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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방에서 매일 밤 들려온 거친 숨소리의 정체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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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남편의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여인. 평생 소복을 입고 수절을 강요받으며 얼음장 같은 방에서 시들어가던 그녀의 방에, 어느 날 밤 복면을 쓴 정체불명의 사내가 담장을 넘어 숨어듭니다. 두려움도 잠시, 억눌렸던 여인의 본능은 사내의 뜨거운 숨결 앞에 무너져 내리고, 밤마다 은밀하고도 격정적인 밀회가 시작되는데요. 며느리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낯선 사내의 거친 숨소리를 듣게 된 시어머니, 그리고 복면을 벗은 사내의 기막힌 정체까지! 숨 막히는 조선의 규율을 깨고 피어난, 아찔하고도 가슴 따뜻한 해피엔딩 로맨스가 지금 펼쳐집니다.
※ 1: 겹겹이 닫힌 양반가의 담장, 시들어가는 청상과부의 한숨
조선의 드높고 푸른 하늘 아래,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솟을대문과 겹겹이 둘러쳐진 기와지붕의 담장은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괴물처럼 세상의 모든 소음과 빛을 삼켜버리고 있었습니다. 바깥세상에서는 장터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백성들의 땀 냄새가 활기차게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이 뼈대 깊은 명문 양반가의 깊은 안채는 세상의 시간과 완벽하게 단절된 채 오직 기묘하고도 무거운 적막만이 짓누르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너른 마당 한가운데 심어진 수십 년 된 늙은 매화나무의 바싹 마른 가지가 매서운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스산하고 날카로운 마찰음을 토해낼 뿐, 사람의 따뜻한 온기나 웃음소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집이었습니다. 이 거대하고 숨 막히는 저택의 가장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자리 잡은 별당에는, 열아홉이라는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가여운 여인, 소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양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사내와 혼례를 치렀고, 그마저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이름 모를 끔찍한 열병이 남편의 숨통을 앗아가면서 평생을 하얀 소복만 입고 수절해야 하는 가혹하고도 잔인한 운명의 굴레를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밤이 되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죽은 남편의 얼굴조차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을 만큼 짧고 덧없는 인연이었건만, 조선이라는 나라를 옭아매고 있는 엄격하고도 숨 막히는 유교적 법도는 그녀에게 평생토록 서릿발 같은 정절과 죽은 남편을 향한 무덤 같은 슬픔만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과부의 재가가 엄격히 금지된 이 나라에서, 한 번 혼례를 올린 여인은 죽어서도 그 집안의 귀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무서운 율법은 소희의 젊고 아름다운 육신을 산 채로 관속에 가두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내 나이 이제 겨우 갓 스물을 넘긴 스물하나이거늘. 창밖으로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의 향기조차 온전히 가슴 깊이 맡아본 지가 언제인지 이제는 까마득하여 기억조차 나지 않는구나. 매일 아침 차가운 청동 거울 속에 비친 내 핏기 없는 모습은 시퍼렇게 얼어붙어 원한을 품은 원귀와 다를 바 없으니, 차라리 그날 밤 남편이 숨을 거둘 때 나도 함께 혀를 깨물고 저승으로 따라갔더라면 이 지독하고 끔찍한 외로움과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소희는 흔들리는 촛불 하나에 의지해 굽은 등을 하고 밤새도록 길쌈을 하던 창백한 손을 멈추며, 뼈가 시리도록 깊고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하얗고 거친 무명 소복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천근만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고, 화장기 하나 없이 파리하게 질린 얼굴 위로는 삶에 대한 그 어떤 미련이나 생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짙은 체념만이 가득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시어머니의 엄격하고 날카로운 감시 아래 여사서를 소리 내어 읽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베를 짜고, 서늘한 사당에 모셔진 죽은 남편의 위패 앞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을 피우며 마르지 않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 그녀에게 허락된 삶의 전부이자 유일한 일과였습니다. 시어머니 역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힘겹게 가문을 지켜왔으며, 이제는 하나뿐인 금쪽같은 아들마저 잃은 슬픔에 매일 밤 방구석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가여운 여인이었기에, 소희는 자신의 그 숨 막히는 고통과 절망을 감히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한 채 그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며 속으로만 묵묵히 삼켜내야만 했습니다.
왱- 하는 짐승의 울음 같은 매서운 겨울바람이 창호지를 사정없이 때리며 지나가자, 소희는 몸을 파르르 떨며 얇고 차가운 무명 이불깃을 어깨 위로 턱밑까지 바짝 끌어당겼습니다. 방 안 한가운데 놓인 낡은 화로에는 이미 불씨가 꺼진 지 오래되어 차가운 잿더미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를 막아줄 방한복이나 그녀의 얼어붙은 몸을 덥혀줄 따뜻한 온기는 이 거대한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떨리는 입술을 달싹여 촛불을 훅 불어 끄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요 위에 무거운 몸을 웅크린 채 뉘었습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습니다. 쿵쾅, 쿵쾅.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너무나도 힘차고 규칙적으로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자, 소희는 그 생명력 넘치는 박동조차 몹시도 원망스럽고 저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토록 뜨거운 피가 온몸을 돌고 흐르며, 그 누구보다 젊고 아름다운 육신을 가졌건만, 그 모든 생명력이 한갓 새하얀 재가 되어 캄캄한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무런 의미 없이 바싹 시들어가야만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립된 별당의 차가운 밤공기는, 소희의 처량한 영혼마저 꽁꽁 얼려버릴 듯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그녀의 목을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 2: 달빛을 가르고 넘어온 그림자, 두려움이 욕망으로 바뀌는 밤
그렇게 죽은 듯이 숨죽여 지내던 며칠 뒤, 구름 사이로 창백하고 서늘한 만월이 떠오른 유난히도 깊고 적막한 밤이었습니다. 고요하던 별당의 마당 쪽에서 바스락거리는 미세한 마른 잎 밟는 기척이 들리더니, 이내 묵직하고도 일정한 발소리가 창호지 문 앞까지 아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다가왔습니다. 차가운 방바닥의 한기 탓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던 소희는, 그 낯선 기척에 온몸의 솜털이 일제히 곤두서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야심한 시각에 내 방 앞을 서성이는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담을 넘은 흉악한 도적 떼인가?' 소희는 숨을 죽이고 이불 자락을 꽉 움켜쥔 채 덜덜 떨며 문 쪽을 뚫어지라 응시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철컥하고 문고리가 아주 조심스럽게 돌아가더니, 삐걱거리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푸른 달빛을 등지고 선 채 안으로 발을 들인 것은, 놀랍게도 짙고 시커먼 복면으로 얼굴을 반 이상 가린, 몹시도 어깨가 넓고 건장한 사내의 거대한 실루엣이었습니다.
'아, 아악! 누, 누구...!'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소희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요 위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려던 순간이었습니다. 사내는 방금 전의 조심스럽던 움직임과는 정반대로, 마치 먹잇감을 덮치는 날쌘 짐승처럼 단숨에 방 안을 가로질러 소희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억세고 거친 손으로 소희의 입을 콱 틀어막으며 그녀를 바닥으로 눕혔습니다.
"조용히, 조용히 하시오. 여기서 비명을 질러 사람들을 깨우면, 당신도 나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내 하늘에 맹세코 당신의 목숨을 해치려 온 도적놈이 아니니, 제발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보시오."
귓가를 때리는 사내의 목소리는 땅바닥을 기어가는 듯 몹시도 낮고 굵었으며, 어딘지 모르게 애절하고 절박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소희는 공포에 질려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채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었지만,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사내의 크고 투박한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체온과, 그의 젖은 옷깃에서 훅 끼쳐오는 짙은 사내의 땀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묘한 최면에 빠져드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습니다. 사내는 저항하며 몸부림치던 소희의 움직임이 잦아들고 그녀가 숨을 고를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더니, 이내 아주 천천히, 몹시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입을 막았던 손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소희의 두 손을 자신의 억세고 뜨거운 양손으로 꽉 쥐어 감싸 쥐었습니다.
"대체 뉘시기에 이 깊은 야심한 밤중에 청상과부의 방에 이리 무단히, 그것도 복면을 쓰고 드신단 말입니까! 당장 제 손을 놓고 물러가시지 않으면, 은장도를 꺼내어 자결이라도 불사하겠사옵니다!"
소희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호통을 치려 했지만, 사내는 그 협박에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웅크린 소희의 한 치 앞까지 다가와,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가락으로 그녀의 차갑게 식은 뺨을 너무나도 부드럽고 애틋하게 어루만졌습니다. 복면 너머로 번뜩이는 사내의 깊고 새카만 눈동자에는, 여인을 겁탈하려는 흉악함이나 천박한 탐욕 따위는 단 한 줌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지독하고도 맹렬한, 오랜 세월 가슴 깊은 곳에 꾹꾹 억눌러온 애끓는 연모의 정과 절절한 슬픔만이 가득 담겨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죽이지도, 당신의 뜻을 거슬러 억지로 몸을 취하지도 않겠소. 그저... 그저 이토록 차갑고 시린 방에서 홀로 얼어붙어 시들어가는 당신을 단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소. 당신의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음과 끓는 피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차가운 눈물과 체념 속에 무참히 파묻히는 것을 멀리서 더는 지켜볼 수가 없었소. 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져 미쳐버릴 것만 같았소..."
사내의 거칠고도 불덩이 같은 손길이 소희의 창백한 뺨을 지나 가녀린 목덜미를 스치자, 소희는 전기에 감전된 듯 온몸을 파르르 떨며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지엄한 양반가의 법도와 수절 과부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서릿발 같은 정절이 맹렬하게 경고음을 울려대며 당장 이 사내의 뺨을 치라 명하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아니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낯선 사내의 압도적인 체온과 듬직하고 단단한 품은 그녀의 꽁꽁 얼어붙었던 이성과 이성을 순식간에 눈 녹듯 녹여내고 있었습니다. 사내의 뜨겁고 짐승 같은 숨결이 소희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 위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맹렬한 힘으로 포개어졌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소희의 입술이 저항할 틈도 없이 열리고, 두 사람의 거칠고 다급한 숨소리가 어두운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공포는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격정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으로 바뀌었고, 평생을 차가운 소복 아래 억눌려 생기를 잃어갔던 가여운 여인의 본능이, 사내의 땀방울 맺힌 뜨거운 품속에서 마침내 거대한 화산처럼 폭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 3: 멈출 수 없는 밀회, 창호지 너머로 새어 나간 거친 숨소리
그날 밤, 이성과 법도를 찢어버린 아찔하고도 충격적인 첫 만남이자 짐승 같은 정사 이후, 정체불명의 복면 사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이 구름에 가려지는 깊은 밤이 찾아올 때마다, 높은 양반가의 담장을 새처럼 가볍게 넘어 소희의 별당 방으로 은밀하게 숨어들었습니다. 처음 복면 사내를 마주했을 때는 목숨을 잃을까 두려움과 과부로서의 수치심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던 소희도, 어느새 밤이 깊어지면 낡은 화로에 귀한 숯불을 피워 방 안을 따뜻하게 데워두고, 방문의 문고리를 살짝 열어둔 채 붉게 상기된 얼굴로 문밖의 기척만을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시어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죽은 남편을 기리며 슬픔에 잠긴 차가운 얼음꽃 같은 며느리의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지만, 태양이 지고 어둠이 깔리면 그녀의 몸속에 잠들어 있던 여인의 관능과 맹렬한 욕망이 무섭게 깨어났습니다.
어스름한 달빛만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방 안을 희미하고 은밀하게 밝히는 늦은 밤. 삐걱거리는 문이 열리고 낯익은 복면 사내가 땀을 쥐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소희는 짐승처럼 기다렸다는 듯 요 위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넒은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와락 안겼습니다. 사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희를 안아 들어 요 위에 눕혔고, 소희의 하얗고 정갈했던 소복 고름을 단숨에 끌러 거칠게 풀어 헤쳤습니다. 두 사람의 뜨거운 몸은 마치 자석의 양극이 만난 것처럼, 혹은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맹렬하고 끈적하게 얽혀 들었습니다. 방 안에는 더 이상 밤하늘을 원망하던 과부의 처량한 한숨 소리나 눈물 쏟는 소리가 아닌, 서로의 살갗을 미친 듯이 탐하며 터져 나오는 아슬아슬하고도 관능적인 교성과, 짐승처럼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만이 짙고 무겁게 깔려 있었습니다.
"이리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제 방으로 찾아오시면 아니 됩니다... 서방님을 향한 제 마음도 터질 듯 주체할 수 없사오나, 행여나 집안의 종년들이나 시어머니께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우리 두 사람 모두 돌팔매질을 당하고 형장의 이슬로 비참하게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소희가 땀에 흠뻑 젖은 사내의 단단한 어깨를 두 팔로 끌어안으며, 두려움과 애정이 섞인 목소리로 절절하게 속삭였습니다. 사내는 소희의 이마와 콧등에 맺힌 땀방울을 정성껏 입술로 닦아내며, 복면 너머로 번뜩이는 짙은 눈망울로 그녀의 눈을 깊게, 영혼까지 꿰뚫어 볼 듯 바라보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의 여인이여. 이토록 눈부신 당신을 온전히 내 품에 품을 수만 있다면, 내 목숨 따위는 이 자리에서 수백 번이라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소. 내 심장이 이리도 당신을 향해 미친 듯이 뛰고 있는데, 이 뜨겁고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어찌 그깟 양반가의 차갑고 죽어빠진 법도 따위로 억지로 막을 수 있단 말이오. 내 당신을 지킬 것이니, 당신은 그저 내 품에서 시름을 놓고 안겨만 있으시오."
죽음을 불사한 두 사람의 비밀스럽고 위험한 밀회는 날이 갈수록 대담해졌고, 서로의 육체와 영혼을 향한 사랑은 그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한없이 깊어만 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둠을 틈타 새처럼 조심스럽게 오간다 한들, 이 세상에 영원하고 완벽한 비밀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습니다. 꼬리가 길면 결국 세상의 덫에 밟히는 것처럼, 겹겹이 닫혀 있던 두 사람의 은밀한 밤의 흔적은 조금씩, 아주 미세한 균열을 통해 밖으로 새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몹시도 적막한 깊은 밤, 죽은 아들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러 안채를 지나 별당 쪽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기던 늙은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잘 자고 있는지 멀리서 불빛이나 확인하려던 시어머니는, 소희의 방 앞을 지나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몹시도 기묘하고 낯선 소리에 발걸음을 돌처럼 우뚝 멈추고 말았습니다.
'이 고요한 한밤중에, 홀로 지내는 며느리의 굳게 닫힌 방에서 웬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냐...? 게다가... 저, 저 숨넘어가는 듯한 숨소리는 필시...!'
시어머니는 가슴이 천길 낭떠러지로 철렁 내려앉으며, 주름진 두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랗게 부릅떴습니다. 굳게 닫힌 창호지 문 너머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사내의 굵은 쇳소리와, 분명히 젊은 여인이 쾌락에 뒤엉켜 내지르는 거칠고도 달콤한 억눌린 신음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너무나도 뚜렷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평소 그토록 말수가 적고 얌전하여, 대문 밖 출입은커녕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으며 죽은 아들을 향한 정절을 맹세하던 며느리의 방이었습니다. 그런 신성한 별당에서 외간 남자의 짐승 같은 기척과 정사의 소리가 들려오자, 시어머니의 온몸은 극도의 분노와 끔찍한 배신감으로 사시나무가 겨울바람에 흔들리듯 통제할 수 없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양반가의 드높은 명예와 체통을 단숨에 시궁창에 처박아버린 끔찍하고 더러운 불륜의 현장을 두 귀로 똑똑히 목격한 시어머니는, 당장이라도 신고 있던 갖신을 벗어던지고 저 얇은 방문을 거칠게 박차고 들어가, 벌거벗고 뒹구는 두 연놈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무서운 살인 충동에 휩싸인 채,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 4: 시어머니의 깊은 의심과 은밀한 엿보기 (다음 화)
분노로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 부들부들 떨리던 시어머니는, 당장이라도 주먹을 쥐고 며느리의 얇은 창호지 방문을 거칠게 발로 박차고 들어가, 금수만도 못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 두 연놈의 추악하고 벌거벗은 덜미를 낚아채려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양반 가문의 신성한 명예를 시궁창에 처박은 이 끔찍한 불륜은, 며느리의 목에 사약을 들이붓고 멍석말이를 당해 죽어 마땅한 대역죄였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방 문고리를 향해 덜덜 떨리는 손을 뻗으려는 바로 그 찰나,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며느리의 그토록 억눌렸던, 그러나 너무나도 절박하고 애절하게 살아 숨 쉬는 신음 소리와 사내의 다정한 숨결에 시어머니의 발걸음은 마치 땅에 뿌리를 내린 듯 그 자리에 꽁꽁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내 먼저 간 하나뿐인 귀한 아들이 내게 남겨놓고 간 소중한 핏줄이나 다름없는 불쌍한 아이거늘. 갓 스물을 넘긴 저 가여운 것이, 사방이 꽉 막힌 차가운 독수공방에서 매일 밤 제 허벅지를 꼬집으며 피눈물을 흘리며 시들어가는 것을 내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조선의 숨 막히는 양반의 법도가 아무리 서슬 퍼렇고 무섭다 한들, 한창 피어나는 젊고 아리따운 여인의 끓는 피와 외로움을 어찌 한 장의 종이 쪼가리로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시어머니 역시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평생을 한 많은 수절 과부로 살아온 여인이었기에, 밤마다 뼈가 시리도록 찾아오는 그 참담하고도 숨 막히는 끔찍한 외로움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뼛속 깊이, 처절하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며느리가 가문의 명예에 씻을 수 없는 큰 먹칠을 하고 능지처참을 당할 죽을죄를 지은 것이 명백했으나, 가여운 젊은 여인의 그 처절하고도 달콤한 몸부림에 차마 무자비한 심판의 칼날을 들이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늙은 주름진 입술에서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문 채, 터질 듯이 뛰는 가슴을 부여안고 소리 없이 돌아서서 자신의 안채를 향해 무겁고 쓸쓸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충격적인 밤 이후, 시어머니의 머릿속은 수만 가지 끔찍한 생각과 망상들로 어지럽게 뒤엉켜 단 한숨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대체 어느 집안의 어떤 겁 없고 간 큰 놈팽이가, 감히 이 뼈대 깊은 양반가의 높은 담장을 짐승처럼 넘어와 며느리의 순결을 무참히 유린하고 있단 말인가. 혹시 동네 주막을 전전하는 질 나쁜 왈패나 사람을 죽이는 흉악한 산적놈이 밤마다 칼을 들이밀고 무력으로 가여운 며느리를 억압하고 능욕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녀의 상상대로 며느리가 끔찍한 협박에 못 이겨 몸을 허락하고 있는 것이라면, 가문의 체통이고 뭐고 당장 사내를 붙잡아 포도청에 넘기고 며느리를 구출해 내야만 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서운 의심과 피를 말리는 불안 속에 며칠을 더 가슴 앓이 하던 시어머니는, 기어코 오늘 밤 그 발칙하고 짐승 같은 사내의 정체를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야 말겠다고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구름이 짙게 끼어 달빛조차 자취를 감춘 유난히 캄캄하고 으스스했던 며칠 뒤의 늦은 밤. 시어머니는 하인들이 깰세라 쥐 죽은 듯 발소리를 죽인 채, 다시 며느리의 별당 쪽으로 은밀하게 다가갔습니다. 방문 앞 차가운 툇마루에 숨을 죽이고 쪼그려 앉은 시어머니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낡은 창호지 한구석에 아주 작은 구멍을 하나 뚫었습니다. 심장 소리가 방 안까지 들릴까 노심초사하며 그 작은 구멍 틈으로 방 안의 풍경을 엿보려던 찰나, 방 안에서 정사를 끝낸 듯 나지막하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남녀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소희 낭자. 오늘따라 밤공기가 몹시도 차고 맵습니다. 제 품으로 더 깊이, 빈틈없이 들어오시지요. 당신의 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발을 내 어찌 덥혀드려야 할지, 이리 안고 있어도 늘 가슴이 아프고 저리단 말이오."
"괜찮습니다, 서방님... 서방님의 이 넓고 따뜻한 품에 안겨 당신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제 온몸은 이미 한여름 밤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제 곁에 누워 저를 안아주고 계신다는 이 현실이, 아직도 저는 깨면 사라질 꿈만 같아 두렵사옵니다."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에는 천박한 색정이나 강압적인 폭력, 혹은 몸을 거래하는 비열함 따위는 단 한 점도 묻어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서로를 향한 지독하리만치 깊고 애틋한 맹목적인 연모, 그리고 상대의 처지를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아끼는 숭고한 다정함과 경건함만이 꿀처럼 뚝뚝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창호지 구멍을 통해 방 안의 실루엣을 엿본 시어머니의 두 눈이 화들짝 놀라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커다랗게 부릅떠졌습니다. 호롱불빛 아래 윗옷을 벗고 있는 사내의 널찍하고 듬직한 등판은 결코 고기나 써는 백정이나 거친 왈패의 상스러운 체구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나지막하고 몹시도 기품 있는 목소리의 억양은, 시어머니의 귀에 너무나도 익숙하고 낯익은, 바로 담장 하나를 맞대고 있는 이웃집 대감댁의 반듯하고 수려하기로 소문난 '윤 도령'의 목소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일치했던 것입니다!
※ 5: 복면이 벗겨진 사내의 정체, 오랜 연모의 고백 (다음 화)
시어머니는 심장이 멎을 듯한 엄청난 충격에, 너무 놀라 하마터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를 뻔한 입을 두 손으로 황급히 꽉 틀어막았습니다. 윤 도령이라니! 윤 도령이라면 어릴 적부터 병약했던 죽은 자신의 아들과 한 서당에서 글공부를 함께 하며 친형제보다 더 막역하게 지내온, 심성이 대나무처럼 올곧고 학식이 뛰어나 훗날 장래가 몹시도 촉망되는 훌륭하고 귀하디귀한 청년이었습니다. 죽은 친구의 장례식에서 누구보다 슬피 울며 상여를 메었던 그 윤 도령이 어찌하여 밤마다 까만 복면을 쓰고 이웃집 미망인의 방 담장을 도적고양이처럼 넘고 있단 말인가! 충격과 혼란,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 속에 휩싸인 시어머니는 차가운 마루에 털썩 주저앉은 채 덜덜 떨며 방 안의 상황을 넋을 잃고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방 안에서는 사내가 땀에 흠뻑 젖은 검은 복면을 천천히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호롱불에 비친 사내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늠름한 얼굴은, 시어머니의 소름 끼치는 짐작대로 틀림없는 이웃집의 수재, 윤 도령이었습니다. 복면을 완전히 벗은 그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 소희 역시,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붉게 달아오른 입을 가린 채 눈물을 글썽이며 원망스럽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며칠 전 밤, 두 사람이 이성을 잃고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던 중 엉킨 손길에 우연히 사내의 꽉 묶여 있던 복면이 벗겨지며 소희 또한 짐승 같던 그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고, 친구의 아내를 품었다는 엄청난 충격과 뼈를 깎는 부끄러움에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던 터였습니다.
"도련님... 어찌하여... 대체 어찌하여 가여운 저를 이리도 참담하고 끔찍한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십니까. 도련님은 제 죽은 지아비와 어린 시절부터 십년지기로 친형제처럼 지내시던 분이 아닙니까. 어찌 이리도 짐승만도 못한 패륜적인 짓을 저지르며, 친구의 무덤에 채 잔디도 자라기 전에 과부인 제 방에 숨어 들어오신 것입니까! 이제 저는 이 더러운 몸으로 무슨 낯을 들고 시어머니를 뵙고 세상을 살아가란 말씀이십니까!"
소희가 원망과 수치심이 뒤섞인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윤 도령의 넓은 가슴팍을 작은 주먹으로 미친 듯이 치며 서럽게 흐느꼈습니다. 윤 도령은 자신을 때리는 소희의 작고 연약한 주먹을 피하지 않고 오롯이 맞아주다가, 이내 그녀의 손을 자신의 넓고 뜨거운 두 손으로 부드럽고 단단하게 감싸 쥐었습니다. 그리고는 피를 토하는 듯 절절하고 애끓는 목소리로, 그동안 가슴속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묵고 묵은 진심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용서하시오, 소희 낭자. 내 당신에게 이런 끔찍한 고통과 평생 씻지 못할 죄책감을 안겨줄 생각은 맹세코, 하늘이 두 쪽 나도 추호도 없었소. 허나... 당신이 내 소중한 친구의 아내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아니, 당신이 저잣거리 너머 이 마을로 처음 이사를 오던 그 아주 어릴 적 댕기 머리 시절부터, 내 어리석은 마음은 오직 당신, 소희 낭자 단 한 사람만을 향해 불길처럼 끓어오르고 있었소."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윤 도령의 충격적인 고백에, 소희는 울음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평생을 흠모하던 당신이 내 친구와 혼례를 치른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소. 허나 피를 나눈 친구의 앞날과 낭자의 행복을 위해,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내며 피눈물을 삼키고 당신을 억지로 단념하려 했지. 헌데... 하늘이 무심하게도 내 친구를 그리 일찍 데려가 버리고, 당신이 이 꽃다운 나이에 캄캄하고 얼어붙은 독수공방에 갇혀 평생 피도 눈물도 말라가며 짐승처럼 시들어가는 것을... 바로 옆집 담장 너머로 매일같이 지켜보아야만 했소. 매일 밤 당신 방의 촛불이 꺼지고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창자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한 처절한 고통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단 말이오!"
윤 도령의 붉어진 눈동자에도 어느새 굵고 뜨거운 눈물이 왈칵 차올라 사내의 뺨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내 목숨이 형장의 이슬로 당장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이대로 당신이 차가운 원귀가 되어 죽어가는 것을 내 눈 뜨고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소! 양반의 썩어빠진 체통도, 멸문지화를 당할 가문의 명예도 내게는 당신의 찰나의 숨결과 따뜻한 온기보다 결코 중요하지 않았단 말이오! 당신을 안고 함께 영원히 지옥불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평생 죽는 날까지 당신만을 맹렬하게 연모하며, 헛된 귀신이 아닌 당신의 진짜 사내가 되어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소. 부디 이토록 미련하고 이기적인 나의 더러운 마음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벌하여 주시오..."
양반의 모든 기득권과 자신의 목숨까지 바닥에 내던진 사내의 그 맹렬하고도 처절한 피 끓는 순애보 앞에, 소희의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서릿발 같은 빗장은 결국 봄눈 녹듯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친구의 친구로서 원망하지 못하고, 소리 내어 엉엉 울며 윤 도령의 널찍하고 듬직한 품으로 뛰어들어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뺨에 흐르는 짠 눈물을 입술로 핥아주며, 세상의 모든 차가운 잣대와 법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어느 때보다 애틋하고도 격정적인 밤을 서로의 품에 엉켜 지새웠습니다.
문밖에서 이 모든 과정을 바늘구멍을 통해 지켜보고, 눈물겹고도 애절한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연을 단 한 마디도 빠짐없이 모두 듣게 된 시어머니. 분노로 가득 찼던 그녀의 주름진 뺨 위로도,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굵고 뜨거운 공감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며 낡은 치맛자락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 6: 시어머니의 눈물 어린 묵인, 담장을 허문 따뜻한 해피엔딩 (다음 화)
그날 눈물의 고백이 오간 충격적인 밤 이후, 시어머니는 별당에서 매일 밤 벌어지는 며느리의 밀회에 대해 일절 입을 굳게 다문 채, 집안의 그 누구에게도 어떤 내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불륜을 단죄하여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대신, 오히려 늦은 밤이 되면 집안의 눈치 빠른 종년들과 하인들을 모두 일찍 행랑채로 물려 강제로 재우고, 혹여나 누가 수상한 발소리를 낼세라 마당을 서성이는 집지키는 개들마저 기둥에 단단히 묶어두는 등 두 사람의 목숨 건 밀회가 세상의 더러운 입방아에 오르지 않도록 남몰래 거대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이웃집 윤 도령의 평소 대쪽같이 곧고 바른 성품을 누구보다 곁에서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평생을 슬픔 속에 잠겨 산송장처럼 지내던 며느리의 뺨에 다시금 복사꽃처럼 예쁜 붉은 생기가 돌고, 입가에 수줍은 웃음이 번지는 것을 매일 아침 보게 되면서, 시어머니는 이 금지되고 잔혹한 사랑을 오히려 하늘이 맺어준 기구한 뜻이라 여기며 눈물로 묵인하기로 굳게, 아주 단단히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눈을 피해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아슬아슬하지만, 그 누구보다 너무나도 애틋하고 벅차게 행복했던 비밀 연애가 이어지던 어느 봄날. 며느리 소희의 여린 몸에 생각지 못한, 그러나 예견된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아침상을 물릴 때마다 심한 헛구역질을 하며 끔찍한 입덧을 시작한 것입니다! 혼자 사는 수절 과부의 배가 불러온다는 것은 곧 가문의 멸문지화이자, 여인의 입에 끓는 사약을 들이부어야 하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태였습니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소희는 발각될 두려움에 사색이 되어 식음을 전폐하고 방문을 굳게 걸어 잠갔고, 소식을 듣고 야밤에 달려온 윤 도령 역시 소희를 부서질 듯 끌어안고 함께 피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두 사람이 지옥 같은 공포에 떨고 있던 바로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별당의 문이 밖에서 벌컥 열리며 시어머니가 몹시도 단호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마침내 모든 것이 발각되었다는 끔찍한 공포에 하얗게 질린 두 사람은,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려달라며 싹싹 빌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짐승만도 못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지아비를 잃고도 음탕함을 참지 못한 저의 불찰이오니, 부디 제게 사약을 내리시어 저를 죽이시고 이 훌륭한 사람은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소희가 엎드려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으나, 시어머니는 화를 내거나 뺨을 치는 대신 말없이 다가와 두 사람의 어깨를 잡아 따뜻하고 굳세게 일으켜 세웠습니다.
"일어나거라. 울지 말고 어서 일어나거라. 내 이미 너희 둘의 뼈저리고 애달픈 사연을 오래전부터 빠짐없이 다 지켜보고 알고 있었느니라. 가여운 내 며느리야... 그동안 얼마나 무섭고 마음고생이 많았느냐."
시어머니의 예상치 못한 너무나도 따뜻한 위로의 말과 눈물에, 두 사람은 놀라움과 터질 듯한 감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윤 도령. 자네가 내 가여운 며느리를 짐심으로 목숨 바쳐 아끼고 평생을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다면, 내 자네들에게 한 가지 묘안을 내겠네. 이 아이의 배가 더 눈에 띄게 불러오기 전에, 내일 밤 당장 내 며느리를 데리고 한양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저 먼 남쪽 지방으로 야반도주를 하게나!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는 며느리가 깊고 무서운 전염병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역병을 막기 위해 야밤에 황급히 화장을 치렀다고 내 철저하고 완벽하게 둘러댈 것이니 아무 걱정 말게."
시어머니는 미리 치밀하게 준비해 둔, 자신이 평생을 아끼고 아껴 모은 묵직한 금은보화와 은전이 가득 든 보따리를 윤 도령의 떨리는 손에 꽉 쥐여주었습니다.
"가서 이 돈으로 저 멀리 낯선 땅에 작은 논밭이라도 일구고,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떳떳한 부부로서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예쁜 아기 낳고 행복하게 살거라. 그것이 내 죽은 아들을 위하는 유일한 길이요, 늙은 내 남은 여생의 유일한 바람이니라. 어서 떠나거라!"
시어머니의 크나큰 희생과 목숨을 건 바다 같은 은혜에, 두 사람은 바닥에 엎드려 소리 내어 엉엉 울며 수십 번이고 이마가 찢어지도록 큰절을 올렸습니다. 다음 날 칠흑같이 어두운 깊은 밤, 윤 도령과 소희는 봇짐을 메고 시어머니의 눈물 어린 배웅을 받으며, 평생을 옭아맸던 겹겹이 닫혀 있던 억압의 담장을 단숨에 넘어 새로운 생명과 삶을 찾아 자유롭게 멀리멀리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남쪽 바닷가의 어느 평화롭고 따뜻한 마을. 거대한 상단을 일궈 조선 남부 제일의 거상이 된 윤 도령의 크고 너른 기와집 마당에는, 윤 도령과 소희를 반반씩 빼닮은 예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세상을 채우며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윤 도령과 소희는 세상 그 누구보다 금슬 좋은 잉꼬부부로 이름이 났고, 훗날 늙으신 시어머니가 홀로 남겨지자 몰래 가마를 보내어 남쪽으로 모셔와 친어머니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봉양하며 평생토록 남부럽지 않은 벅찬 행복과 만복을 누리며 살았다는, 참으로 가슴 따뜻하고 짜릿한 해피엔딩의 로맨스 전설이 오늘날까지도 훈훈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야담광장에서 들려드린 이야기, 어떠셨나요? 숨 막히는 조선의 법도와 차가운 수절의 굴레 속에서도 결코 꺾을 수 없었던 두 남녀의 맹렬하고도 뜨거운 사랑. 그리고 그 금지된 사랑을 비난하기는커녕 가슴으로 껴안아 기적 같은 해피엔딩을 만들어준 시어머니의 지혜롭고 위대한 사랑이 참으로 긴 여운을 남깁니다. 진정한 사랑 앞에서는 어떤 억압과 장애물도 결국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네요. 여러분의 일상에도 이 이야기처럼 따뜻하고 벅찬 사랑이 늘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도 야담광장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다음에도 여러분의 귀와 마음을 훔칠 흥미진진한 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