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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야사록 사대부 부인의 옷고름을 풀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여인
남녀가 자리를 함께하지 않는다는 법도 때문에 양반가 부인들이 병을 숨기다 죽어갔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나라가 여성 의료인, 곧 의녀를 길러낸 과정과 그들이 살려낸 수많은 목숨을 따라간다.
신분은 낮았으나 손끝은 귀했던 이들의 이야기. (출처: 태종실록 6년 기사, 경국대전 예전, 제생원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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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사내 의원에게 옷고름을 풀 바에야 차라리 목숨을 끊겠다!" 남녀유별이라는 지엄한 유교 법도 아래, 이름 모를 병을 숨긴 채 시름시름 앓다 죽어간 수많은 조선의 여인들. 그 비극을 멈추기 위해 나라가 직접 나섰습니다! 천한 관비의 신분이었지만, 왕실과 사대부 여인들의 옷고름을 풀고 생명을 구했던 조선 최초의 전문 여성 의료인 '의녀'들의 눈물겨운 탄생과 거룩한 활약상, 지금 공개합니다.
※ 1: 남녀유별의 법도에 갇혀 병을 숨긴 채 죽어가는 양반가 여인들의 비극
조선 건국 초기, 한양 도성의 기와집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북촌의 어느 고요한 저녁.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솟을대문을 가진 사헌부 대사헌 김 대감의 으리으리한 저택 안채에서는, 며칠째 숨죽인 곡소리와 무거운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매화꽃이 곱게 수놓아진 병풍 뒤, 안방의 두꺼운 최고급 명주 비단 이불 아래에는 김 대감의 정실부인인 윤씨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위태롭게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벌써 보름이 훌쩍 넘도록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하혈과 온몸을 불덩이처럼 달구는 고열에 시달렸지만, 안타깝게도 윤씨의 정확한 병명조차 제대로 아는 이가 이 넓은 집안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편인 김 대감이 가문의 모든 재력을 동원하여 한양 바닥에서 제방에 침 좀 놓는다는 제일가는 명의들을 수소문해 차례차례 집으로 모셔 들였지만, 정작 그 뛰어난 의원들은 환자인 윤씨의 얼굴조차 단 한 번 쳐다보지 못한 채 사랑채나 굳게 닫힌 방문 밖에서 발만 구를 뿐이었습니다.
"대감마님, 참으로 송구하오나 부인 마님의 병세를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려면, 의원인 제가 직접 맥을 짚고 복부의 부은 상태를 손으로 만져보아야만 하옵니다. 열이 어느 장기에서 시작되었는지, 어혈이 어디에 뭉쳐 있는지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약을 쓸 수가 없사옵니다. 부디 방 안에 들어가 마님을 진맥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방문 밖에서 수염이 허연 늙은 의원이 애타는 목소리로 간청했지만, 굳게 닫힌 문 안쪽에서는 기침이 섞인 윤씨의 단호하고도 처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의원은 당장 물러가시오...! 쿨럭, 쿨럭... 명문 사대부 가문의 안방마님인 내가, 어찌 하늘 같은 지아비가 아닌 외간 사내에게 속살을 보이고 외투의 옷고름을 풀 수 있단 말이오. 내 몸에 외간 사내의 손길이 닿아 가문의 고결한 명예를 더럽히고 음탕한 여인으로 대대손손 손가락질받느니, 차라리 이대로 정절을 지키며 깨끗하고 의연하게 목숨을 끊겠소. 대감, 제발 저 무엄한 의원을 당장 집 밖으로 내쫓아 주시옵소서!"
김 대감은 굳게 닫힌 방문의 문고리를 부여잡고 소리 없는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부인! 가문의 명예와 체면이 다 무엇이란 말이오. 일단 숨이 붙어 살고 보아야 후일이라도 기약할 것 아니오! 남녀유별의 법도가 천지자연의 이치라며 그토록 지엄하다 한들, 어찌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부인의 귀한 목숨보다 중하겠소이까! 제발 고집을 꺾고 문을 열어 의원에게 팔을 내어주시오. 내가 이리 무릎을 꿇고 빌 터이니 제발..."
남편의 뼈를 깎는 듯한 처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윤씨의 대나무 같은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조선 초기, 숭유억불 정책과 함께 나라의 기틀로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린 성리학의 삼강오륜과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사상은, 양반가 여인들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무겁고 지엄한 족쇄이자 굴레였습니다. '일곱 살만 되어도 남녀가 한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엄격한 내외법 아래, 병이 나도 외간 사내인 의원에게 자신의 피부를 보인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독한 수치이자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끔찍한 죄악으로 여겨졌습니다. 부인과 질환이나 유방에 난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의원이 옷을 벗으라 요구하면, 그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매거나 비상을 마시고 음독을 하는 양반가 부인들이 심심치 않게 나올 정도의 숨 막히는 시대였습니다.
의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나이 든 여종의 손을 빌려 부인의 손목에 얇은 명주실을 길게 묶어 문밖으로 빼낸 뒤, 그 미세한 진동을 손끝으로 느끼며 맥을 짚는 시늉을 하는 '현맥'이 고작이었습니다. 아니면 곁을 모시는 몸종에게 증상을 전해 듣고 병을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침을 놓아야 할 때도 환부의 위치가 어디인지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얇은 장막을 쳐놓고 대충 더듬어 허공에 헛손질하기 일쑤였고, 뜸을 뜨는 것은 아예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 내린 진단이 정확할 리 만무했습니다. 결국 의원이 진땀을 빼며 처방한 독한 탕약은 환자의 증상과 전혀 맞지 않아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병을 더욱 악화시키기 일쑤였습니다.
"부인... 제발 고집을 꺾으시오. 아이들이 마당에서 어미를 부르며 울고 있지 않소. 내가 이리 애통하게 빌 테니 제발..."
김 대감의 피 끓는 애원에도 불구하고, 윤씨는 끝내 사내 의원에게 옷고름을 단 한 겹도 풀지 않은 채, 며칠 뒤 캄캄한 안방에서 고통 속에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윤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비단 김 대감 댁 하나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양 도성은 물론이고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사대부 여인들과 평범한 아낙네들이 부인과 질환이나 가벼운 종기 같은 충분히 치료 가능한 병을 앓고도, 남녀유별이라는 지엄한 법도와 체면 앞의 수치심 때문에 의원에게 병을 꽁꽁 숨긴 채 시름시름 앓다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지 않아도 될 여인들의 억울한 혼령이 조선의 밤하늘을 구천을 떠돌며 울고 있었지만, 남성 중심의 양반 사대부들은 그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두고 '부덕을 몸소 실천하고 정절을 훌륭히 지킨 아름다운 희생'이라 포장하며 비석을 세우고 칭송하기 바빴습니다. 사람의 귀한 목숨을 살려내야 할 의술이 꽉 막힌 유교 법도 앞에 무참히 가로막혀, 정작 생명의 탄생을 묵묵히 품어내는 조선 여인들의 숨통을 서서히 끊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 2: 여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의녀' 제도를 건의하는 허도
양반가 안방에서 들려오는 여인들의 어처구니없고 비극적인 죽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일같이 이어지자, 백성들의 병을 구휼하고 의약을 관장하는 임무를 맡은 국가 관청인 '제생원(濟生院)'의 동지사 허도는 매일 밤 가슴을 치며 깊이 통탄했습니다. 허도는 본디 의술에 조예가 퍽 깊고 헐벗은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이 그 누구보다 남다른 어진 관리였습니다. 그는 궐에 들고 날 때마다, 또 약재를 점검할 때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참담한 현실에 뼈저린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이 얼마나 하늘이 통곡하고 땅이 찢어질 노릇인가. 사람의 생명과 수명이 본디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이라지만, 의원에게 단 한 번만 제대로 된 진찰을 받으면 가뿐히 살 수 있는 젊은 여인들과 산모들이 그 알량한 체면과 고루한 내외 법도 때문에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남녀가 유별하다 하여 사내 의원이 여인의 몸을 진맥하고 만지는 것이 정녕 목숨을 버려야 할 만큼 큰 죄악이라면, 도대체 누가 이 불쌍한 여인들을 병마에서 구한단 말인가. 그렇다! 사내가 여인의 몸을 만질 수 없다면, 여인의 몸을 자유롭게 만지고 진찰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같은 여인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여인에게 사람을 살리는 의술을 가르쳐 훌륭한 의원으로 만들면 될 일 아닌가!'
수일 밤낮을 고뇌하던 허도는 마침내 번뜩이는 깨달음과 굳은 결심을 얻고는, 곧장 먹을 갈아 붓을 쥐고 궐에 계신 임금께 올릴 장계를 단숨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태종 6년(1406년) 음력 3월 16일, 오늘날까지 조선왕조실록에 그 거룩하고도 파격적인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낱낱이 기록되는 위대한 역사의 순간이었습니다.
"전하, 신 제생원 동지사 허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엎드려 아뢰옵나이다. 근래 도성 안팎의 수많은 부인들이 위중한 병이 나도 사내 의원에게 진찰받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여겨, 끝끝내 병을 숨기고 진맥을 거부하다 결국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하옵니다. 이는 참으로 비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특별히 지엄한 명을 내리시어 각 관아에서 심부름을 하는 어린 관비(官婢)들 중 총명한 자 수십 명을 선발하여 제생원에 소속시키고, 그들에게 진맥하는 법과 침구술(침과 뜸)을 철저히 가르쳐 부인들의 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시면 남녀유별의 지엄한 법도를 지켜 양반가 부인들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동시에 억울하고 허무하게 죽어가는 수많은 여인들의 목숨을 능히 살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수많은 피의 숙청을 거치며 왕위에 오른 철의 군주, 태종 임금은 허도가 올린 장계를 읽고 용상에 앉아 깊은 상념에 잠겼습니다. 당시 15세기 초반의 조선 사회에서 글월을 읽고 성현의 학문을 깨우치며, 사람의 인체를 다루는 의술을 배우는 것은 오직 선택받은 양반 사대부 사내들만의 절대적인 전유물이었습니다. 하물며 양인도 아닌, 사고파는 물건이나 다를 바 없는 인간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천민 중의 천민인 여자 종, 즉 관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신성한 의술을 전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양반 사회의 견고한 신분제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버릴 파격 중의 파격이었습니다.
이러한 혁명적인 장계가 조정에 회부되자, 고루한 성리학적 이념에 사로잡힌 늙은 대신들은 마치 벌집을 쑤신 듯 일제히 들고일어나 거품을 물며 반대했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절대 아니 되옵니다. 어찌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비천하기 짝이 없는 관비들에게 하늘이 내린 신성한 의술을 가르친단 말입니까! 그들의 우둔하고 무지한 머리로는 음양오행의 깊은 이치와 장부의 흐름을 결코 깨달을 수 없으며, 자칫 무식한 손으로 침을 잘못 놓았다가는 사람을 살리기는커녕 멀쩡한 목숨을 죽이는 살인귀가 될 수도 있사옵니다. 이는 양반의 권위를 여지없이 실추시키고 성현의 의술을 능멸하는 처사이오니, 부디 허도의 얼토당토않은 건의를 물리쳐 주시옵소서!"
하지만 일찍이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피비린내 나는 길을 걸어 왕위에 올랐으나, 백성을 다스리고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일에는 그 누구보다 실용적이고 실리적이며 결단력이 뛰어났던 태종의 생각은 대신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의 눈에는 허례허식에 갇혀 백성의 죽음을 방치하는 대신들의 위선이 가소로워 보일 뿐이었습니다.
"경들은 당장 그 입을 다물라! 양반가 부인들이 속병을 얻어 속절없이 방 안에서 죽어가는 것을 그저 체면 탓만 하며 방관하고 구경하는 것이 정녕 성리학에서 말하는 애민의 도리란 말인가! 비록 신분이 가장 낮고 비천한 관비라 할지라도, 나라에서 제대로 가르쳐 사람의 목숨을 훌륭히 살려낼 수 있다면, 그 관비의 손끝은 탁상공론이나 일삼는 양반의 붓끝보다 천 배 만 배 귀한 법이다. 과인은 제생원의 건의를 당장 허락하니, 전국의 관아에서 나이가 어리고 총명한 관비들을 뽑아 올려 '의녀(醫女)'로 길러내도록 하라!"
조선의 지엄한 절대 군주 태종의 파격적이고도 추상같은 교지가 대전에 떨어지자마자, 제생원에서는 발 빠르게 전국 관아의 창고와 마당을 누비는 여자 노비들 중 나이가 어리고(주로 10~15세) 눈치가 빠르며 총명해 보이는 어린 관비 수십 명을 한양으로 차출해 모았습니다. 평생 붓 한번 쥐어본 적 없고, 흙바닥에서 물 긷고 빨래나 하며 굳은살이 박인 어린 소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제생원의 넓고 낯선 뜰에 모여 한자가 빼곡한 의서와 뾰족하고 무서운 침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여성만을 위한 전문 의료 집단인 '의녀(醫女)'가 세상에 탄생하는 위대하고도 험난한 첫걸음이 드디어 시작된 것입니다.
※ 3: 천한 관비 신분에서 글과 침술을 배우며 고된 훈련을 견뎌내는 어린 의녀들
한양 제생원 마당에 모인 어린 관비들의 까무잡잡한 얼굴에는, 어느 날 짐짝처럼 실려 영문도 모른 채 한양으로 불려 온 것에 대한 짙은 두려움과, 매일같이 뼈가 부서지도록 물을 긷고 장작을 패야 했던 혹독한 노비 일에서 벗어났다는 아주 작은 안도감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제생원 동지사 허도는 조선 최고의 명의들로 구성된 엄격하고 무서운 제생원 의관들을 이 소녀들의 스승으로 단단히 배정하고는, 두려움에 떠는 소녀들을 향해 우렁차고 결연한 목소리로 호령했습니다.
"너희들은 똑똑히 듣거라! 너희는 오늘부로 남의 집 뒷마당에서 심부름이나 하던 비천하고 이름 없는 노비가 아니라, 이 나라 조선 팔도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여인들을 끔찍한 병마에서 구원해 낼 자랑스러운 '의녀' 후보생들이다! 사람의 귀한 목숨을 두 손으로 직접 다루어야 하는 막중한 일이니 앞으로의 훈련은 뼈를 깎듯 고되고 가혹할 것이다. 허나, 피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고 견뎌내어 마침내 의술을 온전히 깨우친다면, 훗날 너희들의 그 거친 손끝은 그 어떤 고관대작의 권력과 재물보다 고귀하게 빛날 것이다!"
의녀가 되기 위한 훈련은 허도의 경고대로 어린 소녀들이 감당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되고 혹독했습니다. 평생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던, 붓 쥐는 법조차 몰랐던 십 대의 소녀들은 아침 해가 산등성이를 넘기 전부터 밤하늘에 별이 총총할 때까지, 서당에서 종아리를 맞는 양반가 선비들보다 더 가혹하고 혹독하게 수백 수천 자의 한문과 두꺼운 의서를 달달 외워야만 했습니다.
"천지음양의 이치가 곧 사람 몸이 움직이는 이치니라. 심장, 간, 비장, 폐, 신장의 오장육부와 혈액이 흐르는 경락의 수백 개 혈자리를 눈을 감고도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외우거라! 글자를 더듬거리거나 침 자리를 틀리는 자는 종아리에 맺힌 피가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스승들의 벼락같은 불호령 속에 소녀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기초 의서인 '천자문'을 시작으로 '효경', 약재의 쓰임새를 다룬 '산림경제'는 물론이고, 인체의 복잡하기 그지없는 수백 개의 경혈과 경락을 낱낱이 그려놓은 '동인경'과, 진맥을 짚는 미세한 비법이 적힌 '맥결'을 목이 쉬도록 소리 내어 낭독하고 또 낭독했습니다. 하지만 이론보다 훨씬 더 소녀들을 두렵고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실전 훈련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어두컴컴한 호롱불 밑에서 꾸벅꾸벅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뺨을 맞았고, 굵고 투박한 바늘과 가늘고 예리한 침을 쥐고 짐승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허벅지와 팔뚝에 직접 수십 번씩 피를 내며 침을 찔러넣는 끔찍한 실습을 매일 밤 뼈저리게 반복해야 했습니다.
"아얏! 흑... 아파요..."
밤마다 숙소에서는 숨죽여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어린 소녀들의 여린 살갗에는 푸릇푸릇한 멍과 피맺힌 침 자국이 가실 날이 없었고, 쑥뜸을 올리다 불에 깊게 데인 화상 상처가 벌겋게 곪아 터지기도 일쑤였습니다. 어떤 소녀들은 혹독한 공부와 육체적 고통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한밤중에 제생원 담을 넘어 도망치려다 금세 관군에게 붙잡혀 와 반죽음이 되도록 끔찍한 매질을 당하기도 했고, 어떤 여리고 순한 소녀들은 사람 몸에 뾰족한 침을 깊숙이 꽂아 넣어야 한다는 엄청난 두려움과 압박감에 매일 밤 얇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부모를 부르며 소리 죽여 서럽게 울었습니다.
하지만 매달 어김없이 치러지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시험인 고강(考講)을 통과하지 못하면, 낙제자로 찍혀 제생원에서 쫓겨나 다시 예전의 비참하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험악한 관노비 생활로 돌아가 평생 허리가 휘도록 매를 맞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 맹랑한 소녀들은 그 누구보다 뼛속 깊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소녀들은 눈물을 훔치며 독기를 품고 악착같이 두꺼운 의서를 머릿속에 구겨 넣었고, 찌르는 고통을 참아내며 훌륭한 침술을 손끝에 굳은살처럼 새겨넣었습니다. 게다가 국가에서는 시험에서 1등을 하거나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소녀들에게 매달 쌀 두 말을 상으로 넉넉히 내려주었기에, 평생 제 몫의 쌀 한 줌 가져보지 못했던 가난한 노비 소녀들에게 그것은 피눈물을 인내할 수 있는 엄청난 동기부여이자 생존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몇 년의 뼈를 깎는 모진 훈련 기간이 지나자, 흙투성이 관비였던 소녀들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겁에 질려 떨던 눈동자는 어느새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대부 노학자들 못지않은 깊고 예리하며 날카로운 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방 안에서 낡은 의서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산으로 들로 직접 나가 수백 가지 약초의 맛을 직접 입으로 씹어보며 쓴맛과 단맛의 효능을 몸으로 익혔고, 임산부의 난산을 돕는 조산 기술과 산후조리 비법, 그리고 막힌 혈맥을 침과 뜸으로 뚫어 죽어가는 기운을 살려내는 최고의 전문 지식을 갖춘 진짜 훌륭한 '의원'으로 서서히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너희들에게 묻겠다. 이제 갑작스레 하혈하며 기절한 양반가 부인에게는 가장 먼저 어느 혈자리에 침을 꽂아 기운을 돌려야 하는지, 난산(難産)을 겪으며 피를 쏟는 산모에게는 어떤 탕약을 급히 달여 올려야 하는지 완벽하게 숙지하였느냐?"
제생원 최고 어의 스승의 깐깐하고 매서운 질문에, 이제는 훌쩍 자라 어엿한 여인의 자태를 갖춘 의녀 대표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막힘없는 청산유수로 치료법을 쏟아내자, 평소 칭찬에 인색하고 호통만 치던 허도와 제생원 의관들의 굳은 얼굴에 마침내 깊고 흡족한 안도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신분은 조선 땅에서 가장 낮고 천한 여자 관비였으나, 그들의 총명한 머리와 굳은살 박인 손끝에는 어느새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병들어 죽어가는 여인들을 훌륭히 살려낼 무한하고 숭고한 치유의 힘이 온전히 깃들어 있었습니다. 남성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사내 의원들은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은밀하고 굳게 닫힌 안방의 문턱을 넘어, 거룩하고도 기적 같은 치유를 행할 준비를 수년에 걸쳐 완벽하게 마친 것입니다.
세상의 지독한 편견과 천대 속에서 혹독한 피눈물의 시간을 꿋꿋하게 이겨낸 조선 최초의 의녀들이, 마침내 무거운 침통과 구급 상자를 작은 어깨에 단단히 메고 신음하는 여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제생원의 무거운 문을 박차고 나설 거룩한 채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 4: 의녀의 침술로 사대부 부인의 병을 고치고 그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다
수년간의 혹독하고 피눈물 나는 의녀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무거운 구급 상자를 어깨에 멘 채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의녀들에게 처음부터 사람들의 찬사와 환호가 쏟아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생원 문턱을 넘어선 그녀들을 마주한 세상의 굳건한 편견과 신분제의 벽은, 어린 소녀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높고 단단했으며 폭력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고루한 성리학적 이념에 뼛속까지 찌든 콧대 높은 사대부 양반들은, 아무리 제생원에서 정식으로 의술을 배웠다 한들 여전히 "어찌 근본도 없는 천한 관비 따위의 더러운 손길을 고귀한 양반가 부인의 옥체에 함부로 닿게 한단 말이냐!"라며 노발대발했고, 의녀들의 훌륭한 실력을 철저히 불신하고 천대하며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비싼 은자를 주고 사내 의원을 불러다 굳게 닫힌 안방 문밖에서 명주실로 진맥 흉내만 내게 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요란하고 시끄러운 굿판을 벌이며 소중한 생명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허무하게 병을 키우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굳게 닫혀 있던 인식의 문이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고, 그토록 멸시받던 의녀들의 진가가 세상에 찬란하게 빛을 발할 기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아주 다급하고 생사가 오가는 위급한 순간에 벼락처럼 찾아왔습니다.
한양 도성에서 양반의 체통과 가문의 명예를 꼬장꼬장하게 따지기로 첫손에 꼽히는 이조판서 최 대감 댁. 그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젊고 어여쁜 며느리가 첫아이를 출산하던 중, 양수가 터졌음에도 하루가 꼬박 넘도록 아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심각한 난산(難産)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뱃속의 아이는 거꾸로 들어서 탯줄이 목을 감은 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가여운 며느리는 사흘 밤낮을 하혈하며 기절과 혼절을 끝없이 반복하여 그 목숨이 벼랑 끝 경각에 달해 있었습니다. 집안에 다급히 동원된 도성 최고의 내로라하는 사내 의원들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신성한 산실(産室)에 감히 발도 들이지 못한 채, 문밖에서 땀만 뻘뻘 흘리며 하인들을 통해 인삼 달인 물만 안으로 들이밀고 동의보감의 구절만 허공에 읊어대며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습니다. 며느리의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어지고, 최 대감 가문의 대가 영영 끊길 끔찍한 위기에 처하자, 평생을 꼿꼿하게 살아온 최 대감은 목숨처럼 여기던 가문의 체면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제생원에 사람을 보내 급히 의녀를 당장 보내달라 애타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대감마님, 제생원의 명을 받고 파견된 의녀 '금비'라 하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범벅이 된 채 산실 앞에 도착한 의녀 금비는 비록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앳된 얼굴이었지만, 사람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그 매서운 눈빛만은 수십 년 생사를 넘나든 백전노장처럼 단단하고 결연했습니다. 사내 의원들이 땀을 쥐고 안절부절못하며 문밖을 서성이는 사이,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굳게 닫힌 산실 문을 양손으로 벌컥 열어젖히고, 짙은 피비린내가 숨통을 조이는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습니다.
금비는 핏자국으로 얼룩진 이불을 걷어내고 기절한 며느리의 하의를 조심스레 벗긴 뒤, 제생원에서 혹독하게 훈련받은 대로 직접 두 손을 넣어 태아의 위치와 탯줄의 꼬임 상태를 아주 정확하고 섬세하게 더듬어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핏기 없이 축 늘어진 산모의 가느다란 손목을 꽉 잡아 진맥을 마친 뒤, 밖에서 우왕좌왕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의원들과 최 대감을 향해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단호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산모의 기력이 완전히 바닥나 스스로 아이를 밀어낼 기운이 전혀 없사옵니다! 밖의 의원들은 당장 기를 돌게 하고 피를 맑게 하는 당귀와 천궁을 진하게 달여 지체 없이 올리시고, 산모의 막힌 어혈을 단숨에 풀 쑥뜸과 가장 굵은 장침을 끓는 물에 소독하여 속히 준비해 주시옵소서! 반 식경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어미와 아이, 두 목숨 다 잃사옵니다!"
평생 양반 사대부 사내들로만 대접받으며 살아온 의원들에게, 가장 천한 관비 출신의 계집이 감히 턱을 치켜들고 호령을 하는 참으로 기막히고 굴욕적인 상황이었지만, 금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담긴 압도적인 확신과 맹렬한 기백에 완전히 기가 눌려버린 의원들은 허겁지겁 그녀의 지시를 군말 없이 따랐습니다. 금비는 다급히 전달받은 묵직하고 굵은 장침을 쥐고, 산모의 복부와 다리의 기운을 깨우는 중요 혈자리에 빠르고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깊숙하게 꽂아 넣었습니다. 어릴 적 수천수만 번 제 멍든 허벅지를 찌르며 피눈물로 연습했던 바로 그 완벽하고 신묘한 침술이었습니다. 꽉 막혀 있던 기혈이 맹렬하게 뚫리면서, 의식을 잃었던 산모가 헉, 하고 막힌 숨을 거칠게 내뱉더니 기적처럼 파르르 떨며 다시 의식을 차렸습니다.
"아씨, 고비는 넘겼고 거의 다 왔사옵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시거든 부디 어미 된 마음으로 조금만 더 힘을 내시옵소서! 제가 밖에서 아이의 엉덩이를 천천히 돌려 뱃속의 위치를 바로잡아 보겠습니다. 제 손길과 호흡에 맞추어 숨을 길게 내쉬시옵소서!"
금비는 온몸이 산모의 양수와 피, 그리고 자신의 땀으로 흠뻑 범벅이 된 채, 직접 두 손으로 산모의 남산만 하게 부른 복부를 힘껏 압박하고 능숙하게 마사지하며 뱃속에 거꾸로 박힌 태아를 필사적으로 돌려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산모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금비의 밭은 거친 숨소리가 뒤섞인 몇 시간의 끔찍하고 처절한 사투 끝에, 마침내 굳게 닫힌 방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갓난아기의 힘찬 첫 울음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습니다.
"응아앙! 으아아앙!"
산실 밖에서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초조하게 기다리며 숨을 죽이던 최 대감과 식구들은, 그토록 기다리던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에 온몸의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짐승처럼 엉엉 안도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자칫 피를 쏟고 원통하게 죽어가던 어여쁜 며느리와, 가문의 굳건한 뼈대인 귀한 장손의 목숨을 기적처럼 동시에 완벽하게 살려낸 것은, 문밖에서 헛기침이나 하며 무능하게 체면만 차리던 수염 난 양반 의원들이 아니라, 앳된 얼굴을 한 가장 천한 관비 출신 의녀 금비의 거칠고 피 묻은 숭고한 손끝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생환 사건의 소문은 발이 달린 듯 삽시간에 한양 도성 전체에 좍 퍼져나갔습니다.
"여보게, 그 소문 들었소? 고집불통 최 대감 댁 며느리가 출산하다 다 죽어가던 것을 어제 밤새 겨우 살려냈다지 뭐요!"
"글쎄 말이오, 사내 의원들은 피비린내가 두려워 문밖에서 벌벌 떨기만 했는데, 제생원에서 배운 그 천한 의녀가 당당히 들어가 직접 피를 묻히고 뱃속의 애를 돌리고 침을 놔서 두 목숨을 멀쩡히 살려냈다지 않소! 이제 보니 잘난 사내 의원 백 명보다 훈련받은 의녀 하나가 천 배 만 배 낫다는 말이 도성에 파다하게 퍼졌소이다!"
이 기적 같은 생존 사건을 결정적인 계기로, 사대부 양반들의 완고하고 꽉 막혔던 썩은 생각과 편견도 서서히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헛된 가문의 체면보다 대를 잇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그들은, 부인과 딸이 부인과 질환이나 유방 종기, 출산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면 헛된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앞다투어 제생원에 노비를 보내어 굽신거리며 실력 있는 의녀들을 다투어 융숭하게 모셔 가기 시작했습니다. 의녀들은 남녀유별이라는, 사람을 죽이던 지엄한 율법의 장막을 거침없이 찢고 뛰어넘어 여인들의 안방 깊숙이 당당하게 들어갔고, 그들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끝은 죽어가던 수많은 조선 여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기적의 황금 동아줄로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 5: 궁궐로 진출하여 내의원 소속으로 왕실 여인들의 생명까지 책임지게 된 의녀들
사대부 여인들 사이에서 의녀들의 탁월한 침술 실력과 헌신적인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자, 이들의 눈부신 활약은 마침내 구중궁궐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 지엄하고 범접할 수 없는 왕실의 내전까지 자연스레 전해졌습니다. 당시 높고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구중궁궐 안에는 수백 명에 달하는 궁녀들과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들, 그리고 나라의 으뜸 국모인 왕비와 대비가 살고 있었지만, 지엄한 왕실의 법도상 그들 역시 내의원의 최고 실력자들인 사내 어의(御醫)들에게 함부로 속살을 보이며 진찰받는 것은 일반 사대부가보다 더욱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왕실의 고귀한 여인들 역시 제때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홀로 고통을 참으며 숨기다 목숨을 잃거나, 난산으로 원통하게 세상을 뜨는 참혹한 비극이 구중궁궐 안에서도 쉼 없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왕실에서는 각 지방 관아와 한양 제생원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진맥과 침술이 신묘하기로 소문난 일등 의녀들, 이른바 '내의녀(內醫女)'들을 대거 차출하고 엄격히 선발하여 궁궐 안 내의원에 정식 왕실 의료인으로 소속시켰습니다.
"너희들은 오늘부로 지엄한 궐내에서 왕실 여인들의 귀한 옥체를 가장 가까운 곁에서 돌보는 막중하고도 두려운 임무를 맡게 되었다. 너희가 찌르는 침끝 하나, 달이는 탕약 한 사발에 왕실의 안위와 미래 세손의 목숨이 고스란히 달려 있으니, 사사로운 감정을 모두 버리고 오직 의술의 본분에만 목숨을 걸고 전념해야 할 것이다! 행여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너희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의원 제조의 엄중하고 서릿발 같은 경고 속에, 의녀들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언제 역모와 암투의 피바람이 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궐 안의 치열한 권력 암투 속에서도, 오직 생명을 구한다는 굳은 신념 하나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왕비나 후궁이 회임했을 때 곁에서 가장 먼저 맥을 짚어 기쁜 소식을 임금께 알렸고, 후궁들이 원인 모를 하혈과 복통으로 남몰래 고통받을 때 직접 밤을 새워 탕약을 진하게 달이고 은밀한 혈자리에 조심스럽게 뜸을 떠주며 생명을 지켰습니다. 심지어 지엄한 대비마마가 얼굴에 흉측한 큰 종기가 나거나 중풍으로 쓰러져 입이 돌아갔을 때에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사내 어의들을 대신하여 의녀들이 며칠 밤낮을 곁을 지키며 지극정성으로 침을 놓고,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는 헌신을 발휘하여 병세를 기적처럼 호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내의녀들의 거룩한 활약 중에서도 단연코 군계일학으로 돋보였던 것은,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의이자 신화적인 존재로 꼽히는 전설의 의녀 '대장금(大長今)'이었습니다. 그녀는 중종 임금 시절, 비천한 관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끊임없는 노력과 천재적인 의학적 감각으로, 조선 팔도의 그 어떤 날고 기는 사내 의원들조차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신묘하고도 완벽한 의술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전하의 맥이 요근래 이토록 미약해지시고, 만성적으로 소화가 안 되시어 밤잠을 설치며 고통받으시는 것은, 옥체의 비위 장기에 차가운 기운과 어혈이 오래도록 뭉치고 쌓인 탓이옵니다. 신녀가 남성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직접 전하의 배에 따뜻한 뜸을 정성껏 뜨고, 비위를 다스려 기운을 북돋는 탕약을 달여 올리겠사옵니다. 부디 옥체를 온전히 맡겨주시옵소서."
장금의 이토록 정확한 진단과 과감한 처방은 언제나 백발백중으로 병의 뿌리를 완벽하게 뽑아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남녀유별이라는 견고한 율법을 완벽하게 깨부수고, 조선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지엄한 국왕(중종)의 수석 주치의 역할을 맡아, 왕의 옥체를 매일 직접 진맥하고 치료하는 엄청난 권한과 세상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중종은 장금의 헌신적이고 눈부신 의술에 깊이 감복하여, 천한 의녀 신분인 그녀에게 위대하다는 뜻의 '대(大)'라는 칭호를 친히 하사하여 '대장금'이라 부르게 하였고,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의 쌀과 콩을 상으로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가장 비천한 관비 출신의 여자 의녀가 내로라하는 사내 어의들을 모두 제치고, 조선 최고 통치자의 생명을 직접 두 손으로 책임지는 옥좌 곁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은, 철저한 성리학 중심의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는 하늘이 두 쪽 날 만큼 파격적이고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의녀들은 이제 더 이상 얼굴을 가리고 천대받는 하찮은 여종이 아니라, 왕실의 대통을 무사히 잇고 왕의 목숨까지 굳건히 지켜내는, 조선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든든하고 대체 불가능한 최고의 전문 여성 의료 집단으로 그 거룩한 위상을 궐내에 확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 6: 신분은 낮았으나 손끝은 누구보다 귀했던 의녀들의 거룩한 헌신과 역사적 의미
하지만 왕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높은 명성을 누렸다고 해서, 모든 의녀들의 삶이 마냥 꽃길처럼 화려하고 영광스럽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신분은 법적으로 여전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관비(노비)'라는 무거운 굴레에 단단히 묶여있었기에, 그들은 궁궐 안팎에서 수많은 부당한 차별과 고된 시련을 뼈가 시리도록 혹독하게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특히 희대의 폭군 연산군 시절부터 왕실의 기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타락하기 시작하면서, 앳되고 용모가 고운 일부 젊은 의녀들은 의술 대신 기생을 뜻하는 '의기(醫妓)'라는 조롱 섞이고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녀들은 억지로 화려한 화장을 하고 궁중 연회나 권력을 쥔 양반 대감들의 질펀한 술자리에 불려 나가 억지웃음을 팔며 술시중을 들고 춤을 추어야 하는 끔찍하고 굴욕적인 일까지 강요받았습니다.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살려내던 거룩한 두 손으로 사대부들의 더러운 술잔을 채워야 했던 의녀들의 가슴에는, 밤마다 지독한 눈물과 평생 지워지지 않는 서러운 피멍이 시퍼렇게 맺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독한 시대의 시련과 뼈아픈 천대, 모멸찬 굴욕 속에서도, 의녀들은 결코 사람을 살리는 의술의 끈과 의원으로서의 숭고한 자부심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습니다. 화려하지만 삭막한 궁궐에서 퇴궐하여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이면, 그녀들은 피곤함에 쓰러질 듯한 잠을 줄여가며 흙먼지가 날리는 어두운 뒷골목의 굶주리고 병든 가난한 백성 아낙네들의 오두막을 일부러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대가로 엽전 한 푼 받지 않고 기꺼이 촛불 아래서 정성껏 침을 놔주고 열을 내리며, 핏물을 뒤집어쓰며 밤새워 새로운 생명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녀들은 가장 높은 권력을 쥔 양반가 안방부터 궐내의 가장 깊은 내전, 그리고 가장 냄새나고 가난한 천민들의 쓰러져가는 오두막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며, 조선 팔도 여인들의 옷고름을 떳떳하게 직접 풀고 그들의 깊은 아픔과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질 수 있었던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생명의 은인들이었습니다.
훗날, 성종 임금 때 완성되어 편찬된 조선 최고의 국가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의녀들의 선발 기준과 혹독한 교육 과정, 그리고 정기적인 고강(시험)에 관한 규정이 법의 이름으로 아주 상세하고 뚜렷하게 명시되었습니다.
"제생원의 혜민서 의녀들은 매달 어김없이 꼼꼼하게 의술 시험을 치러야 하며, 실력이 뛰어나 생명을 다수 살린 자는 쌀로 후하게 상을 내리어 격려하고, 세 번 이상 시험에 떨어지거나 꾀를 부려 게으름을 피우는 자는 즉시 원래의 관비 신분으로 강등시켜 다모(茶母)와 같은 힘든 육체 노역을 시킬 것이다."
이는 단순히 천한 노비들을 통제하고 다루는 율법 규칙이 아니었습니다. 지엄한 국가 최고의 법전에 이들의 구체적인 역할이 명시되었다는 것은, 나라가 여성 의료인의 대체 불가능한 중요성과 그 위상을 뼛속 깊이 인정하고, 그들을 국가가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엄격히 관리하는 어엿한 의료 공무원으로 역사 속에 정식으로 당당하게 기록했다는 위대하고도 놀라운 증거였습니다.
조선이라는 철저하고 꽉 막힌 남성 중심의 닫힌 유교 사회, 반상(班常)의 신분 벽이 까마득한 하늘처럼 높았던 그 척박하고 가혹한 시대에.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관비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세상 그 누구보다 귀하고 거룩하며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손끝을 가졌던 여인들. 그녀들은 남녀유별이라는 지엄한 법도와 알량한 체면의 감옥에 갇혀 이름 모를 부인병으로 안방에서 숨죽여 허무하게 죽어가던 수많은 조선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들을 훌륭히 살려낸 진정한 숨은 영웅이자 조선의 백의의 천사들이었습니다.
사대부 부인의 옷고름을 떳떳하게 풀고 그들의 부끄러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여인, '의녀'. 그들의 거친 손끝에서 피어난 위대한 생명의 기적과 남몰래 흘린 눈물겨운 희생, 그리고 거룩한 헌신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가 읽는 딱딱한 교과서에는 단 몇 줄로 짧게 스쳐 지나갈지언정, 조선 왕조 오백 년의 길고 긴 역사 속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위대하며 눈부신 족적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분은 비록 땅바닥의 흙먼지처럼 천하고 비루했으나, 생명을 향한 그들의 고결한 의술과 헌신만큼은 천하의 그 어느 고관대작 양반보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보다 더 고귀하고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남녀유별의 꽉 막힌 법도 속에서 죽어가던 여인들을 구하기 위해 탄생한 조선의 전문 여성 의료인 '의녀'. 가장 천한 노비 신분에서 시작해 왕의 생명까지 책임지는 자리까지 올랐던 그녀들의 거룩하고 눈물겨운 헌신, 어떻게 들으셨나요?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생명을 향한 이들의 뜨거운 열정은 조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기적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가슴 깊이 와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잊지 마시고요, 다음에도 교과서 밖 숨겨진 흥미진진한 야사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