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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성 문이 닫힌 뒤에만 열리는 주막, 주모가 내어 준 국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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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인정(人定) 종이 울리고 도성의 굳게 닫힌 문밖, 오갈 데 없는 밤거리의 사람들을 위해 슬그머니 청사초롱을 내거는 비밀스러운 주막이 있습니다. 돈도 받지 않고 그저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언 몸을 녹여주는 이름 모를 주모. 불법 영업을 단속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잠입한 원칙주의자 포교는 그곳 부뚜막에서 20년 전 생이별한 누이의 물건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추운 섣달그믐의 겨울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기적 같은 남매의 재회와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의 감동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 1: 인정 종이 울린 뒤 열리는 비밀 주막과 소문을 쫓는 최 포교

    조선의 심장, 한양 도성에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면 보신각의 커다란 종이 서른세 번의 묵직한 울림을 토해낸다. 이 인정(人定) 종소리가 도성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면,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비롯한 사대문과 사소문의 육중한 빗장이 일제히 굳게 닫힌다. 이제부터는 통행금지다. 거리를 배회하는 자는 국법에 따라 엄벌을 받는 순라(巡邏)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특히나 살을 에이는 듯한 섣달그믐의 삭풍이 인왕산 자락을 타고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밤이면, 미처 도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거나 밖으로 나가지 못해 문밖에 고립된 길손들에게는 그 밤이 곧 생사를 넘나드는 지옥과도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양 변두리의 가난한 백성들 사이에서 기이하고도 따뜻한 소문 하나가 바람을 타고 은밀하게 돌기 시작했다. 도성 문이 닫히고 인적이 완전히 끊어지고 나면, 인적 드문 성곽 밖 외진 골목 어귀에 슬그머니 불을 밝히는 주막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내 참말이라니까! 어젯밤 내가 노름판에서 돈을 다 잃고 쫓겨나 통금에 걸려 얼어 죽을 뻔했는데, 골목 저 안쪽에서 청사초롱 하나가 흔들리더란 말이지. 홀린 듯이 가봤더니 허름한 주막이 하나 열려 있었어. 그 늦은 밤에 말이야."

    "에이, 이 사람아. 순라군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돌아다니는데 어느 간 큰 주모가 문을 연단 말인가? 필시 자네가 추위에 얼어 죽기 직전이라 헛것을 본 게지."

    "아니라네! 헛것이 어찌 그토록 구수하고 진한 고기 국밥을 내어준단 말인가. 뚝배기 가득 펄펄 끓는 국밥을 내어주는데, 주모는 얼굴을 수건으로 칭칭 감고 있어서 누군지도 모르겠더라고. 게다가 돈도 받지 않았어! 밥을 다 먹고 아랫목에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아침이 밝아 도성 문이 열려 있더군. 이건 필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이거나 둔갑한 여우일지도 몰라!"

    시장통 국밥집에 모여든 왈패와 장사꾼들이 떠들어대는 이 신비한 주막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돈을 받지 않고 야밤에 국밥을 내어주는 주막. 갈 곳 없는 거지와 파락호, 길을 잃은 나그네들이 그곳에서 목숨을 건졌다는 무용담이 밤안개처럼 짙어질 무렵, 이 소문은 한양 도성 치안을 담당하는 좌포도청의 깐깐한 원칙주의자 최 포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최 포교는 포도청 내에서도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으로 통하는 사내였다. 그의 얼굴에는 거친 범죄자들을 상대하며 얻은 크고 작은 흉터들이 훈장처럼 새겨져 있었고, 두 눈은 늘 매의 눈처럼 날카롭게 번뜩였다.

    '국법을 어기고 통금이 지난 야밤에 불법으로 주막을 연다? 게다가 돈도 받지 않는다고?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란 없는 법. 필시 야밤에 장물아비들이 물건을 거래하거나 흉악한 도적 떼가 은신처로 삼기 위해 눈속임으로 끓여내는 국밥일 것이다. 내 이 맹랑한 불법 주막의 덜미를 잡아들여 도성의 기강을 바로잡을 것이다.'

    최 포교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신조였다. 그가 이토록 냉혹하고 철저한 원칙주의자가 된 데에는 남모를 깊은 상처가 숨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스무 해 전, 전국을 휩쓸었던 끔찍한 대기근과 전염병의 참상 속에서 그는 부모를 모두 잃고 세상에 덩그러니 버려졌었다. 그때 그의 나이 고작 열 살. 굶주림에 허덕이며 거리를 떠돌던 어린 그를 업어 키운 것은 단 하나뿐인 열다섯 살의 누이동생이었다.

    '오라비, 조금만 참아. 내가 어떻게든 남의 집 밭을 매서라도 쌀을 얻어올 테니,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야 해. 알았지?'

    그러나 누이는 그날 밤 쌀을 구하러 지주의 집으로 간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누이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밤거리를 헤매다 왈패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죽어갈 뻔했던 그는, 힘이 없으면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다는 처절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그는 악착같이 무예를 연마하여 포도청의 포교가 되었지만, 스무 해가 지나도록 누이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 지독한 그리움과 원망은 세월과 함께 단단하게 굳어져 그의 가슴속에 차가운 바위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기다리라고 했으면서… 나를 두고 어디로 가버린 것입니까, 누님. 내가 이렇게 포교가 되어 온 나라를 뒤지고 다니는데 어찌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단 말입니까.'

    최 포교는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서글픔을 애써 억누르며 단속을 위한 변장을 시작했다. 번쩍이는 포교의 관복을 벗어 던지고, 시장통에서 구한 다 해진 누더기 저고리와 낡은 짚신으로 갈아신었다. 얼굴에는 검댕을 묻혀 며칠은 굶은 떠돌이 길손의 행색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오늘 밤, 그 비밀 주막의 정체를 낱낱이 파헤쳐 요절을 내고야 말겠다.'

    날 선 결의를 다지며, 최 포교는 칼바람이 몰아치는 도성 밖의 어두운 골목길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인정 종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차갑고도 깊은 겨울밤의 시작이었다.

    ※ 2: 칼바람을 뚫고 잠입한 주막, 언 몸을 녹이는 뭉클한 국밥 한 그릇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도성 밖의 골목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구불구불한 흙길 위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귀신 곡소리처럼 윙윙거리며 휩쓸고 지나갔다. 얇은 누더기 한 벌에 의지한 최 포교의 몸은 금세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짚신을 신은 발가락은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매서운 바람에 노출된 뺨은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소문이 거짓이었나. 이토록 추운 밤에 문을 여는 주막이 있을 리가 없지. 아무래도 왈패 놈들의 허풍에 내가 단단히 놀아난 모양이군.'

    한 시간 가까이 외진 골목을 헤매던 최 포교가 막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골목 가장 깊숙한 곳, 무너져가는 낡은 흙담 너머로 희미한 불빛 하나가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낡고 색이 바랜 청사초롱이었다. 불빛 아래로는 삐걱거리는 나무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새로 하얗고 몽글몽글한 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곳이군. 도성 문이 닫힌 뒤에만 열린다는 그 불법 주막.'

    최 포교는 날카로운 눈빛을 숨긴 채, 짐짓 추위에 떨며 지친 길손의 흉내를 내며 조심스럽게 나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계… 계시오. 통금을 놓쳐 갈 곳이 없는 딱한 과객인데, 언 몸을 녹일 수 있겠소…."

    주막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지옥 같은 추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장작불이 쉴 새 없이 타오르는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뽀얀 사골 국물이 펄펄 끓고 있었고, 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수하고도 진한 고기 냄새가 차갑게 얼어붙은 최 포교의 폐부를 단숨에 파고들었다. 허름한 주막의 아랫목에는 이미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괴나리봇짐을 껴안고 꾸벅꾸벅 조는 늙은 봇짐장수, 옷차림이 남루한 어린 남매, 그리고 과거에 낙방한 듯 술잔을 기울이는 처량한 선비까지.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었지만, 모락모락 김이 나는 뚝배기를 든 채로는 더없이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서 오시지요. 몹시도 추운 밤이옵니다. 이리 앉으시어 언 몸부터 녹이시지요."

    부뚜막 앞을 지키고 있던 주모가 국자로 국물을 젓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소문대로 그녀는 낡은 무명 수건을 머리에 깊숙이 두르고 있어 이마와 눈매만 간신히 보일 뿐, 얼굴의 절반 이상이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한겨울의 아랫목처럼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주모는 낡은 나무 탁자 위로 커다란 뚝배기 하나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따뜻할 때 어서 드시지요. 변변치 않은 솜씨지만 허기를 달래기엔 부족함이 없을 겝니다."

    최 포교는 뚝배기 안을 들여다보았다. 뽀얗게 우러난 진한 사골 국물 위로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와 푹 삶아진 양지머리 고기가 듬뿍 담겨 있었고, 썰어 넣은 파가 푸릇푸릇하게 떠 있었다. 침샘을 자극하는 진한 향기에 최 포교는 잠시 자신이 이곳에 잠입한 진짜 목적도 잊은 채 숟가락을 들었다.

    '일단 맛을 보고 난 뒤에 이들의 불법을 추궁해도 늦지 않겠지.'

    그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크게 떠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순간, 최 포교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맛은…?'

    입안을 가득 채우는 국물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했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푹 고아진 고기의 감칠맛과 뭉근하게 끓인 무의 단맛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훌륭한 음식의 맛이 아니었다. 얼어붙었던 몸의 혈관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는 이 따뜻한 온기 속에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맛이 숨어 있었다. 스무 해 전, 부모님을 잃고 움막에서 덜덜 떨고 있을 때, 누이가 이웃집 잔칫집에서 얻어온 찌꺼기 뼈다귀를 주워다 밤새워 끓여주었던 바로 그 맛.

    '동생아, 고기는 없지만 뼈를 오래 고았으니 국물은 달 것이다. 이거 먹고 우리 힘내서 꼭 살아남자꾸나. 알았지?'

    귓가에 맴도는 누이의 다정한 목소리가 국밥의 뜨거운 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듯했다. 최 포교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국밥을 허겁지겁 입에 퍼 넣기 시작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뜨거운 국물인지, 자신이 흘린 서러운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순식간에 뚝배기 바닥까지 싹싹 긁어 비우자, 곁을 지나던 주모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시장하셨던 모양입니다. 아직 솥에 국이 많이 남아 있으니, 한 그릇 더 내어 드릴까요?"

    "아… 아니오. 너무 맛있어서 게눈 감추듯 먹었소이다. 내 평생 이리 깊고 따뜻한 국밥은 처음이오. 대체 국물에 무슨 비법을 쓰시기에 이리 가슴이 뭉클해지는 맛이 나는 겝니까?"

    최 포교가 목멘 소리로 묻자, 주모는 빙그레 눈웃음을 지으며 무명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비법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 그저 갈 곳 없는 분들이 한 끼라도 든든히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 뼈를 부서져라 푹 고아내고 또 고아낸 것뿐이지요. 춥고 배고픈 밤엔 누군가가 끓여주는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 열 첩 반상 부럽지 않은 법이니까요."

    그 다정한 말투와 눈빛. 최 포교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단순한 동정심인가, 아니면 세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선의인가. 이런 마음을 가진 자가 도적 떼와 한통속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왜 도성 문이 닫힌 뒤에만 몰래 문을 여는 것이란 말인가?'

    최 포교는 주모의 뒤통수를 날카로우면서도 복잡한 시선으로 쫓으며, 그녀의 정체와 이 주막의 비밀을 반드시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혔다.

    ※ 3: 잠들지 못하는 밤, 부뚜막에서 발견한 스무 해 전의 조각난 기억

    밤이 깊어갈수록 바깥의 삭풍은 더욱 거세게 문풍지를 때렸지만, 주막 안은 장작불의 열기와 사람들의 온기로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길손들은 하나둘씩 따뜻한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고단한 몸을 뉘었다. 코를 고는 소리와 평온한 숨소리가 주막 안을 채우는 동안, 최 포교는 잠을 청하는 척하며 벽에 기대어 실눈을 뜬 채 부뚜막 쪽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주모는 손님들이 모두 잠든 뒤에도 쉬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 없이 움직이며 손님들이 먹고 난 그릇을 씻고, 다 해진 손님들의 신발을 화덕 근처로 가져와 따뜻하게 말려주기까지 했다. 누군가 밥값을 치르려 내어놓은 꼬깃꼬깃한 엽전 몇 닢을 발견하고는, 도리어 잠든 손님의 봇짐 속에 몰래 찔러 넣어주는 모습도 목격했다.

    '돈을 받지 않는다는 소문이 정말 사실이었어. 내일 아침 길을 떠날 자들의 노잣돈까지 걱정해주다니. 대체 저 여인의 진짜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손해 보는 짓을 밤마다 반복한단 말인가.'

    최 포교의 가슴속에서 수사관으로서의 의심과 한 인간으로서의 묘한 감동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장작불이 잦아들며 방 안이 조금씩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주모는 뒷마당으로 장작을 가지러 나가기 위해 조용히 나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이 기회였다. 최 포교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부뚜막 쪽으로 다가갔다.

    '이곳저곳을 뒤져보면 그녀의 진짜 신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는 가마솥 주변과 찬장을 날카로운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게 정리된 사기그릇들과 투박한 양념통들이 전부였다. 의심할 만한 장부나 무기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인가. 그저 불쌍한 사람들을 거두어주는 착한 여인일 뿐인데, 내가 괜한 생사람을 잡으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군.'

    멋쩍어진 마음에 자리로 돌아가려던 최 포교의 시선이, 무심코 가마솥 뚜껑 옆에 놓인 나무 주걱에 머물렀다. 수없이 사용한 듯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크고 투박한 나무 주걱. 평범한 부엌데기의 물건이었지만, 주걱의 손잡이 끝부분에 새겨진 어설픈 조각이 그의 발걸음을 그 자리에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 이것은…!"

    최 포교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랗게 벌어졌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그 나무 주걱을 집어 들었다. 주걱의 손잡이에는 칼로 서툴게 파낸, 삐뚤빼뚤한 매화꽃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늬가 아니었다.

    스무 해 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머릿속에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굶주림에 지쳐 누워 있던 누이를 위해, 열 살의 어린 동생이 뒷산에서 부러진 매화나무 가지를 주워다 밤새워 깎아 만든 조악한 밥주걱이었다.

    '누님, 내가 예쁜 매화꽃을 새긴 주걱을 만들었어. 나중에 우리 부자 되면, 이 주걱으로 흰쌀밥을 산더미처럼 퍼서 배 터지게 먹자! 알았지?'

    '그래, 우리 오라비 솜씨가 제일이네. 이 주걱은 누이가 세상에서 제일 아끼는 보물로 평생 간직할게.'

    그때 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지어주던 미소. 그날 밤 누이는 그 주걱을 품에 꼭 안은 채 쌀을 구하러 나갔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말도 안 돼… 이 주걱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방금 전 내게 그 따뜻한 국밥을 내어주었던 그 주모가… 정녕 내 누이란 말인가? 스무 해 동안 미친 듯이 찾아 헤매던 나의 누이동생이….'

    최 포교는 주걱을 가슴에 꽉 품어 안았다. 강철 같던 사내의 턱관절이 파르르 떨리며 억눌린 짐승의 울음 같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주모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있던 이유, 밤마다 끓여내던 국밥에서 났던 잊을 수 없는 그 맛, 그리고 대가 없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거두어주던 그 따뜻한 손길. 모든 퍼즐 조각이 하나의 거대한 진실을 향해 맞춰지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삐걱거리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한 아름 장작을 안고 들어오던 주모가 부뚜막 앞에 서 있는 최 포교의 뒷모습을 보고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손님… 아직 주무시지 않고 거기서 무얼 하시는 겝니까? 혹여 허기가 덜 차시어…."

    최 포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커다란 두 눈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품에 안은 매화 무늬 주걱을 쥔 그의 거친 손이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 4: 흉터 남은 손과 매화 무늬 주걱, 20년 만에 마주한 남매의 눈물

    한 아름 장작을 안고 부엌으로 들어서던 주모는 부뚜막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고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덥수룩한 수염에 시커먼 검댕을 묻힌, 영락없는 떠돌이 길손의 행색을 한 사내가 어울리지 않게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의 거칠고 커다란 두 손은 부뚜막 한쪽에 놓여 있던 낡고 투박한 나무 주걱을 자신의 가슴팍에 부서져라 꽉 끌어안고 있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아궁이의 장작불 빛이 사내의 흔들리는 그림자를 흙벽 위로 길게 늘어뜨렸다. 주모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사내의 등 뒤로 다가갔다.

    "손님… 아직 아랫목에 들지 않으시고 예서 무얼 하시는 겝니까? 혹여 속이 덜 차시어 국밥이 더 필요하신 게라면 제가 더 퍼 드릴 터이니, 어찌 남의 부엌 세간을 그리 애지중지 안고 울고 계시는지요. 어디 편찮으신 곳이라도 있으신 겝니까."

    주모의 차분하고도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자, 사내의 넓은 어깨가 더욱 격렬하게 요동쳤다. 사내는 가슴에 품은 주걱을 쥔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려 주모를 마주 보았다. 사내의 두 눈은 이미 핏발이 붉게 서 있었고, 눈시울을 타고 흘러내린 굵은 눈물방울들이 얼굴에 묻은 검댕을 씻어내며 턱밑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한양 도성을 호령하던, 피도 눈물도 없다던 좌포도청의 호랑이 최 포교가 이토록 어린아이처럼 무너져 내린 모습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광경이었다. 최 포교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짓이기듯 깨물며 간신히 목구멍에 맺힌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이… 이 주걱을, 어찌 주모께서 가지고 계신 겝니까. 진정 주모의 물건이 맞소이까."

    "예, 그렇사옵니다. 볼품없는 나무토막에 불과하지만, 제게는 스무 해가 넘도록 단 하루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고 목숨처럼 애지중지 품고 살아온 물건이옵니다. 헌데 남의 낡은 주걱을 보시고 어찌 그리 서럽게 눈물을 흘리시는지요."

    주모의 대답에 최 포교는 왈칵 쏟아지려는 오열을 삼키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주걱의 손잡이 끝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솜씨 없는 칼질로 삐뚤빼뚤하게 파낸 매화꽃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 매화꽃을… 이 매화꽃을 조각한 이가 누군지 알고 계시오?"

    그의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에 주모의 맑은 두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모는 사내의 심상치 않은 태도에 당황하면서도,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듯 아련하고도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 어찌 손님께서 아신단 말입니까. 그것은 오래전, 끔찍한 기근이 돌던 해에 제가 생이별을 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피붙이, 제 핏덩이 같은 동생이 만들어준 물건이옵니다. 그 아이가 험한 세상에서 굶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필시 손님처럼 장성하고 듬직한 사내가 되어 있을 터인데…. 밥 한술을 구해보겠다고 그 어린 것을 움막에 홀로 두고 나온 것이 제 평생의 한이 되어, 이 주걱만 보면 아직도 가슴에서 피눈물이 흐른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최 포교의 가슴속에서 스무 해 동안 얼어붙어 있던 거대한 빙하가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누님이다. 정녕 나의 누님이다! 나를 살리기 위해 뼈다귀를 고아주던, 내 손에 이 주걱을 쥐여주며 환하게 웃어주던 나의 누이동생이다!'

    최 포교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성큼 다가가, 주모가 얼굴을 칭칭 감고 있던 낡은 무명 수건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한 손길로 끌어내렸다.

    "앗! 이 무슨 무례한 짓입니까!"

    주모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수건이 벗겨진 그녀의 얼굴은 이미 아궁이의 붉은 불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난 뒤였다. 그녀의 오른쪽 뺨에는 시뻘겋게 얽힌 끔찍한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참혹한 흉터 너머로 보이는 다정한 눈매와 고운 이목구비는, 최 포교의 뇌리 속에 화석처럼 박혀 있던 열다섯 살 누이의 얼굴 그대로였다. 최 포교는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흙먼지와 검댕을 소매로 미친 듯이 문질러 닦아내며, 피를 토하듯 그토록 애타게 부르고 싶었던 이름을 내뱉었다.

    "누… 누님! 정녕 누님이 맞으십니까. 나요! 누님의 동생 칠성이, 고개 넘어 움막에서 밥을 기다리던 철없던 오라비 칠성이가 예까지 찾아왔소이다!"

    주모는 손에 들고 있던 장작들을 바닥으로 와르르 떨어뜨렸다. 장작이 구르는 요란한 소리에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못한 채, 눈앞에 선 거대한 사내의 얼굴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놀라움으로 커다랗게 벌어진 그녀의 눈에 순식간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을 뻗어, 최 포교의 칼자국 난 거친 뺨과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칠성아…? 네가 진정 내 동생 칠성이가 맞단 말이냐? 정녕 네가 살아 있었어… 이 험한 세상에서 죽지 않고 내 곁으로 살아 돌아왔구나…."

    "누님!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까! 온 조선 팔도를 다 뒤져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밤마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가슴을 쥐어뜯은 날이 몇 날 며칠인지 아시냔 말입니다! 흑흑… 누님!"

    집채만 한 체구의 무관이 스무 해 전의 굶주린 열 살배기 꼬마가 되어 누이의 가슴팍에 무너져 내렸다. 누이 역시 그런 동생의 넓고 단단한 등을 부서져라 끌어안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사조차 모른 채 서로를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남매였다.

    '오라비, 이 주걱으로 나중에 꼭 흰쌀밥을 산더미처럼 퍼서 배 터지게 먹자꾸나.'

    가난 속에서도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나누었던 어린 시절의 약속이, 스무 해의 모진 풍파를 건너 한양 도성 밖 후미진 주막의 아궁이 앞에서 눈물로 피어나고 있었다. 서로의 흉터와 상처를 어루만지며 쏟아내는 두 남매의 처절하고도 가슴 벅찬 통곡 소리가, 섣달그믐의 삭풍을 잠재우듯 깊은 겨울밤의 허공으로 하염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5: 과거의 진실, 주모가 밤마다 국밥을 끓이며 동생을 기다려온 사연

    남매의 찢어질 듯한 오열과 감격스러운 상봉의 소란에, 아랫목에 누워 잠을 청하던 길손들도 하나둘씩 일어나 부뚜막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기막힌 재회의 순간을 방해하지 못하고, 그저 옷소매로 자신들의 눈물을 훔치며 숨죽여 지켜볼 뿐이었다. 한참 동안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던 남매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화덕 앞에 나란히 마주 앉았다. 칠성은 핏발 선 눈으로 누이의 뺨에 흉하게 남은 화상 자국을 애처롭게 어루만지며 물었다.

    "누님,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겝니까. 이 고운 얼굴에 어찌 이리 끔찍한 상처가 남았단 말입니까. 저를 움막에 두고 쌀을 구하러 가신 뒤로, 어찌하여 돌아오지 못하셨는지요."

    누이는 아궁이의 타오르는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며,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스무 해 전의 끔찍한 기억을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날 밤, 며칠을 굶어 숨이 넘어가던 너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지주 영감네 곳간에 몰래 숨어들었단다. 허나 쌀 한 줌을 쥐기도 전에 머슴들에게 들키고 말았지. 모진 매질을 당하고 관아에 끌려갈 위기에 처하자, 지주 영감이 나를 헐값에 멀리 남도 지방의 노비로 팔아넘겨 버렸다. 너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내 동생이 움막에서 굶어 죽어간다고 피눈물을 흘리며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지. 그렇게 끌려간 노비 생활 중에 주인의 집에 큰불이 났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안방마님을 구하려 불길에 뛰어들었다가 이리 흉터를 얻게 된 것이란다."

    칠성은 짐승처럼 신음하며 자신의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아아, 천하의 불효막심한 놈! 누님은 저를 살리려다 그 끔찍한 고초를 겪으셨는데, 저는 포교가 되어 온 도성을 호령하면서도 누님을 찾지 못해 원망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제 무능함을 용서하십시오, 누님!"

    "아니다, 칠성아. 자책하지 말아라. 안방마님을 구한 공로로 주인이 세상을 떠나며 내 노비 문서를 불태워 주었고,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널 찾으러 이 한양 땅으로 올라왔단다. 하지만 세상천지를 뒤져도 널 찾을 길이 막막하더구나. 내가 너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네가 나를 찾아오게 만드는 것뿐이라 생각했지."

    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의 뚜껑을 열었다. 진하고 뽀얀 사골 국물의 구수한 향기가 다시 한번 주막 안을 가득 채웠다.

    "네가 혹여 부모 없는 고아로 떠돌다 통행금지에 걸려 도성 밖에서 추위에 얼어 죽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남의 집 담벼락 밑에서 떨고 있지는 않을까.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져 도저히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성 문이 닫히면, 몰래 청사초롱을 내걸고 가마솥에 뼈를 고기 시작한 게야. 어릴 적 내가 네게 끓여주었던 그 고깃국 냄새를 풍기며,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길손들을 먹이다 보면… 언젠가 그 불쌍한 사람들 틈에 섞여 내 동생 칠성이가 이 국밥 한 그릇을 먹으러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미련한 희망 하나로 말이다."

    누이의 담담한 고백에 주막 안에 모여 있던 길손들은 모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칠성은 머리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걷잡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온몸이 떨려왔다.

    '나는 어찌 살아왔던가. 법의 엄격함만이 세상을 바로잡는 길이라 믿으며, 통금을 어긴 자들을 무자비하게 잡아 가두고 불법을 처단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지 않았던가. 내가 단속하려 했던 이 야심한 불법 주막이, 실은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 누이가 평생을 바쳐 켜놓은 눈물겨운 등대였을 줄이야. 진정 사람을 살리는 것은 차가운 율법이 아니라, 대가 없이 내어주는 이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의 인정(人情)이었거늘!'

    칠성은 품속 깊은 곳에서 좌포도청 포교의 신분을 증명하는 번쩍이는 호패를 꺼내어 누이의 거친 손에 쥐여주었다.

    "누님, 이제 더 이상 얼굴을 수건으로 숨긴 채 도성 문이 닫힌 어두운 밤에만 국밥을 끓이지 마십시오. 내일부터는 제가 이 주막의 문 앞을 든든하게 지키겠습니다. 밝은 대낮에 당당하게 주막의 문을 여십시오! 혹여 왈패 놈들이 행패를 부리거나 무지한 관원들이 국법을 운운하며 트집을 잡는다면, 이 좌포도청 최 포교가 제 목을 걸고서라도 막아낼 것입니다. 누님이 끓여내시는 이 국밥은 불법의 온상이 아니라, 세상을 구하는 가장 따뜻한 약이자 피난처입니다."

    칠성의 굳센 다짐과 늠름한 눈빛에 누이는 기쁨의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길손들 사이에서 봇짐장수가 훌쩍이며 소리쳤다.

    "아이고! 하늘이 감동할 기막힌 남매의 정이오! 우리같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목숨을 구해주신 주모님이 이리 든든하고 훌륭한 아우님을 찾으셨으니, 우리 일처럼 기쁘고 또 감사할 따름이오! 내일 낮에 문을 여시면, 내 이 봇짐을 다 팔아서라도 가장 먼저 국밥을 사 먹으러 오리다!"

    "옳소! 우리 주모님 만세, 포교 나리 만세 만만세오!"

    초라한 주막 안은 순식간에 기쁨의 환호성과 따뜻한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칼바람이 몰아치던 섣달그믐의 길고 가혹했던 겨울밤은, 그렇게 스무 해의 지독한 그리움을 녹여낸 한 그릇 국밥의 온기 속에서 세상 어떤 곳보다 눈부시고 따뜻한 밤으로 깊어가고 있었다.

    ※ 6: 다시 열린 도성 문,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남매의 눈부신 해피엔딩

    어느덧 창호지 너머로 희뿌연 새벽빛이 조심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밤새 귀신 곡소리처럼 요란하게 문풍지를 때려대던 인왕산의 매서운 산바람도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곧이어 멀리 도성의 중심 보신각에서 새벽을 알리는 서른세 번의 파루(罷漏) 종소리가 웅장하고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굳게 닫혀 있던 한양의 사대문과 사소문이 일제히 열리며, 통행금지의 끝과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날이 밝았습니다! 도성 문이 열렸으니, 이제 안심하시고 길을 떠나셔도 좋습니다."

    포교복 대신 여전히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지만, 칠성의 목소리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벅찬 활기와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주막의 아랫목에서 하룻밤을 의탁했던 길손들이 부스스 일어나 저마다 봇짐을 챙겨 메고 마당으로 나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간밤의 지독했던 추위와 생사의 고비에 대한 공포 대신, 두둑한 포만감과 한없는 평온함이 가득 차 있었다.

    "주모님, 정말이지 평생 잊지 못할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이다음에 내 꼭 장사에 크게 성공하여, 이 국밥값을 열 배, 백 배로 갚으러 오리다."

    "포교 나리도 고생 많으신 우리 누님 곁에서 평생 효도하며 행복하게 잘 사시구려! 내 살다 살다 이리 기막히고 눈물 나는 인연은 처음 겪어 보오. 부디 두 분 다 만수무강하시오!"

    손님들이 연신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며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자, 누이는 화상 자국이 남은 얼굴을 더 이상 수건으로 가리지 않은 채 환하고 다정한 미소로 그들의 거친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따뜻하게 배웅했다. 마지막 길손이 골목 어귀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칠성은, 이내 마당 구석에 놓인 커다란 싸리 빗자루를 집어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아니, 칠성아! 넌 명색이 도성을 호령하는 포도청의 포교가 아니더냐. 어찌 체통도 없이 누더기를 입고 마당을 쓴단 말이냐. 어서 이리 내놓거라. 내가 할 터이니."

    누이가 기겁을 하며 빗자루를 빼앗으려 했지만, 칠성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훌쩍 빗자루를 치켜들며 넉살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휴, 누님도 참. 체통이 다 밥 먹여 줍니까? 이제 마당 쓸고 장작 패는 건 물론이고, 시장에서 무거운 고기 짐 나르는 것까지 다 이 힘센 아우가 할 터이니 누님은 그저 부뚜막에 앉아 국밥 간이나 턱턱 맞추십시오. 그리고 그 낡은 무명 수건은 이제 아궁이 불쏘시개로 던져버리십시오. 제 눈엔 누님 뺨에 남은 그 화상 흉터가, 저를 살리기 위해 훈장처럼 달고 오신 세상에서 제일 곱고 아름다운 매화꽃으로 보이니까요."

    칠성의 눙치는 말에 누이는 못 말린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맑고 청아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아침의 찬란한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마당 위로, 스무 해 만에 되찾은 남매의 정겨운 웃음소리가 골목 끝까지 따스하게 퍼져나갔다.

    그날 이후, 인적이 드물었던 도성 밖 외진 골목의 이 비밀 주막은 밤이 아닌 밝은 대낮에 당당히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칠성은 비번인 날마다 번쩍이는 포교복을 입고 주막 앞을 떡하니 지키고 섰고, 도성에서 제일 무섭기로 소문난 그 호랑이 포교가 앞치마를 두르고 싹싹하게 국밥을 나르는 진풍경에 동네 왈패들은 감히 근처에서 행패를 부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누이는 더 이상 흉터를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녀가 끓여내는, 뼈가 으스러지도록 깊고 진하게 우려낸 사골 국밥의 맛과 기적처럼 재회한 남매의 눈물겨운 사연은 금세 한양 도성 전체에 좍 퍼져나가 매일같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양반과 상인들에게는 정당한 밥값을 받고, 여전히 배가 고프고 가난한 길손들에게는 남몰래 고기를 더 얹어 아낌없이 국밥을 퍼주는 누이의 넉넉한 인심은 예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주막의 가장 잘 보이는 벽 한가운데에는, 칠성이 목숨처럼 끌어안고 통곡했던 그 매화 무늬 나무 주걱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가보처럼 소중하게 걸려 있었다. 스무 해의 모진 시련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끝내 잃어버리지 않았던 남매의 굳건하고 따뜻한 사랑이, 도성 사람들의 팍팍하게 얼어붙은 마음마저 훈훈하게 녹여주는 조선 팔도의 영원한 해피엔딩 전설로 아름답게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유튜브 엔딩멘트

    야담광장 시청자 여러분, 도성 문이 닫힌 뒤 열리는 비밀 주막의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해 대가 없이 따뜻한 국밥을 내어주던 주모의 선한 마음이, 결국 스무 해 전 헤어진 동생을 다시 만나게 하는 기적을 불러왔습니다. 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을 품어주는 따뜻한 인정과 가족의 사랑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훈훈한 감동 실화였습니다.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이 국밥 한 그릇처럼 따뜻하고 든든하시길 바라며, 다음 시간에도 가슴 먹먹하고 재미있는 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