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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아이를 안고 온 여인에게 나라가 쥐여준 것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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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트로:

    "여러분, 당장 내일 먹을 풀뿌리조차 없는 지독한 대기근의 한복판에서, 길가에 버려진 핏덩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품에 안은 가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아기를 안고 관아의 문턱을 넘자, 사또는 호통을 치기는커녕 뜻밖에도 쌀자루와 미역, 그리고 임금님의 어명이 찍힌 특별한 문서를 두 손에 쥐여 주었는데요. 지금으로부터 이백여 년 전, 정조 임금 시절 실제로 반포되었던 세계 최초 수준의 아동 구호 법령 자휼전칙과, 그 법의 울타리 안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아 훗날 놀라운 방식으로 은혜를 갚은 한 아이의 눈물겹고도 통쾌한 실화 바탕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눈보라 속의 울음소리와 자휼전칙

    지금으로부터 이백여 년 전인 조선 정조 임금 재위 칠 년, 계묘년 겨울이었습니다. 그해 조선 땅에는 수십 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지독한 대기근이 덮쳤습니다. 봄부터 여름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지더니, 가을에는 일찍 내린 서리에 여물지도 못한 곡식마저 허옇게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겨울이 찾아오자 백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산에 있는 소나무 껍질은 다 벗겨 먹어 산 전체가 허연 속살을 드러냈고, 들판의 마른 풀뿌리조차 씨가 말랐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장 입에 풀칠할 길이 막막해진 부모들이 차마 제 자식 굶어 죽는 꼴을 볼 수 없어 부잣집 대문 앞이나 장터 길목에 어린 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 날마다 속출했습니다.

    충청도 공주목의 한 산골 마을에 사는 과부 연산 댁 역시 시린 배를 움켜쥐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삼 년 전 전염병으로 남편과 어린 외아들을 한꺼번에 잃고 홀로 남은 연산 댁은, 남의 집 삯바느질과 허드렛일을 해주며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처지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매서운 북풍한설이 문풍지를 때리던 날이었습니다. 연산 댁은 읍내 부잣집에서 삯바느질을 해주고 받은 보리쌀 두 줌을 품에 안고 언 손을 호호 불며 어두운 고갯길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날씨가 어쩌면 이리도 매서울까. 이 보리쌀 두 줌에 시래기를 잔뜩 넣고 멀건 죽을 쑤면 그래도 사흘은 버틸 수 있겠지...'

    연산 댁이 발걸음을 재촉해 성황당 고개 어귀의 늙은 당산나무 아래를 지날 때였습니다. 쌩쌩 불어오는 눈보라 소리에 섞여,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한 가냘프고 애처로운 소리가 귓가를 스쳤습니다.

    "응애... 으앙... 콜록..."

    연산 댁은 걸음을 우뚝 멈추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당산나무 밑의 수북한 눈더미를 헤집어 본 연산 댁은 그만 숨이 턱 막혀 뒤로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낡아빠진 무명 포대기에 둘둘 말린 채 꽁꽁 언 땅바닥에 놓여 있는 것은, 태어난 지 고작 백일이나 되었을까 싶은 자그마한 사내아기였습니다. 아기는 얼마나 오랫동안 추위에 떨었는지 입술이 가지 빛으로 파랗게 질려 있었고, 울 기운조차 다 빠졌는지 가쁜 숨만 할딱이며 작은 손가락을 파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포대기 속에는 어미가 남긴 듯한 글씨 없는 흰 종이 한 장만 구겨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에나, 이 엄동설한에 어떤 비정한 부모가 이 여린 핏덩이를 눈구덩이에 내다 버렸단 말인가! 그대로 두었다가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얼어 죽겠구나!'

    하지만 아기를 향해 손을 뻗던 연산 댁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자기 코가 석 자였습니다. 젊은 과부 몸이라 젖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품 안에 든 보리쌀 두 줌으로는 자기 혼자 목숨 부지하기도 버거운 판국에 젖먹이 아기를 데려갔다가는 둘 다 굶어 죽기가 십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랗게 언 아기의 작은 손가락이 연산 댁의 옷고름을 스치며 희미하게 움켜쥐는 순간, 연산 댁의 머릿속에는 삼 년 전 먼저 가슴에 묻은 내 아들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연산 댁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래, 내가 설령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눈앞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면 그게 어찌 사람이더냐! 아가, 가자. 이 못난 어미 품으로 오너라!"

    연산 댁은 제 저고리 섶을 헤쳐 차갑게 식은 아기를 맨살에 꼭 품어 안았습니다. 아기의 언 뺨이 연산 댁의 따뜻한 가슴에 닿자, 아기는 본능적으로 온기를 찾아 파고들었습니다. 집으로 달려온 연산 댁은 아궁이에 마른 솔가지를 지펴 방을 덥히고, 보리쌀을 고아 낸 따뜻한 미음 국물을 숟가락 끝으로 조금씩 아기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미음 국물을 꿀꺽꿀꺽 받아먹더니 밤새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이 되자 다시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갓난아기에게는 어미 젖이나 쌀로 쑨 암죽이 있어야 하는데, 보리 미음만으로는 며칠을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웃에 사는 칠순의 노파가 찾아와 아기를 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뜻밖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어이구, 연산 댁! 제 입에 넣을 풀뿌리도 없는 판에 길가에 버려진 애를 주워 오면 어쩌자는 게유! 아, 맞다! 가만있어 봐유. 며칠 전에 읍내 장터에 나갔더니, 관아 앞에 임금님이 직접 내리신 방이 하나 크게 붙었더래유. 뭐라더라, 자휼전칙인가 뭔가 하는 새 법인데, 길에 버려진 아이를 데리고 관아로 오면 나라에서 그 아이 먹일 쌀이랑 장을 공짜로 내준다고 하더구먼유! 밑져야 본전이니 얼른 아기를 안고 원님한테 가 봐유!"

    귀가 번쩍 뜨인 연산 댁은 아기를 포대기에 단단히 싸서 등에 업고, 눈 덮인 십 리 길을 걸어 공주목 관아로 향했습니다. 관아 문 앞에는 과연 굶주린 백성들에게 죽을 나누어 주는 진휼소가 차려져 있었고, 한쪽에는 큰 글씨로 방이 붙어 있었습니다. 연산 댁이 조심스럽게 관아 문지기 이방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리, 소녀는 아랫마을에 사는 연산 댁이라 하옵니다. 어젯밤 성황당 고개에서 얼어 죽어가던 이 갓난아기를 거두어 왔는데, 나라에서 버려진 아이를 살려준다는 방이 붙었다 하여 염치 불고하고 찾아왔사옵니다."

    문지기에게 보고를 받은 공주 목사는 버선발로 동헌 마루까지 내려와 연산 댁과 등에 업힌 아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또는 인자하고도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방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오오, 이 추운 날에 제 몸 건사하기도 힘들 텐데 생명을 구해 왔으니 참으로 가상하도다! 여봐라, 이방! 지금 당장 대전의 어명이 적힌 자휼전칙 문서를 가져와 이 여인에게 읽어 주고, 법전에 정해진 대로 구휼 물품을 한 치의 어김도 없이 내어 주어라!"

    이방이 두루마리 문서를 펼치며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듣거라! 주상 전하께서는 흉년에 부모 잃고 길가에 버려지는 어린 생명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 자휼전칙을 반포하셨느니라. 첫째, 길가에 버려진 영아를 거두어 기르고자 하는 자에게는 그 집안의 가난함과 상관없이 관아에서 매달 아이와 양육자의 몫으로 정한 백미와 간장, 그리고 말린 미역을 지급한다! 둘째, 아이를 거둔 여인이 젖이 나오지 않을 경우 관아에서 마을의 젖 나는 어미를 연결해 함께 돕도록 한다! 셋째, 지금 당장 이 아이를 연산 댁의 호적에 양자로 정식 입적시켜 나라가 인정하는 어미와 자식으로 삼게 하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아의 아전들이 창고에서 햅쌀처럼 뽀얀 백미 한 자루와 구수한 간장 한 단지, 그리고 산모들이나 먹는 귀한 건미역 다발을 안고 나와 연산 댁의 두 손에 묵직하게 쥐여 주었습니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관인이 쾅 찍힌 입양 문서까지 발급해 주었습니다.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귀한 쌀자루와 나라의 문서를 받아 든 연산 댁은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아기를 업은 채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백성을 하늘처럼 여긴 정조 임금의 따뜻한 법령이, 얼어 죽어가던 한 핏덩이와 가난한 과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순간이었습니다.

    ※ 2: 나라가 내려준 쌀과 두 어미의 젖줄

    관아에서 쌀자루와 미역, 그리고 관인이 선명하게 찍힌 입양 문서를 품에 안고 돌아오는 길에, 연산 댁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공주 목사는 자휼전칙의 세칙에 따라, 마침 연산 댁이 사는 아랫마을에서 두 달 전에 아이를 낳아 젖이 넘쳐나던 억척 어멈을 직접 불러 분부를 내렸던 것입니다.

    "억척 어멈은 듣거라. 연산 댁이 거둔 저 아이는 아직 이가 나지 않은 핏덩이라 쌀미음만으로는 뼈가 자라지 못하느니라. 네가 날마다 연산 댁을 찾아가 네 자식에게 물리듯 저 아이에게도 젖을 나누어 물려주어라. 그리하면 관아에서 네 공로를 인정하여 네 몫의 쌀과 미역도 매달 따로 챙겨 줄 것이니라!"

    관아에서 공짜로 쌀과 미역까지 준다는 말에, 본래 마음씨 넓고 시원시원하던 억척 어멈은 두말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연산 댁과 함께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억척 어멈이 퉁퉁 불은 젖가슴을 내어 배고파 울던 아기 입에 물려주었습니다.

    "자, 이놈아! 이 아줌마 젖이 아주 꿀맛이다! 배가 터지도록 실컷 빨아 먹거라!"

    따뜻하고 달콤한 엄마 젖이 입안에 가득 차오르자, 아기는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억척 어멈의 가슴을 짚으며 꿀꺽꿀꺽 게걸스럽게 젖을 빨아먹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한참을 먹더니, 이윽고 볼이 발그레해져서는 트림을 꾸억 한 번 하고는 새근새근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 평화로운 모습을 내려다보던 연산 댁과 억척 어멈은 마주 보며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호호호, 연산 댁! 이 녀석 젖 빠는 힘이 아주 장사구먼유! 눈매가 또렷하고 귀가 큼직한 게 나중에 크면 아주 인물 나겠어유. 그나저나 아이 이름은 지었능가?"

    연산 댁은 잠든 아기의 보드라운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대답했습니다.

    "성황당 돌무더기 옆에서 얻은 귀한 생명이고, 또 앞으로 어떤 모진 풍파가 와도 바위돌처럼 단단하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돌이라고 부르려 합니다요."

    "돌이! 허어, 이름 한번 부르기 쉽고 단단해서 좋구먼! 돌이야, 너는 낳아준 어미 복은 없어도 길러주는 어미 복이랑 임금님 복은 타고났구나!"

    그날부터 연산 댁의 작은 초가집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매달 초하루가 되면 연산 댁은 돌이를 업고 억척 어멈과 함께 관아 진휼소로 나갔습니다. 그러면 담당 아전은 자휼전칙 장부에 기록된 대로 돌이가 무탈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꼼꼼히 살핀 뒤, 한 달 치 양식인 백미와 장, 미역을 꼬박꼬박 내어 주었습니다. 나라에서 주는 그 귀한 곡식 덕분에 연산 댁은 굶주림의 공포에서 벗어나 밤낮으로 삯바느질에 매진할 수 있었고, 돌이 역시 억척 어멈의 젖과 연산 댁이 정성껏 끓여 주는 쌀 암죽을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튼튼하게 자라났습니다.

    험난했던 대기근이 물러가고 돌이가 세 살이 되어 밥을 온전히 먹게 되자 관아의 구휼미 지급은 법에 따라 종료되었지만, 그동안 연산 댁이 알뜰살뜰 모은 삯바느질 푼돈으로 작은 텃밭을 일구어 두 모자가 살아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 눈구덩이에서 바들바들 떨던 핏덩이 돌이는 어느덧 열한 살의 늠름하고 총명한 소년으로 자라났습니다. 돌이는 마을에서 소문난 효자였습니다. 연산 댁이 자기를 낳아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을 아이들의 수군거림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돌이에게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어머니는 자기를 살려내고 길러준 연산 댁뿐이었습니다. 돌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 대신 우물물을 길어다 부엌 독을 채워 놓았고, 낮에는 뒷산에 올라가 자기 키보다 더 큰 나뭇짐을 해 와 아궁이 옆에 산더미처럼 쌓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에게는 남다른 재주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글공부에 대한 비상한 총명함이었습니다. 서당에 다닐 형편이 되지 못했던 돌이는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는 길에 늘 마을 서당 담장 너머로 까치발을 하고 서서 훈장님이 가르치는 천자문과 사서삼경 소리를 귀동냥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집 마당에 내려와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그 글자들을 그대로 따라 쓰며 혼자서 깨우쳤던 것입니다. 어느 날 마당 가득 흙글씨를 써 내려가는 돌이를 우연히 본 서당 훈장님이 깜짝 놀라 무릎을 쳤습니다.

    "허어, 세상에! 어깨너머로 들은 소리만으로 논어의 구절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땅바닥에 적어 내려가다니, 이 아이는 하늘이 내린 신동이로구나! 연산 댁, 오늘부터 돌이를 내 서당에 보내시오. 학채는 한 푼도 받지 않을 것이니, 내 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쳐 큰 인물로 키워 보겠소!"

    훈장님의 배려로 서당에 나가게 된 돌이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학문을 흡수했습니다. 밤이면 연산 댁이 호롱불 아래에서 침침한 눈을 비비며 바느질을 하고, 그 옆에서 돌이가 낭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는 모습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화목한 풍경이었습니다.

    "어머니, 이제 밤이 깊었으니 바느질 그만하시고 주무십시오. 내일은 제가 읍내 장터에 나가 약초를 팔아 어머니 고운 비단 골무 하나 사 오겠습니다요."

    "내 아들 돌이야, 어미는 네가 글 읽는 소리만 들어도 피곤한 줄을 모른단다. 네가 이렇게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니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모자는 서로의 거친 손을 맞잡으며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해 가을에는 전에 없는 대풍년이 들어 들판마다 황금빛 벼 이삭이 출렁거렸고, 돌이네 집 작은 곳간에도 곡식이 그득하게 쌓였습니다. 모든 시련이 끝나고 행복만 가득할 것 같던 어느 화창한 가을날 오후였습니다. 연산 댁이 마당에서 붉은 고추를 말리고 있는데, 싸리문 밖에서 낯선 중년 남녀 두 사람이 기웃거리더니 다짜고짜 마당으로 불쑥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사내는 꾀죄죄한 행색에 눈빛이 교활해 보였고, 여인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돌이를 보더니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고, 영감! 저기 마루에 앉은 저 아이 좀 보소! 저 큼직한 귀하며 오뚝한 콧날이 영락없는 당신 판박이네그려! 아가! 내 새끼야! 이 어미가 너를 찾으러 왔다!"

    여인이 다짜고짜 달려들어 돌이의 팔을 덥석 붙잡자, 놀란 연산 댁이 고추 소쿠리를 떨어뜨리며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평화롭던 모자의 일상에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 3: 십 년 만에 나타난 뻔뻔한 친부모

    마당에 불쑥 들이닥쳐 돌이의 팔을 붙잡고 눈물 한 방울 없는 마른 울음을 짜내는 낯선 여인과 사내를 보며, 연산 댁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돌이 역시 당황하여 팔을 빼내며 어머니 연산 댁의 등 뒤로 숨었습니다. 연산 댁이 떨리는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두 분은 어디 사시는 뉘시기에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내 아들을 붙잡고 이리 소란을 피우시는 겁니까?"

    그러자 사내가 헛기침을 하며 배를 쑥 내밀더니, 안하무인 격으로 거만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에헴! 당신이 이 아랫마을에 산다는 과부 연산 댁이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저기 산 너머 고을에 사는 김 서방이라는 사람이오. 지금부터 십 년 전 계묘년 대흉년 겨울에, 우리 내외가 먹고살 길이 막막하여 성황당 고개 당산나무 아래에 갓 태어난 내 아들을 잠시 맡겨 둔 적이 있었소. 수소문을 해 보니 당신이 그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기에, 이제 풍년도 들고 우리 살림도 좀 폈으니 내 핏줄을 도로 찾아가려고 왔단 말이오!"

    김 서방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말에 연산 댁은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습니다. 눈보라 치는 한겨울 밤에 핏덩이를 눈구덩이에 던져 놓고 도망쳐 놓고서는, 이제 와서 잠시 맡겨 두었다니요! 게다가 김 서방의 아내는 마당 한구석에 쌓인 나뭇더미와 튼실하게 자란 돌이의 어깨를 훑어보더니 속셈을 숨기지도 않고 지껄여 댔습니다.

    "아이고, 우리 영감 말이 맞습죠. 그때는 흉년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어미 속이야 오죽 타들어 갔겠수? 마침 올해 농사 지을 일꾼도 모자라고 대도 이어야겠는데, 저 녀석이 저렇게 뼈대가 굵고 힘깨나 쓰게 자랐으니 이제 친부모 밑으로 들어와 효도를 해야지 않겠소? 자, 얘야! 네 진짜 이름은 돌이가 아니라 개똥이다! 어서 짐 싸서 엄마 아버지 따라가자!"

    그야말로 날강도가 따로 없었습니다. 배고프고 힘드는 흉년 시절에는 죽든 말든 내팽개쳐 놓고, 남이 피땀 흘려 다 키워 놓으니 일꾼으로 부려 먹으려고 찾으러 온 것이 눈에 훤히 보였습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이웃의 억척 어멈과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담장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며 혀를 찼습니다. 연산 댁이 두 팔을 벌려 돌이를 감싸 안으며 단호하게 소리쳤습니다.

    "못 데려갑니다! 절대 못 데려가요! 십 년 전 그 엄동설한에 입술이 파랗게 얼어 숨이 넘어가던 핏덩이를 내가 품에 안아 녹이고, 나라의 구휼미와 내 피땀으로 길러낸 내 자식입니다! 십 년 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부모 행세를 한단 말입니까!"

    연산 댁이 거세게 저항하자, 김 서방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습니다. 김 서방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연산 댁을 거칠게 밀쳐 바닥에 넘어뜨렸습니다.

    "어머니!"

    돌이가 놀라 연산 댁을 부축하려 하자, 김 서방이 돌이의 멱살을 덥석 움켜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여편네가 보자 보자 하니 남의 귀한 아들을 가로채 놓고 큰소리야! 야, 이 무지한 과부야! 세상에 길러준 정이 아무리 깊다 한들 낳아준 천륜인 핏줄보다 앞설 수가 있는 줄 아느냐! 내 씨로 낳은 내 자식을 내가 데려간다는데 네가 무슨 권리로 막아! 정 억울하면 그동안 이 녀석 먹인 보리쌀 값으로 엽전 몇 푼 던져 줄 테니 입 다물고 물러서라!"

    "싫습니다! 이 손 놓으세요! 저를 낳아주셨다 한들 눈구덩이에 버리실 때 이미 인연은 끝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저를 살려주시고 밤새 간호해 주신 이 연산 댁 어머니 한 분뿐입니다! 저는 죽어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돌이가 눈물을 흘리며 김 서방의 손을 뿌리치자, 화가 난 김 서방이 돌이의 뺨을 때리려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그때 구경하던 억척 어멈과 마을 장정들이 우르르 마당으로 뛰어들어 김 서방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이 천하에 양심에 털 난 인간들아! 내 젖 먹여 키운 우리 돌이한테 어디서 손찌검이여!"

    "놔라, 이놈들아! 남의 집안일에 왜 동네 사람들이 끼어들어! 좋다, 이 도둑년 같은 과부가 내 아들을 안 내놓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당장 공주목 관아로 가서 사또 나리께 송사를 벌여 보자! 조선 땅은 유교의 나라인데, 사또 나리께서도 당연히 피를 나눈 친부모 편을 들어주실 것이다! 가자, 관아로!"

    김 서방 내외가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며 앞장을 서자,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근심 어린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핏줄과 천륜을 워낙 중시하던 풍조가 있었기에, 자칫 관아에 갔다가 친부모라는 명분에 밀려 정말로 돌이를 빼앗기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연산 댁은 흙 묻은 치마를 털고 일어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이고,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내 목숨 같은 돌이를 저런 파렴치한 사람들의 머슴으로 빼앗길 수는 없는데... 가만있자! 십 년 전 아기를 안고 관아에 갔을 때, 그때 사또 나리께서 내어 주신 입양 문서와 나라의 법령이 있지 않았던가!'

    정신을 바짝 차린 연산 댁은 안방 깊숙한 장롱 밑바닥에서 십 년 동안 비단 보자기에 고이 싸서 신주단지처럼 보관해 오던 관아의 입양 문서를 꺼내 가슴 품에 단단히 품었습니다. 그리고는 겁에 질려 손을 떨고 있는 돌이의 두 손을 꼭 쥐어 주며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돌이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내가 마음대로 데려다 키운 아이가 아니라, 이 조선의 임금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내 당당한 아들이란다. 자, 어머니 손을 잡고 관아로 가자꾸나!"

    연산 댁은 돌이의 손을 잡고, 증인이 되어 줄 억척 어멈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당당하게 김 서방 내외의 뒤를 따라 공주목 관아로 향했습니다.

    ※ 4: 사또의 명판결과 법이 지켜준 모자

    공주목 관아의 동헌 마당은 십 년 만에 벌어진 기막힌 친자 소송을 구경하려는 읍내 백성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습니다. 대청마루 위에는 새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공주 목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정좌해 있었고, 그 아래 마당에는 김 서방 내외와 연산 댁 모자가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뻔뻔한 김 서방이었습니다. 김 서방은 땅바닥에 이마를 조아리며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또 나리! 부디 하늘 같은 혜안으로 소인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옵소서! 저 옆에 앉은 아이는 소인이 십 년 전 계묘년 흉년에 도저히 먹여 살릴 길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잠시 길가에 놓아두었던 소인의 친혈육이옵니다. 이제 살림이 피어 천륜을 되찾고자 아이를 데려가려 하오나, 저 욕심 많은 과부가 그동안 밥 몇 숟가락 먹인 유세를 떨며 소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내놓지 않고 버티고 있사옵니다! 부모가 제 자식을 찾아가는 것이 어찌 죄가 되겠나이까!"

    김 서방의 교묘한 말솜씨에 구경꾼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자코 듣더니, 이번에는 연산 댁을 내려다보며 물었습니다.

    "거기 연산 댁이라 하는 여인은 듣거라. 저 김 서방의 말이 사실이냐? 네가 저 아이를 길가에서 거두어 기른 것이 맞느냐?"

    연산 댁은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품속에서 비단 보자기에 싼 문서를 꺼내 두 손으로 높이 받쳐 들었습니다.

    "사또 나리, 소녀가 십 년 전 성황당 눈구덩이에서 얼어 죽어가던 저 아이를 거두어 기른 것은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소녀는 저 김 서방의 말처럼 아이를 훔쳐다 기른 것이 아니옵니다! 여기 십 년 전 본 관아에서 직접 관인을 찍어 내려주신 입양 문서가 있사옵니다. 당시 나라에서는 소녀에게 쌀과 미역을 내려 아이를 살리게 하셨고, 억척 어멈의 젖을 빌려 먹이게 하셨사옵니다. 그 후 십 년 동안 저 비정한 부모가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사이, 소녀는 밤낮으로 삯바느질을 해가며 아이를 길렀고 아이 또한 소녀를 친어미로 알고 지극한 효성을 다해 왔사옵니다!"

    연산 댁의 옆에 앉아 있던 돌이도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사또 나리! 소인은 저 김 서방이라는 사람을 아비로 둔 적이 없사옵니다! 눈보라 속에 소인을 버려 죽게 만든 자가 어찌 부모이겠나이까! 소인의 목숨을 구해주고 길러주신 분은 오직 이 연산 댁 어머니와 나라의 은혜뿐이오니, 부디 소인이 어머니를 평생 봉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어린 소년의 조리 있고 절절한 호소에 마당에 모인 구경꾼들도 코끝이 찡해져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김 서방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습니다.

    "사또 나리! 저 어린것이 과부에게 세뇌가 되어 천륜을 몰라보고 하는 소리이옵니다! 아무리 관아의 문서가 있다 한들, 피를 나눈 친아비가 나타났으면 마땅히 친아비에게 돌려주는 것이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옵니까!"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김 서방을 내려다보던 사또의 눈빛이 순간 서릿발처럼 차갑게 변했습니다. 사또는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법전 한 권을 펼쳐 들더니, 동헌 기둥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준엄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네 이놈, 김 서방이라 하는 고약한 놈은 두 귀를 활짝 열고 똑똑히 듣거라! 네가 성현의 가르침과 천륜을 입에 담았느냐?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 책은 주상 전하께서 계묘년 대기근 때 직접 반포하신 어명, 자휼전칙이니라! 이 자휼전칙의 법조문에 주상 전하께서 무엇이라 못을 박아 두셨는지 내가 한 자도 빠짐없이 읽어 주마!"

    사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법전을 높이 치켜들고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자휼전칙에 이르기를, 흉년에 길가에 버려진 아이를 거두어 기른 자는 곧 그 아이의 생명을 새로이 낳아준 부모와 다름없다 하였다! 따라서 아이가 자란 뒤에, 일찍이 아이를 내다 버렸던 본래의 부모나 친척이 뒤늦게 나타나 내 자식이라 우기며 도로 찾아가려 하는 자는, 관아에서 절대 이를 허락하지 말며 오히려 법으로 엄히 다스려 거두어 기른 부모의 권리를 끝까지 지켜주라 하셨느니라!"

    사또의 우렁찬 법전 낭독 소리가 끝나자마자, 구경하던 백성들 사이에서 와아 하는 통쾌한 함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반면, 승리를 확신하며 거드름을 피우던 김 서방 내외의 얼굴은 그 자리에서 사색이 되어 하얗게 질려 버렸습니다. 사또는 법전을 탁 덮으며 김 서방을 향해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어떠하냐! 임금님께서는 너희처럼 어릴 때는 내다 버렸다가 아이가 다 크고 나면 일꾼으로 부려 먹으려고 찾아오는 파렴치한 자들이 나타날 것을 이미 십 년 전에 다 내다보시고 이렇게 법으로 철통같이 막아 두셨느니라! 제 자식을 눈구덩이에 버려 죽게 만들려 한 죄만으로도 능지처참할 일이거늘, 어디서 감히 선량한 어미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자식을 빼앗으려 드느냐! 여봐라, 포졸들은 듣거라! 저 천하에 파렴치한 김 서방 내외를 당장 형틀에 묶어 볼기 스무 대씩을 매질한 뒤 고을 밖으로 쫓아내고, 다시는 연산 댁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엄중히 단속하라!"

    "예이!"

    포졸들이 달려들어 김 서방 내외를 끌어내자, 김 서방은 아이고 나 죽네 비명을 지르며 곤장을 맞고 절뚝거리며 고을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속이 뻥 뚫리는 사또의 명판결에 마당에 있던 백성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고, 연산 댁과 돌이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안도와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사또는 마당으로 내려와 돌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따뜻하게 격려했습니다.

    "소년아, 네 이름이 돌이라 했느냐? 너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나라의 어진 법이 함께 살려낸 귀한 인재이니라. 부디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학문에 정진하여, 훗날 네 어머니와 이 나라의 백성들을 지키는 훌륭한 동량이 되도록 하여라!"

    "사또 나리,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인 죽는 날까지 오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겠사옵니다!"

    ※ 5: 어사화를 쓰고 돌아온 아들의 보은

    관아에서의 송사가 있은 뒤로, 돌이와 연산 댁 모자의 정은 그 어떤 친자식과 친어머니 사이보다도 더욱 깊고 단단해졌습니다. 그날 사또 나리가 들려준 자휼전칙의 법조문과 정조 임금의 깊은 어버이 마음은 열한 살 소년 돌이의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뜨거운 등불이 되었습니다.

    '나를 살린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었고, 우리 모자를 지켜준 것은 백성을 아끼는 나라의 바른 법이었다. 나도 반드시 큰 학문을 이루어, 굶주리고 버려지는 불쌍한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겠다!'

    그날 이후 돌이의 공부는 실로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낮에는 밭을 갈고 나무를 해 어머니의 살림을 도왔고, 밤에는 졸음이 쏟아지면 찬물에 세수를 해가며 새벽닭이 울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그 갸륵한 뜻을 아는 연산 댁 역시 침침해진 눈으로 밤새 베를 짜고 바느질을 하여 아들의 책값과 지필묵 값을 뒷바라지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돌이가 스무 살의 건장한 청년이 되었을 때, 고을 훈장님은 더 이상 돌이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며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떠나던 날 아침,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연산 댁은 아들의 괴나리봇짐을 묶어 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내 아들 돌이야, 한양 길이 멀고 험하니 부디 몸조심하여라.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그저 건강하게만 이 어미 곁으로 돌아오너라."

    "어머니, 그리고 저를 함께 키워주신 억척 어멈 어머니! 소자 반드시 장원 급제하여 두 분의 은혜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돌이는 두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양 춘당대에서 열린 과거 시험 날이었습니다. 그해 시제로 나온 문제는 공교롭게도 백성을 기근에서 구제하고 고아와 과부를 보살피는 진휼의 방책을 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제를 본 돌이는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것은 책 속에서 외운 죽은 지식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눈구덩이에서 구조되어 자휼전칙의 쌀을 먹고 자라며 온몸으로 겪어낸 살아있는 인생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돌이는 붓을 들어 거침없이 답안을 써 내려갔습니다. 계묘년 겨울 성황당 고개에서 자신을 품에 안았던 가난한 어머니 연산 댁의 이야기부터, 매달 관아에서 내어주던 백미와 미역, 이웃의 젖을 나누어 물리게 한 지혜로운 행정, 그리고 십 년 뒤 친부모의 횡포로부터 양어머니와 자식을 끝까지 지켜낸 법의 위대함까지를 피를 토하듯 생생하고 절절하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돌이는, 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집행하는 수령이 백성을 부모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인술이 완성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답안지를 읽어나가던 정조 임금의 손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임금은 답안지를 다 읽고 난 뒤 용상에서 일어나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아아, 보아라 경들아! 과인이 십수 년 전 밤잠을 설쳐가며 만들었던 자휼전칙으로 살아난 그 강보의 아기가, 이토록 훌륭하고 곧은 선비로 자라나 오늘 과인의 앞에 서서 백성을 구할 방책을 논하고 있구나! 이보다 더한 경사가 어디 있단 말이냐! 이 답안지의 주인을 당장 장원으로 뽑아라!"

    정조 임금은 장원 급제한 돌이를 편전으로 직접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는 크게 감동하여, 돌이에게 어사화를 하사하고 삼남 지방의 굶주린 백성들을 살피고 구휼하는 진휼 어사의 중책을 맡겼습니다. 나아가 돌이를 길러낸 연산 댁에게는 나라에서 정절과 자애로움을 기리는 정려문을 내리고 평생 먹고살 곡식과 비단을 하사했습니다.

    며칠 뒤, 충청도 공주목의 작은 산골 마을 어귀가 떠들썩해졌습니다. 피리와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푸른 관복에 어사화를 꽂고 백마에 올라탄 청년 어사가 수많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마을로 들어선 것입니다.

    "어사 박돌이 출두요! 길을 비키시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길가로 나와 구경을 하던 중, 나뭇짐을 지러 가다 말고 달려 나온 백발의 연산 댁과 억척 어멈이 말 위에 앉은 청년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돌이는 관복 자락이 흙바닥에 끌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 늙고 굽은 연산 댁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어머니! 불효자 돌이가 주상 전하의 은혜와 어머니의 피땀 덕분에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진휼 어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이고, 내 아들 돌이야!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내 아들이 어사 나리가 되어 돌아왔구나!"

    연산 댁은 어사화를 쓴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고, 돌이는 연산 댁과 억척 어멈을 나란히 가마에 태우고 온 마을 사람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 또다시 큰 가뭄이 닥쳤습니다. 하지만 진휼 어사가 된 돌이가 직접 현장을 누비며 자휼전칙을 철저히 시행하고 관아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한 덕분에, 그해에는 단 한 명의 아이도 길가에 버려지거나 굶어 죽는 일이 없었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가난한 과부가 내밀었던 따뜻한 손길 하나와, 그 선의를 저버리지 않고 쌀과 법으로 굳건히 뒷받침해 준 나라의 혜안이 만나 한 생명을 살렸고, 그렇게 살아난 아이는 마침내 수천수만의 생명을 살리는 조선의 큰 나무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 들려드린 조선시대 아동 구호 법령 자휼전칙과 연산 댁 모자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길가에 버려진 아이를 거두면 나라에서 쌀과 미역을 주고, 나중에 뻔뻔한 친부모가 찾아와도 법으로 양어머니를 지켜주었다니, 이백여 년 전 정조 임금님의 세심한 배려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피를 나눈 것보다 더 진한 것이 생명을 살리고 길러준 은혜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데요. 오늘 이야기가 따뜻하고 통쾌하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알림 설정까지 꼭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도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흥미진진한 조선 야사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