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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의사 아들을 믿고 살던 노모, 그러나 병상에서 들은 건 ‘단 한 번도 오지 않은 전화’였다 – 자식 농사에 대한 뼈아픈 진실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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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영상 도입부용, 400자 내외):
"여러분, 자식 농사 잘 지으셨습니까? 저기 아랫마을 박 할머니는 아들을 서울서 제일가는 의사로 키워냈다고 온 동네에 자랑이 자자했습니다. '내 아들은 다르다, 내 아들은 효자다'라며 매일같이 핸드폰을 닦으며 전화를 기다리셨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할머니가 몸져누우셨을 때, 그 성공했다는 아들의 전화기 너머에선 어떤 소리가 들렸을까요? 키워준 공은 태산 같은데, 돌아오는 건 바다보다 깊은 적막뿐이라면... 오늘 이 이야기를 들으시며 우리네 인생과 자식이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성공한 자식이 과연 내 노후의 정답일까요? 지금부터 그 가슴 시린 속사정을 들려드립니다."
영상 설명란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평생을 희생해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 우리 시대 부모님들의 가슴 아픈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성공한 자식이 자랑이었던 박 순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자식 농사'의 의미와 노년의 홀로서기에 대해 진솔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었지만 결국 혼자 남겨진 이들의 눈물 섞인 고백. [진솔한 대화] 시리즈가 전하는 위로와 성찰의 시간, 함께해주십시오. 여러분의 자식 농사는 현재 어떤 계절을 지나고 계신가요?"
※ 닦고 또 닦는 핸드폰, 박 할머니의 지독한 기다림과 성공한 아들 자랑.
자, 여기 충청도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식 농사의 달인’이라 불리는 박 순자 할머니가 살고 계셨소. 할머니 방 한구석엔 큼지막한 액자가 하나 걸려 있는데, 거기엔 번듯하게 흰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건 아들놈 사진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지. 할머니는 아침에 눈만 뜨면 그 사진 앞으로 기어가 먼지를 털어내고는,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핸드폰을 꺼내 든다오. 그 핸드폰이 어떤 물건이냐. 삼 년 전 아들이 명절에 잠시 내려와 "엄마, 이거 최신형이야. 이걸로 나한테 영상 통화도 하고 그래"라며 쥐여주고 간 귀한 물건이지. 할머니는 그 핸드폰 액정에 지문 하나 묻을까 봐, 매일 아침 안경 닦는 천을 꺼내 아주 정성스럽게 닦아낸다오. 슥슥, 삭삭. 위아래로 한 번, 양옆으로 한 번.
그러다가 혹시나 액정에 미세한 금이라도 갔을까 싶어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샅샅이 살피는 게 할머니의 첫 번째 일과라오. "아이구, 우리 아들. 어제는 수술이 많았나. 왜 전화가 없었을꼬. 내 오늘 아침에는 목소리 한번 들을 수 있으려나." 할머니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핸드폰 오른쪽 상단에 적힌 배터리 숫자가 몇 퍼센트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지요. 98퍼센트. 충분한데도 괜히 충전기 줄을 한 번 더 꽉 꽂아봅니다. 혹시라도 전원이 꺼져서 아들 전화가 안 올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 우리네 부모님들이라면 다들 아시지 않소?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동네 어귀를 내려다보며 물을 한 잔 마십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소리가 꼴깍꼴깍 들릴 만큼 사방이 고요한데, 할머니 귀에는 오직 핸드폰 벨 소리만 기다려지는 법이지요.
그러다 저 멀리서 우체부 양반 오토바이 소리라도 들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소. '혹시 우리 아들이 소고기라도 보냈나? 아니면 용돈 부쳤다는 편지라도 오나?' 하며 버선발로 마당까지 달려 나간다오. 낡은 짚신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말이오. 하지만 오토바이는 야속하게도 할머니네 대문을 그냥 지나쳐 옆집으로 쌩하니 가버리지요. 할머니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아들 사진을 다시 한번 쳐다보지요. "그래, 바쁘겠지. 사람 살리는 의사 놈이 얼마나 바쁘겠어. 내가 이해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할머니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돋보기를 닦습니다. 아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새벽부터 시장 나가 콩나물을 팔고, 허리가 휘도록 남의 집 논일을 했던 그 고된 세월들이 아들의 저 번듯한 의사 가운 속에 다 녹아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할머니는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가 언제였는지 달력을 뒤져봅니다. 보름 전이군요. 아니, 생각해보니 그건 할머니가 먼저 걸어서 며느리가 받았던 통화였습니다. "어머니, 저희 지금 외식 중이라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그 짧은 한마디가 마지막이었지요. 할머니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면서도, 다시 핸드폰을 천으로 닦습니다. 번쩍번쩍 광이 나는 액자 속 아들의 얼굴을 보며, 할머니는 오늘도 기나긴 침묵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들아, 엄마는 괜찮다. 너만 잘살면 엄마는 배가 부르다." 하지만 닦아내도 닦아내도 액정에 묻은 희미한 얼룩처럼, 마음속 불안은 지워지지 않는 법입니다.
할머니는 문득 서랍장을 열어 아들이 초등학교 때 쓴 편지를 꺼내 봅니다. "엄마,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 되어 효도할게요." 빛바랜 종이 위로 할머니의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집니다. 그 시절엔 쌀이 없어 보리밥만 먹여도 자식 웃음소리에 배가 불렀는데, 지금은 쌀독에 쌀은 가득해도 마음은 텅 빈 벌판 같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핸드폰을 쥐어봅니다.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도, '혹시나 수술 중이라 방해되면 어쩌나' 싶어 다시 내려놓기를 수십 번. 자식 농사 잘 지어 놓으면 노후가 비단길일 줄 알았는데, 그 비단길이 왜 이리도 멀고 험한지 모르겠습니다.
※ 노인정에서의 '자랑 배틀', 침묵하는 전화기와 가슴 속 깊은 불안.
오후가 되면 할머니는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으십니다. 아들이 첫 월급 탔다고 십 년 전에 사 보내준 옥색 스웨터. 보풀이 좀 일어났어도 할머니에게는 그 어떤 명품 옷보다 귀한 보물이지요. 그 옷을 정성스럽게 차려입고 마을 노인정으로 향합니다. 왜 가냐고요? 거기 가야 우리 아들 자랑을 실컷 할 수 있거든요. 노인정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벌써 할매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습니다. 한쪽에선 "우리 딸이 이번에 제주도 여행 보내준다네"라며 비행기 표 예매 문자를 보여주고, 또 다른 쪽에선 "우리 손주가 이번에 장학금을 탔다고 전화를 했어"라며 입술이 귀에 걸려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박 순자 할머니의 등판 타이틀 매치 시간이지요.
할머니는 짐짓 점잖은 척하며 핸드폰을 상 중앙에 떡하니 올려놓습니다. 마치 황금 덩어리라도 되는 양 말이오. "아이구, 제주도는 무슨. 우리 아들은 서울서 하도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 어제도 아주 유명한 국회의원을 수술했다나 뭐라나. 나한테 전화를 하고 싶어도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니 틈이 있어야지." 할머니의 말에 다른 할매들이 부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지요. "의사 아들 뒀으니 순자네는 노후 걱정 없겠어. 병원비 걱정도 안 하겠지?" 그 칭찬 한마디에 할머니의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속으로는 '사실 보름째 통화도 못 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그걸 내뱉으면 평생 일궈온 자식 농사가 흉작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요. 할머니는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립니다. "지금쯤 전화 올 때가 됐는데... 큰 수술 들어갔나 보네." 거짓말이 보태질수록 할머니의 가슴 한구석은 시커멓게 타들어 갑니다. 손바닥엔 식은땀이 배어 나옵니다. 그러다 옆에 있던 이 할매가 툭 던집니다. "아니, 그래도 의사 아들이면 매달 용돈도 두둑이 보내주겠지? 순자네 통장엔 돈이 넘치겠어." 할머니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말도 마, 내가 그만 보내라고 해도 자꾸 보내서 탈이라니까."
사실 할머니는 지난달에도 아들 생활비 보태주라고 쌈짓돈을 털어 보냈는데 말이오. 그때였습니다. 할머니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며 요란한 벨 소리를 내뿜었습니다. 노인정의 모든 시선이 할머니의 손끝으로 쏠렸습니다. 할머니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거봐, 우리 아들이지? 내가 바쁘다고 전화를 좀 천천히 하라고 해도 이 녀석이 말을 안 들어." 할머니는 보란 듯이 스피커폰을 켜고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들의 부드러운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고객님, 최신형 보험 상품 안내해 드립니다. 지금 가입하시면..."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노인정 공기를 차갑게 얼려버렸지요. 할머니의 손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다른 할매들의 눈빛이 동정에서 비웃음으로, 다시 차가운 무관심으로 변하는 그 짧은 순간. 할머니는 얼른 전화를 끊으며 억지웃음을 지었습니다. "아이구, 간호사가 전화를 잘못 걸었나 보네. 수술 일정 확인한다더니..." 할머니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노인정을 빠져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 노을은 왜 그리도 붉고 처량한지. 할머니는 주머니 속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차가운 기계 덩어리가 손바닥을 시리게 파고듭니다. '엄마, 잘 키웠다면서 왜 연락 안 돼?'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 내 청춘을 다 바쳤는데, 왜 나는 이 무거운 침묵을 견뎌야 하는가. 할머니는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들을 위해 팔아치웠던 서쪽 논두렁의 흙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것 같습니다. 자식 농사, 정말 잘 지은 게 맞는 것일까요? 할머니의 굽은 등 위로 쓸쓸한 가을바람만 스쳐 지나갑니다.
어허, 박 할머니의 가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연기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구랴. 자식 잘 키워놓으면 나중에 효도받으며 호강할 줄 알았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인생사의 고약한 장난이지요. 자, 그럼 이야기의 허리를 이어가 봅시다. 할머니의 그 지독한 기다림이 결국 아픔으로 터져 나오는 가슴 저린 순간입니다.
※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 떨리는 손으로 누른 아들의 번호와 거절된 신호.
그렇게 노인정에서 망신 아닌 망신을 당하고 돌아온 그날 밤이었소. 박 순자 할머니는 저녁도 거른 채 이부자리에 누웠는데, 평소 조금씩 결리던 허리가 그날따라 유독 심상치 않았던 게지.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나 죽네..." 방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는데, 허리 밑바닥에서부터 날카로운 송곳이 척추를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이 찌릿하게 올라오더란 말이오. 할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아랫목에서 벽으로 몸을 기댔소.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방 안의 정적이 어찌나 무거운지 숨이 턱턱 막혀왔지. 벽에 걸린 시계 추 소리가 '똑딱똑딱' 울릴 때마다 할머니의 미간은 더 깊게 패였소.
할머니는 평소 같으면 참았을 텐데, 이번엔 정말 몸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소. 손을 더듬거려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집어 들었지. 액정엔 여전히 아들놈의 환한 미소가 담긴 사진이 배경화면으로 깔려 있었소. 할머니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 목록을 열었지. '우리 아들'이라고 저장된 번호. 그걸 누르는 데 왜 그리도 용기가 필요한지,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리며 핸드폰 위를 한참이나 배회했소. "그래, 아들이 의사인데... 남의 병은 다 고치면서 지 에미 아픈 걸 모른 척하겠나. 전화해서 물어만 봐도 한결 낫겠지." 할머니는 애써 자신을 다독이며 큰 결심이라도 한 듯 통화 버튼을 꾹 눌렀소.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이 방 안의 고요를 깨뜨리며 울려 퍼졌소. 할머니는 핸드폰을 귀에 바짝 갖다 대고,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을 상상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지. '순자야, 나다. 나 허리가 너무 아파서 그러는데, 이거 어째야 쓰겄냐... 파스를 붙여도 소용이 없구나.' 할머니는 미리 연습하듯 입술을 달싹였소. 그런데 신호음이 네 번, 다섯 번을 넘어가는데도 저쪽에선 묵묵부답인 게요. 할머니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소. '바쁜가? 응급 수술이라도 들어갔나? 아니면 내가 전화를 너무 자주 해서 화가 났나?' 불안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
그때였소. 갑자기 신호음이 뚝 끊기더니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왔소.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함으로..." 할머니는 멍하니 핸드폰을 내려다보았소. 아들이 전화를 직접 거절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끊긴 것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그 무미건조한 기계 음성이 할머니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팠소. "바쁜 모양이다... 그래, 환자 고치느라 정신이 없겠지. 의사 아들 둔 죄다. 내가 참아야지." 할머니는 아픈 허리를 움켜쥐고 다시 한번 번호를 눌렀소. 이번에는 제발 받아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담아서 말이오. 혹시나 자다가 전화를 못 들었을까 싶어, 이번엔 스피커폰까지 크게 켜놓고 기다렸소.
하지만 두 번째 전화도 마찬가지였소. 신호가 가기도 전에 끊겨버리더니, 이번에는 아예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가 흘러나왔소. 할머니는 전원이 꺼진 핸드폰 액정에 비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소. 아들의 성공을 위해 논 팔고 밭 팔아 유학 보내고, 자신은 헌 옷 하나 제대로 못 걸치며 시장 바닥에서 콩나물 팔아 뒷바라지했던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지. "아들아, 엄마가 진짜 아파서 그런다... 전화 한 통만 받아주면 안 되겠니...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래." 할머니는 어둠 속에서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소. 허리의 통증보다 가슴의 통증이 더 커져서, 할머니는 차가운 방바닥을 긁으며 밤새도록 아들의 이름만 나지막이 불렀더란 말이오. 밖에서는 소쩍새가 구슬피 우는데, 방 안의 노인은 아들의 목소리 대신 차가운 침묵만 끌어안고 밤을 지새웠소.
※ 며느리의 차가운 한마디, "어머님도 이제 눈치 좀 챙기세요"라는 못 박힌 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할머니는 아침이 되자마자 다시 핸드폰을 쥐었소. 밤새 끙끙 앓아 목소리는 다 쉬어버렸고, 눈은 퉁퉁 부어 있었지. 허리는 여전히 펴지지 않아 옆으로 기어 다니듯 하며 부엌에서 물 한 모금을 마셨소. 이번에는 아들에게 직접 거는 게 두려워, 큰맘 먹고 서울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소. 며느리는 서울서 잘나가는 집안 딸이라며 결혼할 때부터 할머니를 은근히 어려워했었지. 그래도 손주 낳아준 고마운 사람이라 생각하며 늘 명절마다 씨앗이며 나물이며 정성껏 챙겨 보냈던 며느리였소. 신호가 몇 번 가더니, 이번엔 다행히 전화를 받았소.
"여보세요, 어머니? 이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며느리의 목소리는 세련됐지만, 어딘가 짜증이 섞인 듯 날카로웠소. 할머니는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를 가다듬었지. "응, 아가... 나다. 별일은 아니고, 내가 어제부터 허리가 너무 끊어질 듯이 아파서 그러는데... 아들한테 전화를 해도 안 받길래 너한테 한번 해봤다. 우리 아들 많이 바쁘니? 몸이 좀 안 좋은가 싶어 걱정도 되고..." 할머니는 혹시라도 며느리가 기분 나쁠까 봐 아주 조심스럽게,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소.
그런데 저쪽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소. "어머니, 그이가 어제 새벽까지 수술하고 이제 겨우 잠들었어요. 의사가 얼마나 고된 직업인지 어머니도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허리 아프신 건 동네 의원 가시면 되는데, 왜 굳이 서울까지 전화를 하셔서 그 사람 잠을 깨우려고 하세요? 그이가 어머니 전화 오는 거 볼 때마다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 아세요?" 며느리의 말은 비수처럼 날카롭게 날아와 할머니의 가슴에 꽂혔소. 할머니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지. "아니, 나는 그냥... 아들이 의사니까,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 물어보려고 했지... 내가 어디 갈 데가 있나. 우리 아들이 제일 잘 알 것 같아서..."
그러자 며느리가 기다렸다는 듯 쐐기를 박는 말을 내뱉었소. "어머니,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어머니가 매일같이 전화하시는 거, 저희한테는 정말 큰 스트레스예요. 그이도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들한테 시달리고 집에 오면 쉬고 싶어 한다고요. 어머니 아프실 때마다 이러시면 저희보고 어쩌라는 건가요? 저희가 의사도 아니고,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어머님도 이제 연세가 있으시니까 눈치 좀 챙겨주세요. 저희도 저희만의 생활이 있고, 아이들 교육 시키느라 정신없어요."
눈치 좀 챙기라는 그 한마디. 할머니는 순간 귀를 의심했소. 평생 자식 눈치 보며 살았고, 서울 가서 짐 될까 봐 명절에도 오지 말라면 알았다고 대답하며 혼자 떡국을 끓여 먹었던 할머니였소. 아들 공부하는 데 방해될까 봐 보고 싶어도 꾹 참고, 반찬 보내면 냄새난다고 할까 봐 김치 한 포기도 조심조심 비닐 세 겹씩 싸서 보냈던 세월이었는데... 이제 와서 눈치가 없다니요. 할머니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툭 떨어져 무릎 위를 적셨소.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려 했지만, 손등이 이미 며느리의 말에 데인 듯 화끈거렸소.
"그래... 내가 눈치가 없었구나. 미안하다, 아가. 내가 너무 아파서 정신이 잠시 나갔나 보다. 다시는 전화 안 할 테니 걱정 마라. 아들한테는 내가 전화했다고 말하지 마라. 잠 깨면 안 되니까..."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소. 핸드폰 너머로 며느리가 뭐라 더 하려는 소리가 들린 듯도 했지만, 할머니는 들을 힘조차 없었소. 방 안은 다시 적막에 잠겼고, 할머니는 자신의 손때가 묻어 번쩍거리는 핸드폰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소. 자식 농사 잘 지어 놓으면 노후가 비단길일 줄 알았는데, 그 비단길 끝엔 자식의 외면과 며느리의 모진 말만 기다리고 있었던 게요. 할머니는 벽에 기댄 채 멍하니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소. "잘 키웠다면서... 내가 정말 잘 키운 게 맞느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할머니의 통곡 섞인 혼잣말이 빈방에 메아리치며 흩어지고 있었소. 며느리가 사준 비싼 스웨터가 오늘따라 왜 이리도 까칠하고 무거운지, 할머니는 그 옷을 벗어 던질 기운조차 없었더란 말이오.
※ 못 배운 옆집 아들이 가져온 고구마 한 봉지, 대비되는 초라한 성공의 민낯.
며느리와의 통화를 끝내고 박 할머니는 한참을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소. 허리는 여전히 끊어질 듯 아파왔고, 가슴은 천 근이나 되는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아 숨을 쉴 때마다 헉헉거리는 소리가 났지. 방 안은 어느덧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데, 전등 스위치를 올릴 기운조차 없어 할머니는 그냥 어둠 속에 몸을 맡겼소. 바로 그때였소. "계셔요? 아주머니, 저 덕칠이에요! 불도 안 켜고 뭐 하셔요?" 하는 투박한 목소리와 함께 대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소.
옆집 사는 덕칠이 놈이었지. 마을에서 알아주는 말썽꾸러기에 공부라곤 담을 쌓아 중학교만 겨우 나오고 지금은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농사나 짓는, 박 할머니 눈에는 참 '못난 자식'의 표본 같은 사내였소. 덕칠이는 대답도 없는 방 문을 조심스레 열더니, 흙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쑥 들어왔소. "아이고, 아주머니! 왜 이러고 계셔요? 오늘 노인정에도 안 나오시고, 굴뚝에 연기도 안 나길래 무슨 일 있나 싶어 와봤잖아요." 덕칠이는 능청스럽게 불을 켜더니 할머니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 달려왔소.
"아니, 아주머니! 어디 편찮으셔요? 얼굴이 왜 이렇게 핼쑥해!" 덕칠이는 큰 손으로 할머니의 이마를 짚어보더니, 할머니가 허리를 부여잡고 있는 걸 보고는 금세 눈치를 챘소. "허리구나, 또 허리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요." 덕칠이는 마당으로 나가더니 자기가 가져온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왔소. 그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고구마가 가득 들어 있었지. "우리 아버지가 오늘 고구마 캤다고 아주머니 꼭 가져다드리라고 해서... 일단 이거 하나 드셔봐요. 속이 든든해야 병도 이기지."
덕칠이는 투박한 손으로 고구마 껍질을 정성스럽게 까서 할머니 입가에 가져다 대었소. "자, 아~ 하셔요. 이거 우리 밭에서 제일 맛있는 놈으로 골라온 거예요." 할머니는 그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었소. 달콤하고 따뜻한 온기가 입안 가득 퍼지는데, 이상하게도 목구멍이 꽉 막혀 잘 넘어가지가 않았소. 서울 사는 의사 아들은 전화 한 통에 '눈치 챙기라'는 타박을 하는데, 이 못 배운 옆집 놈은 할머니 굴뚝에 연기 안 나는 걸 보고 달려와 고구마를 먹여주고 있으니 말이오.
덕칠이는 할머니가 고구마를 먹는 동안 방바닥에 엎드려 할머니의 다리와 허리를 조심스럽게 주무르기 시작했소. "아이고, 아주머니 근육이 돌덩이 같네. 서울 형님한테 연락은 하셨어요? 의사니까 잘 알 거 아니에요. 처방이라도 좀 받아보시지." 덕칠이의 무심한 질문에 할머니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져 고구마 위로 번졌소. "연락... 했지. 바쁘단다. 아주 많이 바빠..." 할머니의 젖은 목소리에 덕칠이는 잠시 손을 멈췄다가, 이내 더 힘주어 허리를 주물렀소. "바쁘긴 뭐가 바빠요, 자기 어머니가 아프다는데! 형님도 참 무심하시네. 아주머니, 걱정 마요. 내일 아침 일찍 내가 우리 트럭으로 읍내 병원까지 모셔다드릴게. 내 아버지 약 타러 가는 길에 같이 가요." 덕칠이의 거친 손등 위로 튀어나온 핏줄이 할머니의 눈에는 그 어떤 의사의 청진기보다 더 든든하고 따뜻해 보였더란 말이오.
※ 아들의 성공을 위해 팔아치웠던 논밭과 젊은 날의 희생을 반추하며 흐르는 눈물.
덕칠이가 돌아가고 난 뒤, 할머니는 약 기운 때문인지 잠시 얕은 잠에 들었소. 꿈결 속에서 할머니는 30년 전 그 뜨거웠던 여름날로 돌아갔지. 아들이 서울 의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고 달려오던 날, 할머니는 기쁨에 겨워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잔치를 열었소.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엄청난 등록금과 생활비 앞에 할머니는 결단을 내려야 했지. 할아버지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우리 집의 목숨줄 같았던 서쪽 논 세 마지기를 팔기로 한 것이오.
"여보, 저 땅을 팔면 우리는 뭘 먹고 사나? 그건 우리 조상님들이 피땀 흘려 지킨 거 아니오."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할머니는 단호했소. "우리 아들 의사 만들면 저 땅 수십 마지기는 더 살 텐데 뭐가 걱정이에요! 내 자식 앞길 막을 순 없소. 내가 평생 시장에서 머리에 지고 날라서라도 갚을 테니 도장 찍읍시다." 할머니는 그날 복덕방 영감을 불러 도장을 찍었소. 땅을 넘겨주던 날, 할머니는 남몰래 논두렁에 앉아 흙을 한 줌 쥐고 엉엉 울었지. 조상님들께 죄송해서 울었고, 이제 정말 물러설 곳이 없다는 두려움에 울었소. 하지만 서울서 공부할 아들 생각에 금세 눈물을 닦고는 시장으로 향했소.
그때부터 할머니의 인생은 오로지 '돈'을 만드는 기계였소. 새벽 4시면 시장 바닥에 앉아 얼어붙은 손을 비벼가며 콩나물을 다듬었고, 여름이면 땡볕 아래서 남의 집 밭일을 대신 해주며 품삯을 모았소.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어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오. 오직 '의사 아들'이라는 훈장 하나만 바라보며, 할머니는 자신의 몸을 깎아 아들의 앞날을 닦았소. 아들이 고시 공부하느라 힘들다 하면 장터에서 제일 좋은 굴비를 사다 부쳤고, 자신은 식은밥에 물 말아 짠지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웠지.
"엄마, 나 이번에 합격했어!" 아들의 그 목소리를 듣던 날, 할머니는 시장 골목 한복판에서 춤을 췄소.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만 알았지. 하지만 아들이 서울 큰 병원에 취직하고, 부잣집 딸과 결혼하면서 할머니와 아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세워지기 시작했소. 할머니가 정성껏 담가 보낸 된장 단지는 냄새난다는 며느리의 핀잔에 쓰레기통으로 향했고, 아들은 어느덧 할머니의 희생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되었소.
잠에서 깬 할머니는 천장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소. 아들의 성공을 위해 팔아치웠던 그 논밭에는 이제 다른 사람의 곡식이 자라고 있고, 할머니의 몸에는 지울 수 없는 통증만 남았소. '내가 지은 자식 농사는 풍년인 줄 알았더니, 쭉정이만 가득한 흉작이었구나.' 할머니는 이제야 깨달았소. 아들의 하얀 가운은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와 맞바꾼 것이었음을, 하지만 그 가운은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기에는 너무도 차갑고 뻣뻣하다는 것을 말이오. 할머니는 벽에 기댄 채 멍하니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소. "잘 키웠다... 그래, 남부럽지 않게 키웠지. 그런데 정작 나를 키워줄 자식은 없었구나." 할머니의 독백이 어둠 속으로 잦아들었소.
※ 이제는 나를 위해 살리라, 핸드폰을 내려놓고 시작된 할머니의 홀로서기 (엔딩).
다음 날 아침, 덕칠이의 트럭 소리가 우렁차게 대문을 흔들었소. 할머니는 어제와는 달리 정갈하게 머리를 빗고, 아들이 사준 비싼 옷이 아니라 자기가 장날에 직접 산 편한 바지를 입고 대문을 나섰소. 읍내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 할머니는 덕칠이에게 부탁해 장터에 들렀소. 그리고는 평소 아들 용돈 부치느라 꿈도 못 꿨던 조기 두 마리와 맛깔스러운 젓갈을 샀지. "아주머니, 웬일이에요? 장을 다 보시고." 덕칠이의 물음에 할머니는 시원하게 웃었소. "응, 이제 나도 좀 맛있는 것 좀 먹고 살려고 그런다. 남들 줄 것 말고 내 입에 들어갈 것 말이야."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정성껏 밥을 지었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조기를 구워 상을 차렸지. 혼자 먹는 밥상이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소.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와 핸드폰을 집어 들었소. 그리고는 '우리 아들'이라고 저장된 이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지. 그러다 결심한 듯, 전화기 전원을 꾹 눌러 꺼버렸소. 검게 변한 액정 위로 할머니의 평온한 얼굴이 비쳤소.
할머니는 핸드폰을 화장대 깊숙한 서랍 속에 넣어버렸소. 이제 더 이상 벨 소리에 가슴 졸이지 않기로, 며느리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밤잠 설치지 않기로 했소. 아들의 성공이 내 자랑이 아니라, 오늘 내가 먹는 밥 한 끼, 내가 느끼는 이 바람 한 점이 내 인생의 진짜 주인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오.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마당 구석에 핀 민들레를 보았소. 누가 돌보지 않아도 제 힘으로 꼿꼿하게 피어난 그 꽃이 꼭 자기 모습 같았지.
오후가 되자 할머니는 다시 노인정으로 향했소. 하지만 이번에는 핸드폰을 들고 가지 않았소. 아들이 사준 옥색 스웨터 대신 편안한 면 옷을 입고 들어선 할머니를 보며 다른 할매들이 물었소. "어머, 순자네! 오늘은 아들 자랑 안 하나? 서울서 전화 안 왔어? 의사 아들이 용돈 많이 보냈을 텐데." 할머니는 그 질문에 허허 웃으며 대답했소. "전화기 고장 났어. 고칠 생각도 없네. 이제 자식 전화 기다리는 시간에 내 다리 한 번 더 주무르고, 친구들이랑 화투나 한 판 치는 게 남는 장사더라고. 내 자식 의사 만들면 뭐 해, 내 허리 한 번 만져주는 건 우리 덕칠이뿐인데."
박 순자 할머니는 그날 노인정에서 제일 크게 웃었소. 아들의 안부를 묻는 질문 대신, 오늘 점심 반찬이 뭐였는지, 내일은 어디로 구경 가고 싶은지 친구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을은 어제보다 훨씬 따뜻하고 포근하게 할머니의 등을 어루만졌소.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누구의 어머니'로만 살지 않기로 했소. 오직 '박 순자'라는 이름 석 자로, 남은 생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채워가기로 마음먹은 것이오. 자식 농사, 잘 지은 줄 알았는데 아니면 어떻습니까. 이제라도 내가 내 삶의 밭을 일구면 그만인 것을요. 할머니의 가벼워진 발걸음 소리가 동네 어귀에 경쾌하게 울려 퍼졌더란 말이오.
[유튜브 엔딩 멘트]
"여러분, 오늘 박 순자 할머니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자식 하나 잘되는 것만 바라보며 당신의 몸과 마음을 다 깎아 바쳤던 우리 시대 부모님들의 가슴 시린 뒷모습... 하지만 할머니는 결국 깨달으셨습니다. 자식의 성공이 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나를 가장 먼저 아끼고 돌봐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혹시 지금도 울리지 않는 전화를 바라보며 서운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내 자식은 다를 줄 알았는데' 하며 속앓이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오늘 하루만큼은 핸드폰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나를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지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자식에게 다 주지 못한 사랑, 이제는 나 자신에게 듬뿍 부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신 분들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께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이 이야기꾼의 마음을 응원해 주십시오. 저는 더 진솔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이름으로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