, 그 삿갓 아래 얼굴이 둥글고 컸다.

    그리고 눈이 있었다. 두 개의 눈이 횃불처럼 타고 있었다. 빛을 받아 번득이는 것이 아니라, 제 속에서 불이 나와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더 괴이한 것은 열기였다. 열 걸음쯤 떨어져 있었는데도 얼굴이 뜨거웠다. 섣달 밤에 화로 앞에 선 것 같았다.

    말이 주저앉았다. 종은 땅에 엎드려 벌벌 떨었다. 나는 어찌했던가.

    솔직히 적겠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외삼촌처럼 노려보지도 못했고, 벗 유처럼 대장부가 어찌 귀신을 두려워하겠느냐 외치지도 못했다. 그저 고삐를 쥔 채 서 있었다.

    그것은 한동안 길 가운데 서 있다가, 삿갓을 조금 들어 올리듯 움직이더니, 그대로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횃불 같은 두 점이 강 건너 쪽으로 멀어졌다. 이윽고 아주 작아져서, 별인지 그것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눈이 횃불 같다 하여, 나는 뒷날 그것을 목여거라 적었다.

    그 밤 집에 돌아와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등잔불을 돋우고,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예문관과 승정원을 거친 사람이다. 나라의 의례를 정하고, 성균관에서 유생을 가르친 사람이다.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오늘 밤 그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보았다고 적는다. 설명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본 것을 본 대로.

    ※ 6: 꿈이 부절처럼 맞을 때

    귀신보다 더 자주 나를 찾아온 것은 꿈이었다.

    무릇 꿈은 모두 사려를 따라 이루어진다. 낮에 근심한 것이 밤에 모양을 얻는 것이다. 그러니 꿈이 일일이 들어맞을 리 없다. 나도 그렇게 알고 살았다.

    그런데 내 평생에 네 번, 기이한 꿈을 꾸고 그것이 부절을 맞춘 듯 징험한 일이 있었다.

    열일고여덟 살 때였다. 꿈에 어떤 산속에 들어갔다.

    물이 맑았다. 시내를 끼고 복숭아꽃이 어지럽게 피어 있었다. 꽃잎이 물 위를 떠내려가는데, 그것이 하도 많아 물빛이 분홍이었다. 산을 헤매다 어떤 절에 이르렀다. 푸른 잣나무 몇 그루가 그림자를 뜰가에 드리우고 있었다.

    당에 오르니 황금 부처가 앉아 있었고, 노승의 염불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별실로 가니 곱게 단장한 여인 몇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사모 쓴 관원이 내게 술을 권했다. 나는 자꾸 권하는 술에 취해 달아나다가, 문득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는 바람에 깨었다.

    소년이 꾸기에 부끄러운 꿈이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수년 뒤, 나는 백씨와 함께 대부인을 모시고 해주에 갔다. 신광사라는 절에서 놀았는데, 절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걸음이 멎었다.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 뜰가의 수목, 전당의 생김새가 꼭 전에 꿈에서 본 그것이었다.

    순찰사 한공이 대부인을 위하여 재반을 베푸셨다. 중들 가운데 한 노승이 염불을 하는데, 그 목소리가 또한 꿈에서 듣던 바와 같았다. 그 뒤 목사 이공이 나를 외실로 맞아들였다. 고을 기생 몇이 곡에 맞추어 노래하고, 목사가 술을 권하니, 나는 매우 취하여 돌아왔다.

    '꿈에서 달아났던 그 술자리에, 나는 결국 앉고 말았구나.'

    두 번째는 기축년이었다.

    그해 나는 대부인의 상을 당하여 파주에 장사 지내고, 묘 곁 초려에서 시묘살이를 했다. 밤이면 등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그날은 남화경 내편을 읽다가, 책상에 기댄 채 깜박 졸았다.

    문득 선경에 이르렀다. 궁실이 장엄하고 화려하여, 완연히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기둥이 아름드리였고, 지붕이 끝없이 이어졌다.

    전 위에 어떤 사람이 검정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얼굴에 수염이 많았다. 나는 저절로 뜰 아래 엎드려 절했다.

    그로부터 삼 년 뒤, 나는 백씨를 따라 명나라 북경에 갔다.

    자금성 문을 들어설 때, 나는 숨을 삼켰다. 그 궁실이 역력히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리고 황제를 뵈었을 때, 그 용안이 또한 꿈에서 본 그 얼굴이었다. 수염이 많은 검정 옷의 그 사람.

    나는 뜰 아래 엎드려 절했다. 삼 년 전 초려에서 했던 그 절을, 다시 한번.

    세 번째와 네 번째 꿈은 벼슬에 관한 것이었다.

    옥당에서 수직하던 밤, 꿈에 승정원 앞방에 이르렀다. 거기 자리가 몇 개 놓여 있는데, 누군가 내게 어느 자리를 가리켜 보였다. 나는 꿈에서도 그것이 승지의 자리임을 알았다.

    그런데 그 꿈에는 차례가 있었다. 내 앞에 두 사람이 먼저 앉는 것을 보았다.

    과연 홍귀달이 먼저 승지가 되었고, 채수가 그다음이었다. 나는 그 뒤였다. 성종 십일년 사월, 내 나이 마흔둘에 동부승지가 되었고, 뒤에 우승지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운이 좋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꿈을 꾼 밤의 감각을 기억한다. 앞방에 선 채로 누군가 내 차례를 일러주던 그 느낌을.

    '내가 적어둔 네 가지 꿈 가운데 둘은 내가 본 것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요, 둘은 앞일을 일러준 것이다. 이것이 사려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나는 그 산을 모르고 그 궁전을 몰랐다.'

    이제 나는 늙었다.

    예조판서를 지냈고, 대제학에 올랐고, 악학궤범을 엮어 나라의 음률을 정리했다. 할 일은 거의 다 했다. 남은 것은 이 잡록뿐이다.

    갑자년 들어 세상이 어지럽다. 대궐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날마다 험하다. 선비들이 끌려가고, 이미 죽은 사람의 무덤까지 파헤쳐진다는 말이 돈다.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쓰고 있다.

    밤이 깊었다. 등잔 심지가 타들어 간다.

    나는 생각한다. 이 책에 적힌 것들이 과연 무엇인가.

    종이 치마를 입고 밥을 받아먹던 고모의 목소리. 대들보 위에 읽을 수 없는 글자를 걸어놓던 처형당한 자의 혼. 늙은 꾀꼬리 소리로 남의 속을 짚어내다가 통곡하며 숲으로 떠난 것. 흙으로 메워도 울음이 그치지 않던 관아의 우물. 남강 길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횃불 같은 두 눈.

    이것들을 실록에 올릴 수는 없다. 나라의 공식 기록은 사실만을 적는다. 어느 해 어느 날 아무개가 죽었다, 그렇게 적는다.

    그러나 그 '죽었다'는 두 글자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두는 호조 정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아홉 달을 시달리다 기운이 다해 죽었다. 기유는 병사한 것이 아니라, 조상의 집을 지키려다 꺾여 죽었다. 양주의 어린 계집종은 수년간 제 몸을 남에게 내어주고도 아무 보상을 받지 못했다. 임천의 우물에 몸을 던진 여자는 이름조차 남지 않았다.

    '나는 벼슬아치였다. 벼슬아치의 붓은 나라를 적는다. 그러나 사람은 나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임금은 남의 집 요귀를 물으셨고, 승지들은 붓을 멈췄고, 나는 강가에서 다리가 떨려 서 있기만 했다.

    우리는 공자의 글을 읽고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다 하면서, 밤이면 처마 밑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낮에는 이치를 말하고 밤에는 무서워했다. 그것이 우리였다.

    나는 그 두 얼굴을 다 적어두려 한다. 후세 사람이 이 책을 들추고 웃어도 좋다. 다만 웃고 나서, 한 번쯤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어두운 밤을 무서워했구나, 하고.

    등잔이 꺼지려 한다. 마지막 줄을 쓴다.

    무릇 이 책에 적은 것은 내가 보고 들은 것이다. 믿고 안 믿고는 보는 이에게 달렸다.

    붓을 놓는다. 창밖에서 바람이 종이를 흔든다. 나는 돌아보지 않는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이야기는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 전하는 것들입니다. 예조판서까지 오른 고위 관료가, 실록에는 올리지 못한 이야기들을 노년에 손수 적어 남겼지요. 이두의 일은 『성종실록』에도 실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금이 신하의 집에 요귀가 있느냐 물었던, 그 겨울 아침 말입니다.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고, 그러면서도 그 밤을 이야기로 만들어 서로에게 건넸습니다. 오백 년 전 그 목소리가, 오늘 여러분의 저녁에도 가 닿았기를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또 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