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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의 마지막 편지 - 단종에게 쓴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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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최대의 비극, 단종과 수양대군의 이야기가 마지막 편지 속에서 새롭게 밝혀진다. 죽음을 앞둔 세조가 조카 단종에게 남긴 비밀스러운 참회록. 그 편지 속에 담긴 뒤틀린 사랑과 한의 진실을 파헤친다.
##01 마지막 밤
조선 세조 13년, 깊어가는 밤. 창밖으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경복궁 수정전에는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세조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습니다. 그의 앞에는 흰 종이가 놓여있었고, 떨리는 손에는 붓이 들려있었습니다.
"폐하, 어의를 부르시겠습니까?"
시립하고 있던 내관의 물음에 세조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모두 물러가거라. 오늘 밤, 나는 홀로 있고 싶다."
신하들이 물러간 후, 세조는 천천히 붓을 종이에 가져다 댔습니다. 흐릿한 촛불 아래, 그의 주름진 얼굴에 깊은 고뇌가 서려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조카, 단종에게...'
첫 글자를 쓰는 순간, 세조의 손이 크게 떨렸습니다. 이제야, 그가 평생 쓰고 싶었던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것이 너무도 늦었구나. 네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이리 가슴 아플 줄이야...'
밤이 깊어갈수록 세조의 붓끝에서는 그의 한평생에 쌓인 슬픔과 후회가 흘러나왔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빛이 차갑구나. 마치 그날처럼... 내가 너의 왕좌를 빼앗던 그날처럼...'
불현듯 세조의 눈앞에 어린 단종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열두 살, 그 어린 나이에 왕위에서 물러나야 했던 조카의 모습.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더 큰 비극까지...
세조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그동안 왕으로서 결코 보일 수 없었던 눈물이, 이제야 비로소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나의 마지막이 가까워졌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 끝내 하지 못했던 참회를 이 편지에 담고 싶구나...'
밖에서는 밤바람이 거세게 불어왔고, 촛불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세조의 붓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가 스스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01 어린 단종
'네가 태어났던 그날이 떠오르는구나. 형인 문종의 얼굴에 가득했던 기쁨이 아직도 선하다...'
세조의 붓끝에서 옛 기억이 흘러나왔습니다. 스물여덟 해 전의 기억. 단종이 막 태어났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궁궐에 울려 퍼졌을 때, 나는 달려가 형을 껴안았지. 드디어 왕세자가 태어났다고, 조선의 미래가 밝아졌다고...'
세조의 시선이 멀어졌습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어린 단종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네가 첫걸음을 뗐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네 손을 잡아주었었지. 작은 손이 내 손가락을 꼭 붙잡던 그 순간, 나는 맹세했단다. 네가 훌륭한 군주가 되도록 돕겠노라고...'
촛불이 흔들리며 세조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드리웠습니다.
'형이 병석에 누웠을 때, 너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여섯 살의 나이로 세자가 되어 책을 읽고 글을 배우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네 곁에서 글을 가르치던 날들... 그때 네 눈빛에서 보았던 총명함과 순수함이 이렇게 가슴 아플 줄이야...'
세조의 붓이 잠시 멈추었습니다. 목이 메어왔기 때문입니다.
'형의 마지막 부탁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구나. "아우여, 내 아들을 부탁하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또 한 번 맹세했지. 네가 왕이 되어 훌륭한 군주로 자랄 때까지, 한 걸음 뒤에서 지켜주겠노라고...'
밖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촛불이 더욱 거세게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그 맹세는 어디로 갔던가... 네 열두 번째 생일을 앞두고 나는 이미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세조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붓글씨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네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잊히지 않는구나. "삼촌, 오늘은 어떤 책을 읽어주실 건가요?" 그렇게 순수하게 웃던 네 모습을... 나는 어찌 배신할 수 있었던가...'
##03 권력의 유혹
'그때부터였을까... 김종서와 황보인이 내게 속삭이기 시작하던 그 순간부터...'
세조의 붓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그의 기억은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은 순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어린 임금은 아직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왕실의 어른으로서 내가 나서야 한다고... 그들의 말은 달콤한 독이었구나.'
촛불이 깜빡이며 그의 얼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처음에는 나 역시 그들의 말을 거부했다. 형의 마지막 부탁을 저버릴 수 없다고, 어린 조카를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매일 밤 잠자리에서 그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지.'
세조는 잠시 붓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너무도 선명했기 때문입니다.
'신하들은 매일같이 내게 와서 말했다. 어린 임금님 곁에는 간신배들이 가득하다고... 조선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것이 내 야망을 위한 핑계임을 깨닫지 못했구나.'
먹물이 종이 위에 번졌습니다. 마치 그의 흐려진 양심처럼.
'점점 더 많은 대신들이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한명회는 매일같이 내게 왔지. "대군께서 계시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사옵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흔들어놓았다.'
세조의 손이 떨렸습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네가 앉아있는 왕좌가 점점 더 눈부시게 보이기 시작했고, 밤마다 꿈속에서 그 자리를 탐하는 내 모습을 보았지. 부끄럽구나... 그토록 부끄러운 욕망을...'
창밖에서 밤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어왔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네 얼굴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어졌다. 네가 "삼촌"하고 부를 때마다 가슴이 조여왔지. 하지만 이미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구나.'
##04 결단의 순간
'계유년 시월, 그날의 기억은 칼날처럼 선명하구나. 밤새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마지막 결단을 내렸지.'
세조의 붓끝이 떨렸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홍수처럼 밀려왔습니다.
'김종서와 황보인이 너를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 한다고... 그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핑계였음을 이제야 고백하노라.'
촛불이 깜빡이며 세조의 그림자가 벽에서 일그러졌습니다.
'그날 밤, 한명회가 찾아왔지.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했다. 수백 명의 군사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마지막으로 네 처소를 바라보았다. 열두 살 어린 임금, 나의 조카, 형의 아들...'
세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순간 형의 마지막 부탁이 귓가에 울렸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지워버렸지. 이것은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어린 임금 곁의 간신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내 죄를 덮으려 했구나.'
먹물이 종이 위에 떨어져 번졌습니다.
'그날 밤, 나는 창덕궁 후원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하늘이시여, 이것이 올바른 길이라면 저를 인도하소서... 하지만 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늘도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내 기도가 거짓이었음을...'
세조의 호흡이 거칠어졌습니다. 그날의 고통이 다시 가슴을 파고드는 듯했습니다.
'이제 고백하노라. 그것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야망, 나의 욕심이었을 뿐... 그날 밤 나는 형의 부탁도, 조카를 향한 사랑도, 모든 것을 저버렸구나.'
##05 정변의 순간
'그날 새벽, 창덕궁은 피로 물들었다. 나의 명령 한 마디에 칼날이 움직였고, 김종서와 황보인은 순식간에 쓰러졌지.'
세조의 붓끝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날의 참혹했던 광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너는 그들의 비명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궁궐을 울리던 칼부딪치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를... 그리고 네가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지금도 잊을 수 없구나.'
붓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 "삼촌, 어찌된 일입니까?"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차갑게 "어린 임금님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라고 말했을 뿐...'
세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궁궐 뜰에는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너의 충신들, 너를 지키려 했던 이들의 몸이... 그들의 피가 흰 눈 위로 번져갔지. 그때 네가 흘리던 눈물을, 나는 외면했다.'
밤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촛불을 흔들었습니다.
'나의 무리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의 함성 속에서 나는 참혹한 패배를 맛보고 있었지. 인간의 양심을 저버린 패배를... 형의 부탁을 저버린 패배를...'
세조의 손이 떨렸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너는 더 이상 예전의 너가 아니었다. 열두 살 소년의 눈빛에서 순수함이 사라졌지.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깊은 상처와 배신감뿐... 나는 그것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구나.'
먹물이 종이 위에 번졌습니다. 마치 그날 궁궐을 적셨던 피처럼.
'이제야 고백한다. 그날의 정변은 결코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야망을 위해 너의 순수를 짓밟은 죄악이었을 뿐... 그리고 그 죄의 대가는, 평생 나를 따라다녔구나.'
##06 왕좌에 오르다
'그날, 내가 왕좌에 오르던 날... 궁궐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화려한 의식 속에서 나는 네 모습을 찾고 있었지.'
세조의 붓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즉위식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문무백관이 나에게 절을 올리고 "만세"를 외칠 때, 나는 문득 네가 이 자리에 앉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왕관이 무겁게 느껴졌지...'
세조는 잠시 붓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의식이 끝나고 대전으로 돌아와 홀로 앉았을 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용포를 입은 새로운 임금의 모습... 하지만 그 화려한 옷 아래로 형의 마지막 부탁을 저버린 죄인의 모습이 비쳤지.'
밤바람에 촛불이 흔들렸습니다.
'대신들은 "성군의 시대가 열렸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그래서 더욱 앞만 보고 달려야 했나 보다.'
세조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습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형이 나타나 물었지. "아우여, 그대는 과연 성군이 될 수 있겠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눈물만 흘렀을 뿐...'
먹물이 종이 위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며,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네 왕좌를 빼앗은 죄를 덮기 위한 변명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하노라.'
##07 노산군으로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네가 노산군으로 강봉되던 날... 그날도 이렇게 차가운 바람이 불었었지.'
세조의 손이 떨렸습니다. 그의 기억 속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서서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 열세 살의 어린 네가 보여준 그 의연함이, 오히려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붓끝에서 먹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군으로 강등되는 순간에도, 네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네 작은 주먹이 얼마나 세게 떨리고 있었는지...'
세조는 잠시 붓을 놓았습니다. 가슴 한켠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의식이 끝나고 너는 내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삼촌... 아니, 전하..." 그 한마디에 담긴 슬픔이 칼이 되어 내 가슴을 찔렀구나.'
밤이 더욱 깊어갔습니다. 창밖에서는 밤새가 울었습니다.
'대신들은 "이제 나라가 안정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거짓이었다. 나라는 안정되었을지 모르나, 내 마음속의 불안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으니...'
세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날 이후 너는 더 이상 내 조카가 아닌 노산군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네가 아닌 내가 변한 것이었지. 네 순수한 마음은 그대로였으나, 나는 이미 욕심에 물든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08 영월로 가는 길
'영월로 떠나던 날, 하늘도 울고 있었다. 음침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 너는 말 한 필에 의지한 채 궁을 떠났지.'
세조의 붓끝이 떨렸습니다. 그날의 비참한 광경이 눈앞에 생생했습니다.
'네가 타고 가는 말은 한때 어린 임금의 용마였다. 하지만 그날, 그 말은 유배 가는 죄인을 싣고 있었다. 네가 그토록 사랑하던 말이, 이제는 너를 멀리 실어나르는 운명이 되다니...'
먹물이 종이 위로 번졌습니다.
'떠나기 전, 너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궁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차마 네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구나.'
세조는 잠시 붓을 멈추었습니다. 목이 메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월로 가는 길은 험했다. 좁은 산길을 따라 흙탕물이 흐르고, 바위틈으로 찬바람이 불어왔지. 열세 살 어린아이가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던가.'
밤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네가 탄 말이 멀어질 때마다, 내 가슴 한켠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나는 임금의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지. 그저 차갑게 너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
세조의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영월 땅은 멀고도 험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너는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제야 이 불효막심한 삼촌이 네 마음을 헤아려본다.'
촛불이 깜빡이며 세조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드리웠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다. 영월로 가는 길에서 네가 뒤돌아보던 그 눈빛... 그 눈빛에 담긴 원망과 슬픔이 나를 잠 못 이루게 했구나.'
##09 비극의 끝
'그날... 영월에서 전령이 왔다. "노산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한 마디에 나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세조의 손이 크게 떨렸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열여섯... 겨우 열여섯의 나이였다. 네가 떠난 후 삼 년, 그 짧은 시간 동안 너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밤마다 혼자 울었을 네 모습을 생각하면...'
붓이 종이 위에서 멈추었습니다. 세조의 어깨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사약을 내리라는 명령... 그것은 내가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너는 그들이 오기 전에 스스로 떠나기로 했구나. 마지막 순간까지도 얼마나 고귀했던가...'
밤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촛불을 흔들었습니다.
'전령이 네가 남긴 유서를 가져왔다. "삼촌께 원망은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편히 쉬고 싶을 뿐..." 그 한 줄이 천 개의 칼이 되어 내 가슴을 찔렀구나.'
세조는 고개를 들어 어둠 속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그곳에 단종이 서 있기라도 한 듯이.
'그날 이후 나는 진정한 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너무나 무거웠다. 네 죽음의 무게를 더한 왕관은 날이 갈수록 더욱 무거워만 졌으니...'
먹물이 번져 글자가 흐려졌습니다.
'밤마다 꿈에서 너를 본다. 때로는 어린 시절 내 무릎에 앉아 책을 읽던 모습으로, 때로는 영월로 떠나던 날의 모습으로... 하지만 가장 괴로운 것은 네가 웃으며 "삼촌"하고 부를 때이다.'
세조의 전신이 떨렸습니다.
'나는 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너의 생명을, 너의 순수를, 그리고 나의 양심을 잃었구나. 이것이 과연 바른길이었을까....'
##10 세월의 흐름
'그 후로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훌륭한 왕이 되려 노력했다. 새로운 법을 만들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폈으며,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세조의 붓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대신들은 나를 성군이라 불렀다. 백성들은 나라가 부강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 칭찬이 들려올 때마다, 네 모습이 떠올랐지. 이 모든 영광이 네 죽음 위에 세워진 것임을...'
촛불이 깜빡였습니다.
'궁을 거닐 때면 네가 뛰어다니던 모습이 보였다. 편전에서 정무를 볼 때면 어린 네가 왕좌에 앉아있던 모습이 어른거렸다. 밤이면 네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세조의 손이 떨렸습니다.
'내 자식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네가 살았다면 지금쯤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너도 자식을 두고 함께 키우는 기쁨을 누렸을까...'
먹물이 종이 위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왕이 된 후, 나는 많은 공적을 쌓았다. 하지만 그 어떤 공적도 네 생명만큼 무겁지 않았다. 밤마다 네 영혼이 내 곁을 맴돌았고, 날이 갈수록 그 무게는 더해만 갔다.'
밖에서 밤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어느 날은 영월로 가보려 했다. 네가 마지막 숨을 거둔 그곳에 가서 용서를 빌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가지 못했다. 그곳에 가면 네가 보일 것만 같아... 네 마지막 눈빛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세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제 나도 늙었구나. 하지만 너는 영원히 열여섯 살로 남았다. 내 가슴 속에서 영원히 어린 조카로... 그리고 영원한 죄책감으로...'
##11 마지막 고백
'이제 나의 마지막이 가까워졌다.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돌아본다. 그리고 마침내 이 편지를 쓰고 있구나.'
세조의 붓끝이 떨렸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고백을 할 시간이었습니다.
'네가 보고 싶구나, 단종아... 내 조카여... 이제야 이렇게 부를 수 있구나. 그동안 나는 "노산군"이라 불렀지. 그렇게라도 해야 내 죄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창밖에서 달빛이 희미하게 비쳐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를 성군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불효막심한 삼촌이었는지, 얼마나 부족한 임금이었는지를... 네 죽음 앞에서 그 어떤 공적도 빛을 잃는다.'
세조는 잠시 붓을 멈추고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꿈에서 네 어머니를 만났다. 현덕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 그 눈빛이 천 마디 질책보다 더 아팠구나.'
먹물이 종이 위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제야 고백한다. 내가 잘못했다. 욕심에 눈이 멀어 너를 해쳤다. 형의 부탁을 저버렸고, 너의 순수한 믿음을 배신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죄이자 부끄러움이다.'
밤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촛불이 꺼질 듯 흔들렸습니다.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순간, 네 이름을 부르며 참회하고 싶구나. 단종아... 내 조카여... 그리고 진정한 임금이여...'
세조의 온몸이 떨렸습니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진실이 흘러나왔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 헛되었구나. 권력도, 영광도... 오직 네 미소만이 진실이었다. 이제야 그것을 깨닫는구나.'
##12 편지의 끝
'이제 편지를 마무리할 시간이구나. 창밖의 달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새벽이 가까워오는 것이 느껴진다.'
세조의 붓이 마지막 글자를 써내려갔습니다.
'저승에서 만나면, 그때는 더 이상 임금도, 신하도 아닌 삼촌과 조카로 만나고 싶구나. 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참회를 하고 싶다.'
촛불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네가 좋아하던 책들을 다시 읽어주고 싶구나. 예전처럼 너를 무릎에 앉혀놓고... 그때 못다 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구나. 그리고...'
세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마지막 말을 전하고 싶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 아이같이 여기던 조카를 이렇게 만든 것이... 이제야 이 불효막심한 삼촌이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밤바람이 불어와 촛불이 꺼졌습니다. 방 안은 달빛만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부디 저승에서는 평안하기를... 그리고 언젠가 나를 용서할 수 있기를...'
마지막 글자를 쓰자 세조의 붓이 떨어졌습니다. 달빛 아래 마른 먹물이 반짝였습니다.
이 편지는 결코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진심은 오백 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권력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한 사람의 마지막 참회로...
달빛은 여전히 창덕궁을 비추고 있습니다. 마치 그날 밤, 편지를 쓰던 세조와 영월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단종을 지켜보았던 것처럼...
역사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삼촌과 조카, 왕위와 권력, 그리고 끝내 용서를 구했던 마지막 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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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양대군의 마지막 편지 - 단종에게 쓴 참회록'이었습니다.
권력과 야망이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오늘 이야기를 통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광해군의 마지막 일기 - 폐위된 왕의 독백'을 준비했습니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에서 생을 마감한 광해군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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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조선의 숨은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