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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환국 정치 — 하룻밤 사이에 정권이 세 번 뒤집히다
숙종은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으로 서인과 남인을 번갈아 숙청했다. 어젯밤의 영의정이 오늘 아침 사형수가 되는 공포 정치. 숙종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여자 문제와 연결시켜 권력을 독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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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어제는 내게 충성을 맹세하던 영의정이, 오늘은 내 칼을 받을 사형수가 되는구나." 절대 군주 숙종의 서늘한 미소 뒤엔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게임이 숨어 있었습니다. 여인들의 치맛바람으로 포장된, 조선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도 완벽했던 왕권 강화의 진실. 하룻밤 새 정권이 세 번이나 뒤집힌 그 숨막히는 궁중 야사의 막이 오릅니다.
※ 1: 허적의 천막 사건과 남인의 몰락
1680년, 숙종 6년의 봄. 창덕궁 위로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이 마침내 굵은 빗방울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처마 끝을 때리는 빗소리가 제법 요란해질 무렵,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 국왕 숙종은 편전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그 서늘한 풍경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릿발 같은 빗바람이 붉은 곤룡포 자락을 거칠게 흔들었지만, 그의 눈빛은 폭풍 전야의 깊은 바다처럼 고요하고도 짐짓 서늘했다.
'결국 이리 비가 쏟아지는구나. 오늘 영의정 허적의 집에서 그의 조부를 위한 큰 잔치가 열린다 하였지. 조정의 대소신료가 모두 모이는 자리라 들었는데, 이리 비가 오면 낭패일 터.'
숙종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밖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내관을 불렀다.
"밖에 뉘 있느냐."
"예, 전하. 부르시었사옵니까."
"비가 제법 굵어지는구나. 영의정의 집에서 오늘 큰 연회가 열리는데, 필시 비를 피할 길이 없어 잔치를 망치고 있을 터이다. 내탕고에 있는 유악을 내어 영의정의 집으로 보내주어라. 과인의 작은 성의라 전하고."
유악(기름을 먹인 쇠가죽으로 만든 방수 천막)은 궁중에서 임금만이 사용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조정의 영수인 영의정에 대한 각별한 총애를 보여주기 위한 하사품으로는 그만이었다. 그러나 어명을 받든 내관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오나… 유악은 이미 영의정 대감의 사가로 나가 있사옵니다."
숙종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무릎 위에 놓인 부채를 쥔 손등에 시퍼런 핏대가 섰다.
"무엇이라? 내가 하락한 적이 없거늘, 어찌 궁궐 창고에 있어야 할 과인의 물건이 사가에 있단 말이냐."
"그… 그것이, 영의정 대감께서 비가 올 것을 염려하시어, 전하께 아뢰기도 전에 미리 사람을 보내어 유악을 가져갔다 하옵니다. 워낙 권세가 드높으신 대감의 벼락같은 명이시라, 담당 관리가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그만 내어주었다 하옵니다…."
내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왕의 물건을 왕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가져가다니, 이는 단순한 월권행위를 넘어 명백한 능멸이자 불경이었다. 찰나의 정적이 흐른 뒤, 숙종의 입가에 비릿하고도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서늘한 살기가 텅 빈 편전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허적… 남인의 영수라 불리며 조정을 장악하더니, 이제는 과인의 물건마저 제집 앞마당의 물건인 양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구나. 선왕 때부터 이어져 온 예송논쟁으로 권력을 쥐더니,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게지. 내가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왕으로 보였던 탓이냐. 너희 남인들이 과연 이 조선의 진짜 주인이란 말이냐!'
숙종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좌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그의 머릿속은 차갑게 얼어붙어 치밀한 사냥의 계산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동안 젊은 왕은 남인들의 비대해진 권력과 오만함을 조용히 지켜보며 숨죽여 칼을 갈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칼을 뽑아들 완벽한 명분이 제 발로 굴러들어온 것이다.
"당장 병조판서와 훈련대장을 은밀히 궐 안으로 들라 하라."
숙종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거역할 수 없는 제왕의 묵직한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도성을 지키는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의 모든 군사 통수권을 즉시 교체할 것이다. 남인 출신의 장수들은 그 즉시 직위를 해제하고, 서인 출신의 장수들을 그 자리에 앉혀라. 털끝만 한 반항이라도 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목을 쳐도 좋다. 어명이다."
같은 시각, 허적의 사가에서는 임금의 유악 아래 화려하기 그지없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기생들의 흐드러진 노랫가락과 가야금 소리가 거친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고, 남인 대신들은 연거푸 술잔을 부딪치며 자신들의 굳건한 권력과 영원할 것만 같은 부귀영화를 축하하고 있었다. 그들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엔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오만한 웃음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무장한 금군들이 횃불을 들고 빗속을 뚫으며 들이닥쳤다.
"어명이다! 역모의 죄를 물어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모조리 포박하라!"
"이,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냐! 나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이다! 감히 뉘 안전이라고 칼을 들이미느냐! 전하께서 나를 이리 대하실 리가 없으시다!"
허적은 상을 뒤엎으며 발버둥 치며 소리쳤으나, 이미 금군들의 시퍼런 칼날이 그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겨누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다. 숙종은 단 한 번의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움직임으로 남인의 군사권을 박탈하고, 그들의 숨통을 정확히 끊어버렸다. 어제까지 조정을 호령하며 왕을 능멸하던 남인의 영수들은 하루아침에 반역죄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먼 남쪽 끝으로 귀양길에 올라야 했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끝난 아침, 조정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남인에서 서인으로 넘어갔다. 이것이 바로 조선을 뒤흔든 '경신환국'의 통쾌하고도 잔혹한 서막이었다. 어좌에 앉아 새롭게 채워진 조정 대신들을 내려다보며 숙종은 속으로 차갑게 읊조렸다.
'권력이란 이토록 허망하고도 달콤한 것이로구나. 내 옥좌를 위협하고 능멸하는 자는, 그 누구든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젊은 호랑이는 마침내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발톱을 세상에 드러냈고, 조선의 조정은 절대 군주의 변덕 한 번에 목숨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끔찍한 공포정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 2: 서인들의 경계와 숙종의 흔들림
경신환국이라는 거대한 피바람을 통해 남인을 잔혹하게 몰아내고 조정을 완전히 장악한 서인들은 날이 갈수록 기고만장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젊은 왕을 위기에서 구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웠다는 착각에 빠져, 학문의 도리와 군주의 덕목을 운운하며 사사건건 숙종의 국정 운영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피가 끓는 스무 살의 숙종에게 늙은 서인 대신들의 끝없는 잔소리와 훈계는 숨이 막힐 듯한 질곡이자 모멸감이었다.
'이 늙은구렁이 같은 놈들이, 내 손을 빌려 남인을 몰아내 주었더니 이제는 지놈들이 과인의 상전 노릇을 하려 드는구나. 군약신강(君弱臣强)이라 하였던가. 과인이 저들의 헛기침 소리에 맞춰 춤이나 추는 꼭두각시 노릇을 할 줄 알더냐.'
어느 깊은 밤, 끓어오르는 화와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숙종은 내관 하나만을 멀찍이 떼어놓은 채 궁궐 후원을 홀로 거닐고 있었다. 하얀 달빛이 맑은 연못 위로 부서져 내리는 고요하고도 처연한 밤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가녀리면서도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청아한 가야금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들려왔다. 발걸음을 멈춘 숙종은 보이지 않는 실에 끌려가듯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그곳, 후원의 으슥한 정자 아래에는 한 떨기 붉은 모란꽃처럼 고혹적인 자태를 지닌 젊은 궁녀가 앉아 있었다. 교교한 달빛을 머금어 투명하게 빛나는 옥빛 피부에, 칠흑 같이 검고 윤기 나는 머릿결이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고 있었다. 훗날 조선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들 치명적인 여인, 장옥정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궐내에서 이리 밤늦도록 악기를 타는 것은 금기인 것을 모르느냐."
숙종의 낮고 위엄 있는 물음에, 옥정은 사시나무 떨듯 황급히 일어나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전하, 죽어 마땅하옵니다. 천비의 몸으로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감히 금기를 어기어 악기를 탔사옵니다. 소인은… 장씨 옥정이라 하옵니다."
숙종은 엎드린 옥정의 가녀린 어깨와 갸름한 턱선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가슴 속에서 기이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중전인 인현왕후 민씨는 뼈대 있는 가문 출신으로 어질고 덕이 많았으나, 지나치게 꼿꼿하고 법도와 예법만을 따져 젊은 왕을 늘 피곤하고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달빛 아래 엎드린 이 여인은 전혀 달랐다. 사내의 깊은 본능을 뒤흔드는 뇌쇄적인 매력과,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 같은 묘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고개를 들라. 참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로구나."
그날 밤 이후, 숙종은 마치 홀린 사람처럼 옥정의 처소를 매일같이 찾았다. 정사를 돌보는 시간 외에는 오직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장옥정은 단순히 미모만 빼어난 궁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역관의 딸로 태어나 궁에 들어온 후, 경신환국으로 몰락하여 숨죽이고 있던 남인 세력의 은밀하고도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었다. 남인들은 서인에게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 옥정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험한 미끼를 왕의 침소에 던져두었던 것이다.
숙종은 영민한 군주였다. 그녀가 남인의 끈을 꽉 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 아슬아슬한 상황을 즐기기로 작정했다.
'서인 놈들이 저토록 방자하게 굴며 과인을 가르치려 드니, 옥정이를 앞세워 저들의 콧대를 꺾어놓아야겠다. 내침 김에 남인들의 숨통도 조금 틔워주어 서로 물어뜯게 만들어야지.'
천한 궁녀가 왕의 총애를 독차지하자, 서인들은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혔다. 중전 민씨가 아직 젊어 후사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출신이 미천한 데다 남인의 배경까지 가진 여인이 왕의 마음을 훔친 것은 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중대한 위협이라 여겼다. 대사헌을 비롯한 서인의 늙은 대신들이 떼를 지어 편전 앞에 엎드려 목청이 찢어져라 곡을 했다.
"전하! 저 요망한 장씨는 남인의 끄나풀이옵니다! 뼈대 있는 가문의 중전 마마를 홀로 내버려 두시고, 어찌 천한 핏줄을 가까이하시어 궐내의 법도를 어지럽히시나이까! 당장 장씨를 궐 밖으로 내치시어 종묘사직을 보존하시옵소서!"
숙종은 용상에 삐딱하게 기대앉아, 마당에 엎드려 통곡하는 늙은 대신들을 조소 어린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과인이 밤에 누구를 품고 누구를 어여삐 여기든, 그것이 어찌 조정 대신들이 감놔라 배놔라 할 일이란 말이오? 명색이 이 나라의 지존이거늘, 과인의 사생활과 침실 일마저 경들의 허락을 받고 허가를 받아야 한단 말이오!"
"전하! 이는 한낱 사내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오라, 나라의 기강과 왕실의 안위가 달린 중차대한 일이옵니다! 제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시끄럽소! 다들 당장 물러가시오! 감히 한 번만 더 장씨의 일을 입에 올리며 과인을 가르치려 드는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할 것이오!"
숙종이 호통을 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편전의 묵직한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대궐 마당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숙종은 곧장 발걸음을 돌려 옥정의 처소로 향했다. 옥정은 밖의 소란을 들은 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처연한 얼굴로 숙종의 품에 와락 안겼다.
"전하… 소인과 같은 천한 것 때문에 조정이 이리 시끄러우니, 차라리 소인을 베어 죽여주시옵소서. 소인은 궐 밖으로 쫓겨나가 평생토록 전하만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살겠사옵니다."
"울지 마라, 옥정아. 네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죄가 있다면 과인을 허수아비로 알고 제멋대로 조정을 쥐락펴락하려는 저 오만한 서인 늙은이들에게 있을 뿐이다. 내 반드시 너를 저들의 칼날에서 지켜줄 것이며, 네게 이 조선에서 가장 높은 여인의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숙종은 옥정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 안으며,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야수와도 같은 눈빛을 했다. 옥정은 그저 가엾은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숙종이 서인들의 숨통을 조이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기꺼이 꺼내 든, 세상에서 가장 날카롭고 매혹적인 비수였다. 여인의 화려한 치맛자락 뒤편에서, 조선의 붉은 피가 낭자할 두 번째 숙청이 서서히 잉태되고 있었다.
※ 3: 원자 정호 사태와 송시열의 사약
1688년, 적막하던 궐내에 마침내 경사스러운 아기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숙종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첫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 귀한 아들을 낳은 이는 정비인 인현왕후 민씨가 아니라, 숙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장씨 옥정이었다. 숙종의 기쁨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는 체통도 잊은 채 핏덩이 아들을 품에 안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감격의 눈물마저 보였다.
"보았느냐! 내 핏줄이다! 드디어 과인에게도 아들이 생겼다!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조선의 굳건한 기둥이자 나의 후계자이다!"
그러나 숙종의 벅찬 기쁨 이면에는, 뱀처럼 차갑고도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아이를 즉시 원자(元子)로 책봉해야겠다. 장씨가 낳은 아들을 다음 왕위를 이을 공식적인 계승자로 확정 지어 버리면, 서인 놈들도 더 이상 장씨를 천출이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과인을 억누르려는 서인들의 기세를 완전히 짓밟아 버려야겠다.'
갓 태어난 지 백일도 채 되지 않은 후궁의 핏덩이를 대통을 이을 원자로 정한다는 것은, 조선 건국 이래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격이자 충격이었다. 게다가 중전 민씨가 아직 이십 대의 젊은 나이로, 훗날 적통 대군을 낳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는 상황이었다. 숙종의 폭탄과도 같은 원자 책봉 선언에 조정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혀 대혼란에 빠졌다.
서인의 거두이자, 감히 왕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당대 최고의 유학자 송시열이 즉각 붓을 들어 맹렬한 상소를 올렸다. 그는 서인들에게 살아있는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전하! 아직 중전 마마께서 춘추가 한창이시어 훗날 적자를 보실 날이 창창하옵니다. 하오나 어찌하여 천한 후궁의 몸에서 난 서자를 이리도 서둘러 종묘사직을 이을 원자로 정하려 하시나이까! 이는 송나라 철종의 예에 비추어 보아도 사리에 맞지 않으며, 종법의 엄격한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가의 근본을 뿌리째 흔드는 망국적인 처사이옵니다! 부디 어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송시열의 상소가 신호탄이 되어, 수백 명의 서인 유생들과 조정 대신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그들은 대궐 앞마당에 멍석을 깔고 엎드려 피를 토하듯 곡을 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외침이 성난 파도처럼 궐장을 넘어 밀려왔다. 그러나 숙종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옥좌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벼락같이 소리쳤다.
"네 이놈들! 과인이 내 피를 이어받은 내 핏줄을 내 후계자로 정하겠다는데, 어찌하여 신하 된 도리로서 이리도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반대하고 나선단 말이냐! 송시열, 그 늙은이가 감히 왕의 결정에 토를 달고 옛 제왕의 고사를 들먹이며 과인을 능멸하려 들어? 이는 필시 과인을 허수아비로 업신여기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를 왕으로 세우려 역모를 꾀하려는 수작이 틀림없다!"
숙종은 폭발하는 분노를 감추지 않고 궐 안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통제 불능의 화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되고 기획된 서늘한 분노였다. 숙종은 원자 책봉을 미끼로 던져, 눈엣가시 같던 서인들을 이번 기회에 완벽하게 도륙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당장 방자한 송시열의 벼슬을 모조리 삭탈하고 험한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라! 그리고 감히 왕의 뜻을 거스르고 반대 상소에 이름을 올린 서인 놈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하옥하고 혹독하게 국문하라!"
잔혹한 피바람이 다시 한 번 조선의 조정을 매섭게 휩쓸었다. 1689년, 붉은 피로 얼룩진 '기사환국'이었다. 숙종의 명은 자비가 없었다. 십 년 가까이 조정을 장악했던 서인 정권은 하루아침에 처참하게 붕괴되었고, 의금부의 감옥은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서인 대신들의 처절한 비명으로 밤낮없이 가득 찼다. 급기야 숙종은 제주도로 유배 가던 83세의 노구,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는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조선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며 하늘을 찌르던 권세를 누렸던 송시열마저 정읍 땅에서 사약을 들이켜고 검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서인 세력은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그 피비린내 나는 빈자리는 장씨를 은밀히 후원하던 남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탐욕스럽게 차지했다. 십 년 전 경신환국으로 숨죽이고 있던 남인들이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여 권력의 정점에 선 것이다.
그러나 숙종이 휘두르는 피의 칼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내친김에 후궁 장씨를 가로막는 마지막 거대한 벽마저 무너뜨리기로 결심했다.
"투기가 심하고 왕실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후궁을 모함하여 궐내에 파란을 일으킨 중전 민씨를 폐서인하여 당장 궐 밖으로 내치노라! 그리고 원자를 낳아 왕실의 크나큰 공을 세운 숙원 장씨를 이 조선의 새로운 왕비로 책봉할 것이다!"
어둡고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 굳게 닫혔던 궁궐의 돈화문이 무겁게 열렸다. 화려한 적의를 벗고 하얀 소복 차림으로 쫓겨난 폐비 민씨가 허름한 가마에 올랐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비통한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녀는 왕을 향한 원망의 말 한마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채 쓸쓸히 궁궐을 떠나야 했다.
반면, 궐 안 깊숙한 교태전에서는 붉은 적의를 걸치고 화려하고 무거운 가채를 올린 장옥정이 새로운 왕비로 등극하며 요염하고도 승리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결국 내가 승리했다. 가장 천하고 낮은 곳에서 시작해, 마침내 조선의 국모 자리에 올랐어. 나를 벌레 보듯 하던 서인 놈들은 모두 피를 흘리며 죽어 나갔지. 이제 이 나라는 온전히 내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축하연이 끝난 밤, 교태전 밖 뜰에 홀로 서서 밤하늘의 차가운 달을 올려다보는 숙종의 얼굴에는 승리감도, 새 중전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체스판의 말들을 완벽하게 움직여 적을 무자비하게 섬멸한 절대 군주의 차갑고도 고독한 그림자만이 짙게 깔려 있을 뿐이었다. 숙종의 환국 정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완벽한 왕권을 향한 그의 피 묻은 질주는 이제 막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 4: 장희빈의 횡포와 숙종의 환멸
기사환국의 붉은 피바람을 딛고 마침내 조선의 국모 자리에 오른 장씨의 권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한낱 미천한 궁녀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까지 꿰찬 그녀의 처소인 교태전 앞마당은, 매일같이 남인 당상관들이 줄을 서서 바치는 진귀한 보물과 뇌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조선 팔도에서 올라오는 최고급 비단과 산호, 진주가 장씨의 발치에 산처럼 쌓였다. 천민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자신의 드높아진 위상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장씨는 역대 조선의 그 어느 왕비보다도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며 교만을 떨었다.
그녀의 든든한 배경이자 친오라비인 장희재는 훈련대장과 포도대장 등 군사 치안의 요직을 독차지하며 도성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흔들었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뇌물을 긁어모았으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서슴없이 옥살이를 시키거나 매질을 가했다. 남인들은 장씨 남매의 화려한 치맛자락과 바짓가랑이를 든든한 동아줄처럼 부여잡고, 이제 조선이 영원히 자신들의 세상이 된 양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내 발아래 엎드려 목숨과 벼슬을 구걸하는 저 명문거족의 양반 놈들을 보라.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한낱 궁녀였던 나를 벌레 보듯 무시하며 궐 밖으로 내치려 안달하던 자들이, 이제는 내게 잘 보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권력이 주는 짜릿하고도 달콤한 맛이로구나. 이제 전하의 마음도, 이 넓은 조선 팔도도 온전히 내 것이다. 감히 내 앞을 막아서는 자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교태전의 화려한 단청 아래서 거울을 보며 요염하게 미소 짓는 장씨는 자신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하지만 장씨의 가장 치명적이고도 어리석은 오산은, 숙종이라는 사내가 결코 한 여인의 치맛폭에 영원히 얽매일 만한 호락호락한 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데 있었다.
처음에는 서인들의 기를 꺾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장씨와 남인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힘을 실어주었던 숙종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도를 넘는 그들의 횡포와 끝없는 탐욕에 서서히 넌더리가 나기 시작했다. 숙종의 눈에 비친 남인들은 서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구더기 같은 존재들이었다.
어느 깊고 적막한 밤, 숙종은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한 마음에 내관 하나만을 멀찍이 대동한 채 궁궐 후원을 정처 없이 거닐고 있었다. 화려한 불빛과 기생들의 교태 섞인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새어 나오는 남인 대신들의 처소 쪽을 바라보던 숙종의 눈매가 매섭게 일그러졌다.
'저 탐욕스러운 놈들이, 내가 남인을 몰아내고 서인 놈들의 기를 꺾어 놓으라 내어준 권력이거늘, 이제는 지놈들이 안하무인으로 상전 노릇을 하려 드는구나. 썩은 살을 도려내었더니 그 자리에 더 지독한 독버섯이 자라난 꼴이다. 옥정이 또한 중전의 자리에 오르더니 옛날의 그 가련하고 애틋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투기가 날로 심해지고 교만해져 국모의 자애로운 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구나. 내 어찌 저런 천박하고 오만한 무리에게 이 귀한 나라를 맡겼단 말인가.'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돌려 걷던 숙종의 눈에, 궐내에서도 가장 외지고 후미진 전각 하나가 들어왔다. 그곳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천한 무수리들이 기거하는 비루하고 남루한 처소였다. 그런데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방 안에서, 희미하고도 가냘픈 촛불 하나가 창호지를 뚫고 새어 나오고 있었다.
기이한 호기심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다가간 숙종은, 뚫어진 문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고는 그 자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남루하고 해진 무수리 복장을 한 젊은 여인이, 다 찌그러진 작은 나무상 위에 정화수 한 그릇을 정성스레 떠놓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훗날 조선의 21대 왕 영조의 어머니가 되는 숙빈 최씨였다.
"천지신명께 비옵나이다. 부디 억울하게 폐비되시어 궐 밖으로 쫓겨나신 중전 마마의 옥체가 강건하시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비바람 치는 사가에서 홀로 눈물짓고 계실 마마께옵서 하루속히 건강한 모습으로 궐로 돌아오시어, 어지러운 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억울한 백성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소인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중전 마마의 안위를 지켜주시옵소서."
무수리 최씨의 파리한 뺨을 타고 흐르는 맑고 뜨거운 눈물을 본 순간, 숙종의 가슴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거세게 요동쳤다. 그것은 안국동 사가에 내쳐져 차디찬 방구석에서 억울한 눈물로 숱한 밤을 지새우고 있을 조강지처, 폐비 민씨에 대한 뒤늦은 죄책감이자 연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남인들의 오만한 목줄을 단번에 끊어버리고 판을 뒤엎을 절호의 명분이 서서히 피어오르는 찰나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 투기조차 할 줄 모르고 늘 꼿꼿하게 예법을 지키던 인현왕후야말로 진정 조선의 국모 자격이 있는 자애로운 여인이었다. 내 한때의 치기 어린 분노와 얄팍한 정치적 계산으로 죄 없고 어진 조강지처를 모질게 내쳤구나. 이제 저 오만방자한 남인 놈들을 다시 한 번 남김없이 쓸어버리고, 억울하게 쫓겨난 민씨를 다시 궐로 불러들여야겠다. 그것만이 이 어지러운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고, 내 절대적인 왕권을 영원히 통제하는 유일한 길이다.'
숙종은 그날 밤, 기도를 올리던 무수리 최씨를 곧바로 자신의 침전으로 불러들여 뜨거운 승은을 내렸다. 지체 높은 왕이 가장 천한 무수리를 품은 사건은 궐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최씨를 향한 숙종의 파격적인 총애는 단순한 사내의 변심이나 욕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에 취해 눈이 먼 장씨와 남인 세력을 향해 날리는 무언의 차가운 경고장이자, 조만간 조선의 조정을 핏빛으로 물들일 세 번째 환국을 예고하는 서늘하고도 끔찍한 전주곡이었다. 화려한 궁궐의 공기는 또다시 숨 막히게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 5: 폐비 민씨의 복위와 장희빈의 강등
가장 천한 신분의 무수리 최씨가 하루아침에 승은을 입고 숙종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종4품 숙원의 자리에까지 오르자, 중전 장씨의 처소인 교태전에는 연일 값비싼 도자기들이 박살 나고 궁녀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자신이 쥐고 있던 왕의 총애가 다른 여인, 그것도 천하디천한 무수리 출신에게 옮겨갔다는 사실에 질투로 눈이 완전히 뒤집힌 장씨는 이성을 잃고 패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장씨는 최씨를 몰래 잡아들여 형틀에 묶어놓고 모진 매질을 가하는 등 광기에 가까운 폭력을 휘둘렀다.
"어디서 굴러먹던 천한 무수리 년이 감히 꼬리를 쳐서 국왕 전하의 성은을 훔쳐? 내 이 요망한 년의 살갗을 모조리 벗겨내고 사지를 찢어 궐 밖으로 내던질 것이다! 당장 쳐라! 저년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치란 말이다!"
장씨의 날카롭고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궁궐의 담장을 찢을 듯 울려 퍼졌지만, 숙종은 오히려 이를 기막힌 핑계 삼아 장씨를 향한 발길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투기와 질투로 얼룩진 장씨의 흉악한 본성이 만천하에 드러날수록 숙종의 명분은 더욱 단단해졌다.
이에 남인들은 뼈저린 위기감을 느꼈다. 숙종의 마음이 돌아서고 백성들 사이에서 폐비 민씨에 대한 짙은 동정론이 들불처럼 번져나가자, 남인의 수뇌부들은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무서운 음모를 꾸몄다. 서인 세력의 잔당들이 모여 폐비 민씨를 다시 복위시키고 자신들을 몰아내려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거짓 고변을 날조해 낸 것이다. 서인들을 뿌리 뽑고 숙종의 불안감을 자극해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려는 얄팍하고도 잔혹한 수작이었다.
1694년 숙종 20년, 이른바 '갑술환국'의 피비린내 나는 밤이 들이닥쳤다. 남인의 영수이자 우의정인 민암은 자신들의 계략이 완벽하게 성공할 것이라 굳게 믿고, 승전보를 확신하며 늦은 밤 편전에 들어 숙종에게 서인들을 처벌할 것을 강하게 주청했다.
"전하! 서인의 역당 무리들이 감히 폐비를 등에 업고 조정을 뒤엎을 반역을 도모하였사옵니다! 이는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대역죄이오니, 당장 의금부의 군사들을 푸시어 그들을 모조리 추국하고 역모의 싹을 무자비하게 잘라내시옵소서!"
그러나 어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민암의 호들갑을 내려다보는 숙종의 입가에는 뼛속까지 시리도록 서늘한 냉소가 흐르고 있었다. 영민하고 교활한 절대 군주 숙종은 이미 남인들의 얄팍한 날조극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기회를 역으로 이용해 오만방자한 남인들을 단숨에 일망타진할 치밀하고도 완벽한 덫을 놓아두고 그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역모라 하였느냐. 참으로 괘씸하고도 간 큰 자들이로구나. 당장 금군을 모두 풀어 도성의 사대문을 철통같이 봉쇄하라! 단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숙종의 분노 서린 불호령이 떨어지자, 민암을 비롯한 남인 대신들은 내심 환호성을 지르며 입가에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드디어 눈엣가시 같던 서인들의 명줄이 영원히 끊어지고 남인의 독재가 완성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숙종의 입에서 천둥처럼 떨어진 어명은 그들의 고막을 찢고 숨통을 멈추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어명을 거역하고 죄 없는 서인들을 옥에 가둔 자가 도대체 누구냐! 남인들이 권력에 눈이 멀어 거짓 역모를 꾸미고 충신들을 모함하여 해치려 하였으니, 당장 우의정 민암을 비롯한 궐내의 남인 대신들을 모두 포박하여 옥에 쳐넣어라! 그리고 백성들의 고혈을 짠 훈련대장 장희재를 머나먼 제주도로 당장 유배 보내고, 궐내에 있는 남인의 관직을 모조리 삭탈하라! 반항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목을 쳐라!"
"저, 전하!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씀이시옵니까! 어찌 충신들에게 이러시옵니까! 이는 간신배들의 모함이옵니다! 전하!"
순식간에 상황이 끔찍하게 뒤집혔다. 방금 전까지 서인의 처형을 외치던 남인들은 밧줄에 꽁꽁 묶여 질질 끌려가며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 소리로 편전을 가득 채웠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역적으로 몰려 벌벌 떨던 서인들은 통쾌하게 옥문을 박차고 나와 다시 조정의 주인이 되었고, 기세등등하던 남인들은 혹독한 고문 끝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평생 돌아올 수 없는 험한 귀양길에 올랐다. 단 하룻밤 사이에 조선의 정권이 또다시 완벽하게 교체된 것이다.
숙종의 거침없고 무자비한 칼날은 곧장 장씨가 머무는 교태전을 향했다.
"중전 장씨는 그동안 투기가 심하고 성정이 악독하여 수많은 자들을 핍박하였으니 도저히 국모의 자격이 없다! 당장 중전의 자리에서 내쫓고 다시 빈으로 강등시켜 옛 처소인 취선당으로 쫓아내라! 그리고 안국동 사가에 억울하게 머물고 계신 민씨를 다시 대궐로 모셔 와 중전으로 복위시킬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권력의 정점에서 세상을 호령하며 교만을 떨던 장희빈은, 화려한 적의가 찢겨 나간 채 머리를 산발하고 바닥에 엎드려 피를 토하듯 통곡했다.
"전하! 억울하옵니다! 소인이 이 나라의 대통을 이을 세자를 낳은 국모이거늘, 어찌 소인을 이리 비참하게 내치시나이까! 소인이 무엇을 그리 잘못하였단 말씀이시옵니까! 전하, 제발 얼굴이라도 한번 뵙게 해주옵소서!"
문고리를 부여잡고 늘어지는 그녀의 처절한 절규와 울부짖음에도, 숙종은 단 한 번도 매정하게 돌아선 등을 보이지 않았다. 5년 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초라한 가마를 타고 궁 밖으로 쫓겨났던 인현왕후 민씨는 화려하고 장엄한 왕비의 가마를 타고 만백성의 환호를 받으며 당당히 대궐 문을 들어섰다.
피바람이 잔혹하게 휩쓸고 간 다음 날 아침. 숙종은 고요해진 용상에 앉아 텅 빈 앞뜰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서인과 남인, 그리고 인현왕후와 장희빈. 그들 모두는 결국 왕의 절대적이고도 잔혹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체스판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가차 없이 버려지는 소모적인 말에 불과했다. 하룻밤 새 목숨이 오가는 세 번의 끔찍한 환국의 폭풍우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더욱 강해진 것은 오직 군주, 숙종 한 사람뿐이었다.
※ 6: 사약 잔과 함께 끝난 여인천하
갑술환국의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를 거쳐 5년 만에 기적적으로 다시 중전의 자리에 오른 인현왕후였지만, 안국동 사가에서의 오랜 유배 생활과 마음고생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옥체는 궐내의 무거운 공기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1701년, 천신만고 끝에 복위된 지 불과 7년 만에 인현왕후는 시름시름 앓다 서른다섯이라는 안타깝고도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질고 자애로웠던 국모의 억울한 죽음에 온 나라의 백성들이 슬퍼하며 곡소리에 잠겼다.
그런데 인현왕후의 장례가 채 끝나기도 전에, 궐내 깊숙한 곳에서부터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끔찍하고도 요망한 소문이 은밀하게 돌기 시작했다. 숙종의 각별한 총애를 받던 숙빈 최씨가 한밤중에 숙종을 은밀히 찾아와 아뢴 충격적인 고변 때문이었다.
"전하, 중전 마마의 억울한 승하는 결코 단순한 병사가 아니옵니다. 장희빈이 머무는 취선당 뒤뜰 으슥한 곳에 무당의 신당을 차려놓고, 밤낮없이 징을 치며 중전 마마를 저주하는 흉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자가 있사옵니다. 그 저주 때문에 중전 마마께서 그리 허망하게 눈을 감으신 것이옵니다."
숙종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즉각 취선당을 급습하여 샅샅이 수색한 금군들은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후원 덤불 사이 으슥한 곳에서 은밀하게 차려진 무당의 신당이 발견되었고, 그곳에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끔찍한 글귀가 적힌 부적과 흉물스러운 짚인형,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죽은 짐승의 뼈와 새의 사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희빈이 자신이 잃어버린 중전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 몰래 무당을 궐 안으로 불러들여 끔찍한 저주의 굿판을 벌인 이른바 '무고의 옥(巫蠱之獄)'이 만천하에 발각된 것이다.
보고를 받은 숙종의 두 눈에 살모사처럼 차갑고도 번뜩이는 살기가 돌았다. 장희빈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자, 다음 왕위를 이을 세자의 친어머니였다. 대신들은 훗날 세자가 왕위에 올랐을 때 피바람이 불 것을 염려하여, 아무리 죄가 무겁다 하나 세자의 생모인 장희빈의 목숨만은 살려달라며 대궐 마당에 머리를 찧으며 간청했다. 그러나 완전한 왕권을 손에 쥔 숙종의 결단은 바위처럼 단호하고 자비가 없었다.
"한 나라의 왕실 법도를 어지럽히고, 삿된 주술로 국모를 저주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천인공노할 죄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저런 표독스러운 요부의 후환을 살려두고 어찌 조선의 종묘사직을 안전하게 보존한단 말인가. 당장 장씨에게 사약을 내리노라!"
먹구름이 무겁게 궐을 덮고 스산한 바람이 불던 날, 장희빈이 머무는 취선당 앞마당에 마침내 검은 사약이 담긴 소반이 놓였다. 화려한 당의 대신 하얀 소복을 입은 장희빈은 죽음을 직감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발악했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나는 이 나라 조선의 핏줄인 세자를 낳은 어머니다! 전하께서 내게 이러실 수는 없다! 나는 죽을 수 없다! 억울하다!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죽는다!"
사약을 들이붓기 위해 다가오는 억센 금군들을 사납게 뿌리치며 그녀는 악을 썼다. 밖에서는 어린 세자가 어머니를 살려달라며 목이 쉬어라 울부짖고 문을 두드렸으나, 숙종은 대전의 방문을 굳게 닫아걸고 끝내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여러 명의 금군이 달려들어 장희빈의 팔다리를 짓누르고 강제로 턱을 벌렸다.
"읍… 으읍!"
짐승처럼 버둥거리는 장희빈의 식도를 타고 시퍼런 독기가 서린 검은 사약이 왈칵왈칵 쏟아져 들어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굴던 장희빈은, 한때 숙종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고 조선 권력의 정점에 섰던 화려한 과거가 무색하게도, 검은 피를 토하며 처참하고도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녀의 두 눈은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닫힌 대전 쪽을 향해 원망스럽게 부릅떠 있었다.
장희빈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 뜰을 먼발치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숙종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결국 모두 내 곁을 떠났구나. 늙은구렁이 같던 서인도, 탐욕스럽던 남인도, 어질던 조강지처 민씨도, 그리고 한때 내 마음을 훔쳤던 장씨도… 모두 내 옥좌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 기꺼이 희생시킨 피의 제물들이었다.'
숙종은 하룻밤 새 정권을 뒤집는 세 번의 끔찍한 환국 정치와, 두 여인의 목숨을 처참한 희생양 삼아 조선 역사상 그 어느 왕보다도 강력하고 범접할 수 없는 절대 왕권을 구축했다. 신하들은 감히 어전에서 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고, 세상을 호령하던 당파의 영수들은 왕의 가벼운 기침 소리 하나에도 목숨을 걸고 벌벌 떨어야 했다. 완벽한 승리였다.
달빛이 창백하게 내리쬐는 편전 앞. 숙종은 홀로 차가운 용상에 앉아 텅 빈 대전을 바라보았다. 피비린내 나는 수많은 살육과 잔혹한 정치적 계산의 대가로 얻어낸 절대 권력. 하지만 그 무소불위의 정점에 선 늙은 제왕의 굽은 어깨 위로는, 그가 평생 홀로 감당해야 할 뼛속 시린 고독과 허무함만이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조선의 가장 화려하고도 잔혹했던 여인들의 암투와 궁중 야사는, 그렇게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늙은 호랑이의 고요하고 쓸쓸한 어둠 속으로 영원히 스며들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하룻밤 새 엎치락뒤치락, 대신들의 목숨을 체스 말처럼 쥐고 흔들었던 숙종의 서늘한 환국 정치. 절대 권력을 향한 제왕의 고독한 선택, 어떻게 들으셨나요? 여인들의 질투 뒤에 숨겨진 피 튀기는 정치 싸움이 참으로 오싹하지 않습니까. 오늘 들려드린 궁중 야사가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꼭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도 핏빛보다 진하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조선의 숨겨진 역사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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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곤룡포와 어좌를 배경으로 서있는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대비되는 모습, 컬러펜슬화
A color pencil drawing of King Sukjong's royal robe and throne in the background, with Queen Inhyeon and Jang Hui-bin standing in striking contrast in the foreground, Korean Joseon dynasty style, vivid colors, highly detailed, 16:9, no text
씬 1
- 비 내리는 창덕궁 처마를 바라보는 젊은 숙종의 뒷모습,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young King Sukjong looking at the rain from the eaves of Changdeokgung Palace, Korean Joseon dynasty style, hanbok, sangtu, moody atmosphere, 16:9, no text - 유악(천막) 아래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남인 대신들의 잔치 모습,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Namin ministers drinking and feasting under a large waterproof tent, Korean Joseon dynasty style, hanbok, 16:9, no text - 횃불을 들고 영의정의 사가에 들이닥치는 조선의 군사들,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Joseon soldiers rushing into the Chief State Councillor's house with torches, dramatic lighting, 16:9, no text -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늙은 영의정 허적의 절망적인 표정,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the old Chief State Councillor Heo Jeok tied with ropes and dragged away, expression of despair,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어좌에 홀로 앉아 차가운 미소를 짓는 숙종,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King Sukjong sitting alone on the royal throne with a cold, calculating smile,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씬 2
- 달빛 아래 연못가에서 가야금을 뜯는 아름다운 장옥정,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beautiful Jang Ok-jeong playing the gayageum by a moonlight pond, Joseon dynasty style, hanbok, jjokjin meori, 16:9, no text - 장옥정에게 홀린 듯 다가가는 숙종의 모습,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King Sukjong approaching Jang Ok-jeong as if mesmerized, romantic and mysterious atmosphere,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편전 앞에 엎드려 반대 상소를 올리는 서인 유생들과 대신들,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Seoin scholars and ministers bowing and protesting in front of the royal council hall,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분노하며 어좌에서 박차고 일어나는 숙종,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King Sukjong standing up from his throne in extreme anger, shouting at his ministers,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어두운 방 안에서 숙종의 품에 안겨 요염하게 미소 짓는 장옥정,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Jang Ok-jeong smiling seductively while embraced by King Sukjong in a dark room,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씬 3
- 갓 태어난 원자를 품에 안고 기뻐하는 숙종,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King Sukjong rejoicing while holding his newborn royal prince in his arms,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분노하여 상소문을 바닥에 집어 던지는 숙종,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King Sukjong angrily throwing protest scrolls onto the floor, tense atmosphere,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귀양지에서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는 노학자 송시열,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the old scholar Song Si-yeol drinking poison and coughing blood in exile, tragic scene,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하얀 소복을 입고 궁궐 밖으로 쫓겨나는 폐비 민씨의 가마,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deposed Queen Min wearing white mourning clothes, being exiled in a humble palanquin from the palace, rainy night, 16:9, no text - 화려한 적의를 입고 교태전에 앉아있는 장희빈의 당당한 모습,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Jang Hui-bin sitting confidently in the Queen's quarters wearing a magnificent red royal dress,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씬 4
- 뇌물을 바치는 관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교태전 마당,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the Queen's courtyard crowded with officials offering treasures and bribes, luxurious atmosphere,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거드름을 피우며 백성들을 억압하는 포도대장 장희재,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police chief Jang Hui-jae acting arrogantly and oppressing commoners in the street,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어둠 속에서 기생들의 연회 소리를 들으며 불쾌해하는 숙종,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King Sukjong looking displeased in the dark while hearing sounds of a gisaeng banquet,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컴컴한 방에서 물 한 그릇을 떠놓고 기도하는 무수리 최씨,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the water maid Lady Choi praying earnestly with a bowl of water in a dark room, dimly lit candle,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문틈으로 무수리 최씨를 지켜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숙종,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King Sukjong looking through a door crack at Lady Choi, deep in thought,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씬 5
- 질투심에 무수리를 매질하며 분노하는 중전 장씨,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Queen Jang furiously beating a servant girl out of jealousy, dramatic expression,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한밤중에 편전에서 군사를 동원할 것을 명령하는 서늘한 숙종,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cold-hearted King Sukjong ordering the mobilization of soldiers in the royal hall at midnight,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갑작스럽게 금군들에게 포박당해 끌려가는 남인 대신들,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Namin ministers suddenly being tied up and dragged away by royal guards in shock,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머리를 풀고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며 저항하는 장희빈,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Jang Hui-bin crying and resisting on the floor with her hair let down,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다시 화려한 가마를 타고 궁궐로 돌아오는 인현왕후,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Queen Inhyeon returning to the palace in a glorious royal palanquin, bright and hopeful atmosphere,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씬 6
- 병상에 누워 숨을 거두는 쇠약한 인현왕후,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weak Queen Inhyeon passing away on her sickbed, sad atmosphere,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후원 구석에서 짚인형을 바늘로 찌르며 저주 굿을 하는 무당과 장희빈,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a shaman and Jang Hui-bin performing a curse ritual, piercing a straw doll with needles in a dark garden corner,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신당을 적발하고 분노에 차오른 숙종,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King Sukjong discovering the secret shaman shrine, full of extreme rage,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금군들에게 억눌려 강제로 사약을 마시는 장희빈의 처절한 최후,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the tragic end of Jang Hui-bin, being forced to drink poison while held down by royal guards, intense drama,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 - 달빛 아래 텅 빈 편전에 홀로 앉아있는 고독한 늙은 숙종의 뒷모습, 수채화
A watercolor painting of the lonely back of old King Sukjong sitting alone in the empty royal hall under the moonlight, melancholic and grand, Joseon dynasty style, 16:9,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