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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종이 아이 낳으면 출산휴가, 임금이 침전에서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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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아이를 낳자마자 핏덩이를 떼어놓고 찬물에 손을 담그며 일해야 했던 관청 여종들. 그 참혹하고 시린 삶을 굽어살핀 이는 다름 아닌 조선의 4대 임금, 세종이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상상조차 못 했던 15세기의 파격적인 출산휴가. 가장 낮은 곳의 목숨까지 품어 안았던 임금의 따뜻한 촛불 곁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 1: 핏덩이를 안고 일터로 향하는 어미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조선의 어느 깊은 겨울밤. 한양 도성 내 관청의 뒷마당에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헛간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문틈으로는 황소바람이 들이치고, 바닥에는 볏짚 몇 움큼이 앙상하게 깔려 있을 뿐인 그곳에서 짐승의 신음 같은 억눌린 비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아악, 으윽… 흐윽…."

    관청에 속한 여종, 막순이었다. 남산만한 배를 부여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이마에는 차가운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달포 전부터 밤낮없이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나르느라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질 듯 아파왔지만, 천하디천한 관비의 신분으로는 감히 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진통이 시작된 것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건만, 그녀는 관원들의 저녁 수라를 모두 차려내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에야 겨우 이 차디찬 헛간으로 기어들어 올 수 있었다.

    '제발… 제발 무사히 세상 빛을 보게 해주소서. 어미는 어찌 되어도 좋으니, 우리 아기만은 살려주소서….'

    막순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곁에서 식은땀을 닦아주던 동료 여종이 안타까운 눈물만 훔쳐낼 뿐, 해산을 돕기 위해 부를 수 있는 의원이나 산파는 없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밤새도록 이어지다 새벽닭이 울 무렵에야, 마침내 핏덩이 같은 갓난아기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헛간을 채웠다.

    "응아아, 응아아…."

    "나왔다, 막순아! 아들이다, 장군감이야!"

    동료 여종이 탯줄을 끊고 핏기가 가시지 않은 아기를 막순의 품에 안겨주었다. 초췌해진 막순의 얼굴에 그제야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며칠 뒤 막순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을 이끌고 다시 우물가로 나가야만 했다. 당시 나라의 법에 따르면 관청 여종에게 주어지는 출산 휴가는 단 이레, 즉 7일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일주일 만에 얼음장 같은 우물물에 손을 담그고 관복을 빨아야 하는 산모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축나고 있었다.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찬바람을 맞으며 밤늦도록 다듬이질을 하던 막순의 동료 여종 하나가, 아이를 낳은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이다.

    "이보게! 정신 차려 보게! 누군가 도와주시오, 사람이 죽어가요!"

    다급한 외침이 관청 마당을 울렸으나, 쓰러진 여종은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어미를 잃은 핏덩이는 배고픔에 며칠을 울다 서서히 숨을 거두었고, 이런 비극은 조선 팔도 관청 곳곳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상과도 같았다. 관비란 그저 나라의 재산이자 일하는 기계로 여겨지던 시절, 그들의 목숨값은 종이 한 장보다 가벼웠다.

    이 참혹한 소문은 돌고 돌아, 구중궁궐 깊은 곳에 자리한 임금의 귀에까지 닿게 되었다. 보고를 올리는 승지의 목소리에도 씁쓸함이 묻어났다.

    "전하, 도성 내 관청에서 복무하던 관비 하나가 산후조리를 채 하지 못하고 사역에 동원되었다가, 그예 목숨을 잃었다 하옵니다. 남겨진 갓난아이 또한 어미의 젖을 물지 못해 어제 새벽 숨을 거두었다 하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옵니다."

    용상에 앉아 묵묵히 상소를 넘기던 임금, 세종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온화하던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고, 들고 있던 붓끝에서 먹물이 툭 떨어져 하얀 화선지를 검게 물들였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하더냐."

    "고작 보름을 넘겼을 뿐이옵니다. 국법에 정해진 이레 동안의 말미를 다 쓰고 나와 일하던 중 변을 당했다 하옵니다."

    "이레… 이레라…."

    세종의 입술 사이로 무거운 탄식이 새어 나왔다. 사람의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오는 엄청난 고초를 겪었는데, 고작 칠 일 만에 다시 그 고된 노역을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짐성조차 새끼를 낳으면 제 어미 품에서 몸을 추스를 시간을 갖거늘, 하물며 사람의 자식이 어찌 이리 비참하게 죽어나가야 한단 말인가. 천하디천한 종이라 할지라도, 그들 역시 하늘이 내게 맡긴 나의 백성이 아니던가.'

    세종은 가슴 한구석을 날카로운 비수로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 어미와 아이가 함께 스러져간 그 차가운 겨울밤의 정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여, 임금은 밤이 늦도록 침전의 불을 끄지 못한 채 깊은 고뇌에 잠겨들었다.

    ※ 2: 백일의 휴가를 명하는 어명

    깊은 밤, 경복궁 강녕전의 창호지 문 너머로 희미한 촛불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세상 만물이 깊은 잠에 빠진 시간이었지만, 세종은 용포도 벗지 않은 채 서탁 앞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역대 제왕들의 훌륭한 정치를 기록한 옛 문헌과 법전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어두운 불빛 아래서 책을 읽느라 그의 두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시력이 점차 나빠지는 탓에 미간을 잔뜩 찌푸려야만 간신히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책장 넘기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구나. 옛 성현들의 기록 그 어디에도, 가장 낮은 자들의 해산을 보살피라는 가르침은 쓰여 있지 않다. 그토록 백성을 아끼라 강조했던 맹자의 책에도 관비의 안위는 논하지 않았고, 중국의 훌륭한 법전들도 노비는 그저 재산으로만 취급할 뿐이다.'

    세종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덮었던 책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눈을 감자, 혹한의 추위 속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덜덜 떨며 일터로 향해야 하는 여종들의 핏기 없는 얼굴들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임금의 자리는 하늘을 대신하여 만백성을 어루만지는 자리였다. 양반이든 상놈이든, 심지어 나라에 묶여 사는 관비든 간에 조선 땅에서 숨 쉬는 모든 생명은 임금인 자신이 품어야 할 백성이었다.

    "내 백성이다. 내 백성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것을 법이 없다는 핑계로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옛 성왕들이 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 길을 만들면 될 일이다."

    세종의 눈빛이 흔들림 없는 단호함으로 빛났다. 그는 곁에 있던 환관에게 조용히 벼루와 먹을 가져오라 일렀다. 임금이 직접 붓을 들고 어명을 짓기 시작했다. 붓끝이 종이 위를 거침없이 내달릴 때마다, 조선을 넘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위대한 법이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편전에서 열린 조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조정 대신들이 도열한 가운데, 도승지가 낭랑한 목소리로 세종이 밤새워 쓴 교지를 읽어 내려갔다.

    "어명이다! 들으라. 옛적부터 관청에서 사역하는 여종이 아이를 낳으면, 칠 일 뒤에 다시 일하도록 하였다. 허나, 산후에 기력을 채 회복하기도 전에 고된 복무를 하게 되어 앓아눕거나 병을 얻어 죽는 자가 많았다. 이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관비가 아이를 낳으면, 출산 후 백 일 동안의 휴가를 주어 몸을 온전히 쉴 수 있게 하라!"

    "전… 전하!"

    교지 낭독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조판서가 펄쩍 뛰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백 일이라니 당치 않사옵니다! 관비들은 도성 각 관청은 물론이요, 궁궐의 주방과 세탁방에 이르기까지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자들이옵니다. 한꺼번에 수많은 여종들이 백 일이나 자리를 비우면, 관청의 살림이 어찌 돌아가겠사옵니까? 기강이 무너지고 국가의 일상 업무가 마비될 것이옵니다!"

    다른 대신들 역시 일제히 바닥에 엎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전하! 저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천인들이옵니다. 양인 아낙들도 해산 후 며칠이면 밭에 나가 김을 매거늘, 천비들에게 백 일의 말미를 주는 것은 국법의 형평성에 어긋나옵니다.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조정은 순식간에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워졌다. 기득권을 가진 사대부들의 눈에 노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백 일이라는 어마어마한 쉼을 준다는 것은, 당시의 상식으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낭비이자 혼란이었다.

    하지만 용상에 앉아 쏟아지는 반대 상소를 굽어보는 세종의 표정은 태산처럼 굳건했다. 세종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대신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편전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짐승과 다를 바 없다 하였소? 참으로 매정한 말들이구려."

    세종의 낮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가 편전의 기둥을 때렸다.

    "그대들이 먹는 밥을 짓고, 그대들이 입는 옷을 빠는 자들이 바로 그 여종들이오. 나라의 살림이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피땀 위에 세워져 있거늘, 어찌 그들의 목숨이 가볍다 할 수 있겠소. 하늘이 내린 백성 중에 천한 목숨은 없소이다. 아무리 천비라 할지라도,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낳은 공로는 하늘과도 같은 법. 백 일의 휴가는 내 결단코 거두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서슬 퍼런 임금의 호통에 대신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서기 1426년, 세종 8년의 일이었다. 오직 백성을 향한 한 임금의 깊은 연민과 굳은 의지가 반대하는 신료들을 꺾고, 가장 연약한 자들에게 백 일이라는 기적 같은 시간을 선물한 순간이었다.

    ※ 3: 산전 휴가 한 달을 더하다

    출산 후 백 일의 휴가가 반포된 지 어느덧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종의 은혜로운 법 덕분에 관청 여종들은 아이를 낳고 따뜻한 방에서 미역국을 먹으며 뼈마디를 추스를 수 있게 되었다. 아기들 역시 어미의 충분한 젖을 먹고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랐으니, 한양 도성 안팎의 천민들 사이에서는 임금을 향해 매일같이 큰절을 올리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으레 그렇듯, 훌륭해 보였던 법이라 할지라도 미처 살피지 못한 그림자가 숨어있기 마련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만삭의 몸이 된 막순은 관청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아이고, 허리야…."

    막순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훔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보다 배가 훨씬 커서 걷는 것조차 버거웠다. 관청의 우두머리인 아전이 지나가다 혀를 쯧쯧 찼다.

    "쯧쯧, 배가 남산만 한데 어찌 나와서 장작을 패고 있느냐? 들어가서 좀 쉬지 않고."

    막순이 눈치를 살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나으리, 송구하옵니다. 허나 국법에 따르면 아이를 낳은 '후'에만 백 일의 휴가가 주어진다 들었사옵니다. 아직 아이가 배 안에 있으니, 어찌 소인이 제멋대로 쉴 수 있겠사옵니까. 제 몫의 일을 다 해내야지요…."

    아전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법이 그러하니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세종이 내렸던 백 일의 휴가는 '산후(産後)'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산전 휴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만삭의 임산부들은 양수가 터지거나 진통이 시작되어 아이가 머리를 내밀기 직전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뙤약볕에서 일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은 또 다른 비극을 불러왔다. 그날 오후, 기어이 장작을 다 패고 무거운 장독을 옮기려던 막순의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앗!"

    비명과 함께 막순이 장독대를 짚고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하혈이 시작되었고, 진통이 미처 오기도 전에 핏물이 막순의 치마를 붉게 물들였다. 급히 의원이 불려 왔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막순은 그날 뱃속의 아이를 잃고 말았다. 쉬어야 할 시기에 무리하게 일을 강행한 탓이었다. 막순은 텅 빈 배를 부여잡고 사흘 밤낮을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비단 막순만의 일이 아니었다. 출산 직전까지 고된 노역을 하다가 길바닥에서 아이를 낳아버리거나, 산고를 이기지 못해 뱃속의 아이를 잃는 여종들이 전국 곳곳에서 속출했다. 이 소식은 이내 승정원을 거쳐 세종의 귀에 다시금 들어갔다.

    '이런 미련할 데가 있나…! 내 어찌 산후의 일만 챙기고, 산전의 위급함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세종은 보고를 들으며 주먹으로 가슴을 강하게 내리쳤다. 백성을 살리겠다고 만든 법이었건만, 그 법의 구멍 때문에 또다시 어린 생명들이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스스로의 사려 깊지 못함을 자책하는 임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아이를 낳고 백 일을 쉬게 하는 것은 좋은 법이다. 허나, 만삭이 된 몸으로 어찌 평상시와 똑같이 험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해산할 기미가 임박했는데도 일을 멈추지 못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바닥에서 아이를 낳는 일마저 벌어지다니… 이는 과인의 불찰이다. 짐이 생각이 짧아 백성들을 온전히 품지 못하였구나."

    세종은 즉시 호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어전으로 불러들였다. 신하들의 반대가 또 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나, 세종의 눈빛에는 그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당장 법령을 수정하라. 관비들이 아이를 낳기 전에도 넉넉히 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명을 내리노니, 해산 달이 된 관비에게는 출산 전 한 달, 즉 산전 삼십 일의 휴가를 더 내어주도록 하라. 그리하여 산전 산후 합하여 총 백삼십 일의 말미를 주어, 어미와 아이가 모두 무사하도록 보살펴라!"

    대신들이 또다시 예법과 재정을 운운하려 입을 달싹였으나, 자신의 뼈아픈 실책을 바로잡으려는 임금의 단호한 기백 앞에서는 그 어떤 논리도 소용이 없었다. 서기 1430년, 세종 12년. 산후 백 일 휴가에 더해 산전 한 달의 휴가가 법으로 온전히 제정된 순간이었다.

    가장 천한 곳에서 흘리는 눈물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던 임금의 치열한 반성과 애민정신이, 비로소 조선의 법전 위에 굳건한 생명의 울타리를 완성해 내고 있었다.

    ※ 4: 산모를 돌볼 이가 없도다

    세종의 어명으로 산전 한 달, 산후 백 일이라는 파격적인 휴가가 반포되고 다시 몇 해의 세월이 무심히 흘렀다. 관청의 여종들은 배가 남산만 해지면 당당히 일터에서 벗어나 몸을 누일 수 있었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백 일 동안은 관원들의 매서운 호통을 피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은혜였고, 하늘 아래 이보다 더 자애로운 성군은 없는 듯했다. 한양 도성의 하늘은 평온해 보였으나, 제도의 사각지대라는 그늘진 곳에서는 또 다른 슬픔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있었다.

    한겨울의 매서운 삭풍이 잦아들고 제법 봄기운이 돌던 어느 날, 도성 성곽을 보수하는 노역장에서는 건장한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가 흙먼지와 함께 뒤엉켜 있었다. 관청에 속한 사내종, 즉 관노로 평생을 살아온 돌쇠도 그들 중 하나였다. 제 몸집만 한 바윗덩어리를 지게에 지고 가파른 비탈을 오르내리기를 수십 번. 돌쇠의 무명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소금꽃이 피어 있었고, 짚신을 신은 발가락 사이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와 흙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때, 저만치서 돌쇠와 같은 관청에 속한 늙은 노비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소리쳤다.

    "돌쇠야! 이놈, 돌쇠야! 방금 네 처가 해산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라 하더라!"

    순간, 돌쇠의 어깨를 짓누르던 바윗덩어리의 무게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듯했다. 시커멓게 탄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올랐고,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핏줄이 태어났구나. 나 같은 천것의 몸에서도 대를 이을 자식이 태어났어. 당장 달려가 내 처의 고생한 손을 잡아주고, 핏덩이 같은 내 새끼의 얼굴을 비벼보고 싶구나.'

    돌쇠는 지게를 팽개치듯 내려놓고 작업장을 감독하는 관원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머리를 짓이기며 애타는 목소리로 엎드려 빌었다.

    "나으리! 소인의 처가 방금 갓난쟁이를 낳았다 하옵니다. 부디, 부디 한나절만이라도 말미를 주시옵소서. 가서 얼굴만이라도 보고 오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서늘한 비웃음과 등짝을 내리치는 모진 매질뿐이었다.

    "이런 맹랑한 놈을 보았나! 네 처가 백삼십 일이나 쉬며 유세를 떠는 것도 고까워 죽겠는데, 사내놈인 너까지 일을 팽개치고 가겠다? 관청의 일은 뉘 집 개가 한단 말이냐! 당장 일어나 바위를 지지 못할까!"

    돌쇠는 피가 나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지게를 짊어져야만 했다. 몸은 성곽 돌무더기 앞에 있었지만, 마음은 십 리 밖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가 있었다.

    같은 시각, 돌쇠의 아내 분이는 캄캄하고 냉기 가득한 방안에 홀로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곁에는 갓 태어난 아기가 꼬물거리며 울고 있었지만, 분이는 아기를 안아줄 기력조차 없었다.

    '목이 마르다… 타들어 갈 듯이 목이 말라…. 따뜻한 물 한 모금만 마실 수 있다면, 볏짚이라도 태워 방구들만 조금 덥힐 수 있다면….'

    산전 한 달, 산후 백 일의 휴가가 주어졌다고는 하나, 그것은 단지 관청에 나가 노역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 뿐이었다. 양반집 아낙들이야 종들이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으며 몸을 추슬렀지만, 관비들에게는 그들을 수발들어 줄 하인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남편마저 새벽별을 보고 나가 밤늦게까지 노역에 시달리는 처지이니, 텅 빈 집안에서 홀로 해산한 산모는 스스로 물을 긷고 불을 때야만 했다. 하지만 피를 쏟고 뼈마디가 벌어진 산모가 어찌 우물가까지 걸어나갈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며칠을 굶주린 채 냉골에서 버티던 산모들은 젖이 돌지 않아 아기를 굶기기 일쑤였고, 산후열을 이기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백삼십 일의 휴가라는 위대한 법 뒤에는, 그 기간 동안 산모를 먹이고 입히고 간호해 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지독한 현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남편들은 밤늦게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내와 굶주려 우는 아이를 부여잡고 통곡했고, 도성 곳곳의 천민 촌에서는 밤마다 사내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기막힌 참상은 암행을 돌던 관리들의 눈에 띄었고, 마침내 승정원의 보고서에 낱낱이 기록되어 또다시 구중궁궐의 임금, 세종의 탁자 위에 올려졌다.

    "전하, 도성 밖 천민들의 촌락에서 원성이 자자하다 하옵니다. 나라에서 산모에게 넉넉한 말미를 주었으나, 사내종들은 여전히 매일 노역에 동원되기에 집에 홀로 남은 산모들이 굶주림과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하옵니다. 휴가가 길어진들 돌봐줄 이가 없으니, 오히려 관청에서 밥이라도 얻어먹던 시절보다 더 굶주리는 촌부들이 많다 하오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보고를 전해 듣는 세종의 표정은 어둡게 굳어갔다. 그의 두 눈은 이미 잦은 안질로 인해 시야가 흐릿해져 있었지만, 백성들의 고통을 마주하는 그의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고 뼈아프게 깨어있었다.

    '내 어찌 이리도 어리석었단 말인가. 여인이 아이를 낳고 몸을 쉴진대, 밥을 짓고 물을 길어다 줄 이가 곁에 없다면 그 휴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남편을 빼앗아 노역을 시키면서, 아내 혼자 아이를 건사하라 던져둔 것은 나라가 방관자가 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종은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어좌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선의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또다시 백성들의 눈물로 얼룩졌다는 사실이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다. 홀로 남겨진 아내를 걱정하며 피눈물을 삼켰을 사내종들의 애통함이, 어두운 침전에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 5: 세계 최초의 남편 출산휴가

    서기 1434년, 세종 16년. 궁궐의 뜰에는 붉은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봄의 전령을 알리고 있었으나, 편전 안의 공기는 살얼음판을 걷듯 차갑고 팽팽했다. 어좌에 앉은 세종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고, 육신의 병마와 정무의 고단함으로 인해 옥체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하지만 신료들을 굽어보는 임금의 안광만큼은 매서운 호랑이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과인이 오늘 경들을 부른 것은, 다름 아닌 관비들의 해산 구휼에 대한 법을 다시금 정비하고자 함이오."

    세종의 입이 열리자 대신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십여 년 전, 과인이 산전 산후 휴가를 합하여 백삼십 일을 내리었거늘, 어찌하여 아직도 어미와 아이가 함께 목숨을 잃는 참상이 벌어지는지 경들은 아는가. 사내종들이 관청의 노역에 묶여 있으니, 해산한 아내에게 물 한 모금 떠먹일 수가 없기 때문이라 하오! 여인이 홀로 미역국을 끓일 기력도 없이 식어가는 방구들에 누워있는데, 그것을 어찌 온전한 쉼이라 할 수 있겠소!"

    세종은 주먹으로 어탁을 내리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여, 내 오늘 새로운 어명을 내리겠소. 이제부터 관비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인 사내종에게도 산후 삼십 일의 휴가를 내어주도록 하시오! 한 달 동안 집에서 아내의 병수발을 들고, 갓 태어난 핏덩이를 함께 돌보게 하란 말이오!"

    순간, 편전 안은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정적에 휩싸였다. 이윽고 정적이 깨지며 벌떼 같은 반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의정부의 정승부터 육조의 판서들까지 앞다투어 바닥에 엎드리며 결사반대를 외쳤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거두어 주시옵소서! 사내종에게 출산 휴가라니, 이는 단군 이래 그 어느 역사에도 없던 일이옵니다!"

    호조판서가 이마를 조아리며 피를 토하듯 아뢰었다.

    "전하, 도성 내의 토목 공사와 각 관청의 궂은일은 모두 사내종들의 어깨에 달려 있사옵니다. 여종들에게 백삼십 일을 주어 관청의 살림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사내들마저 한 달씩이나 일터를 비운다면 국가는 멈춰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저들은 그저 나라의 부림을 받는 노비일 뿐이옵니다. 어찌 천것들의 사사로운 가정사까지 나라가 법으로 돌보려 하시옵니까!"

    다른 대신들 역시 합세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사대부의 관점에서는 임금의 명이 실로 기상천외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양반 가문의 사내들조차 아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하여 한 달씩이나 서재를 비우고 산구완을 하는 법이 없었다. 하물며 천한 노비에게 남편 노릇, 아비 노릇을 할 시간을 국법으로 보장해 주라니. 이는 신분제의 근간을 흔들고 국가의 재정을 파탄 내는 망국적인 발상으로 여겨졌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옛 성현들의 어느 법전에도 노비의 아비에게 말미를 주라는 글귀는 없사옵니다!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대신들의 읍소가 대궐의 지붕을 뚫을 듯 울려 퍼졌다. 하지만 세종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용상에서 천천히 일어나 바닥에 엎드린 대신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세종의 입술 사이로 무겁고도 결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옛 법에 없다고 하였소? 그렇다면 과인이 묻겠소. 하늘이 백성을 내릴 때, 양반과 노비를 가려서 그 목숨의 무게를 다르게 매겼다 짐작하시오? 노비는 나라의 재산이기에 앞서, 한 집안의 지아비요, 한 아이의 아비요. 사내가 자신의 처자식을 돌보는 것은 하늘이 내린 가장 으뜸되는 도리이거늘, 어찌 천인이라 하여 그 도리를 막을 수 있단 말이오."

    세종의 옥음이 편전의 기둥을 흔들며 신하들의 가슴을 때렸다.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없는 법이오. 지금 당장 관청의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나중에 고쳐 쌓으면 되지만, 백성의 목숨이 무너지고 갓난아이들이 굶어 죽어간다면 조선의 미래는 뉘에게 의탁한단 말이오. 옛 성현이 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조선이 하면 될 것이고, 중국의 법에 없다면 우리의 법전에 새로 새겨 넣으면 될 일이오. 과인은 단 한 명의 백성이라도 홀로 눈물짓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오. 남편들에게 삼십 일의 휴가를 주는 법, 단 한 자도 고치지 말고 즉각 시행하시오! 이는 어명이오!"

    더 이상의 반론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제왕의 서슬 퍼런 위엄에, 대신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머리만 조아릴 뿐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류 역사상 최초의 '남편 출산 휴가(배우자 출산 휴가)' 제도가 바로 이 순간, 15세기 조선의 하늘 아래서 찬란하게 탄생하고 있었다.

    ※ 6: 성군의 은혜가 조선의 하늘 아래

    따스한 봄 햇살이 도성의 허름한 천민 촌을 어루만지던 며칠 뒤. 노역장에서 돌을 나르던 돌쇠에게 관원이 다가와 호통 대신 믿기지 않는 말을 툭 던졌다.

    "어명이다. 네놈의 처가 해산을 했으니, 오늘부터 당장 짐을 싸서 집으로 가거라. 앞으로 삼십 일 동안은 노역장에 얼씬도 하지 말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네 마누라 병수발이나 제대로 들어라! 나라에서 주시는 은혜이니 허투루 쓰면 경을 칠 줄 알아라!"

    돌쇠는 제 귀를 의심했다. 사내종에게 삼십 일의 휴가를 주다니, 그것도 아내의 산구완을 위해서라니. 멍하니 서 있던 돌쇠는 이내 짐을 챙길 새도 없이 흙 묻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집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시장통을 지나고 개울을 훌쩍 뛰어넘는 그의 발걸음이 마치 구름을 타듯 가벼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돌쇠는 헐레벌떡 부엌으로 들어가 솥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이웃집에서 간신히 얻어온 미역 한 줌을 정성껏 씻어 참기름에 달달 볶은 뒤, 맑은 물을 부어 푹 끓여냈다. 구수한 미역국 냄새가 좁은 초가집 안을 가득 채웠다.

    돌쇠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국그릇을 들고 들어가자,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던 아내 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니… 서방님? 어찌 대낮에 일터에서 돌아오셨습니까? 도망이라도 치신 겝니까? 십자가 형벌을 어찌 감당하시려고…."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는 아내를 돌쇠가 다급히 만류하며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 안았다. 돌쇠의 두 눈엔 어느새 굵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도망친 것이 아니오. 우리네 같은 천것들에게도 임금님께서 한 달의 말미를 주셨소. 부인 병수발을 들고 우리 아기 잘 키우라고, 무려 삼십 일이나 휴가를 주셨단 말이오. 자, 어서 이 따뜻한 국물부터 드시오."

    분이는 돌쇠가 떠먹여 주는 미역국을 목으로 넘기며 소리 없이 오열했다. 돌쇠는 잠든 아기의 보드라운 볼을 거친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하늘을 향해 깊은절을 올렸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 천한 목숨들, 백골이 진토 되어도 전하의 넙죽한 은혜를 어찌 다 갚겠사옵니까…."

    부부가 끌어안고 흘리는 기쁨의 눈물은 돌쇠네 집뿐만 아니라 조선 팔도 관청에 속한 모든 노비의 가정에서 흐르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600여 년 전의 일이다. 오늘날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구의 나라들조차 20세기에 들어서야 겨우 여성의 출산 휴가를 보장하기 시작했고, 남편의 출산 휴가는 아직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나라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1434년의 조선,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가장 밑바닥 인생이었던 관청 여종들에게 무려 130일의 출산 휴가를 주었고, 그 남편들에게도 30일의 휴가를 부여했다.

    이는 단순히 제도가 앞서갔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백성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고, 부족한 법은 끊임없이 고치고 보완하여 마침내 생명을 살려내고야 마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 세종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했던 지극한 애민(愛民) 정신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어두운 밤하늘, 천민 촌의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따스한 저녁 밥 짓는 연기가 도성의 하늘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가장 낮고 천한 자들의 생명까지도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었던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 그의 숨결이 배어있는 위대한 법전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감동의 촛불로 타오르고 있다.

    유튜브 엔딩멘트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조선의 숨겨진 이야기, 어떠셨나요? 600년 전 가장 낮은 자들의 눈물까지 닦아주었던 세종대왕의 따뜻한 리더십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다음 이 시간에도 <조선 야사록>은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우리 역사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