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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웠지만, 결국 당신이 최고야

아늑한 방 주인 2025. 12. 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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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말 한 짝 때문에 싸우던 부부 , 싸웠지만, 결국 당신이 최고야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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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300자 내외)

    "어르신들,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지금 옆에 있는 영감님, 할멈이랑 하루에 몇 번이나 싸우십니까? '아이고, 저 웬수! 전생에 무슨 악연으로 만나서!' 하고 가슴 치신 적 많으시지요? 여기 50년을 하루같이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대던 부부가 있습니다. 양말 한 짝 때문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밥상머리에서 숟가락 집어 던지며 싸웠던 두 사람. 그런데 말입니다, 남편이 덜컥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던 날, 아내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 지겨운 잔소리가, 그 징글징글한 싸움이 바로 '사랑'이었다는 것을요. 오늘 밤, 당신의 눈시울을 붉힐 찐한 부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젊은 시절엔 불같은 성격 때문에 싸우고, 늙어서는 꼬장꼬장한 고집 때문에 싸우는 70대 노부부, 영옥 씨와 만식 씨. 눈만 마주치면 "에이그, 저 화상!"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사소한 일로 대판 싸우고 돌아선 만식 씨가 욕실에서 쓰러집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 속에서 영옥 씨는 50년 세월을 주마등처럼 떠올립니다. 미움이 그리움으로, 원망이 고마움으로 바뀌는 기적 같은 시간. "여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평생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그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요? 훈훈한 감동과 깊은 공감을 선사하는 힐링 드라마입니다.

    ※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을 깨트리는 노부부의 사소하고도 치열한 부부싸움

    아이고, 어르신들. 오늘 이야기는 저기 서울 변두리 낡은 빌라 2층에서 시작해 봅시다. 때는 화창한 일요일 아침, 창밖에는 참새가 짹짹거리는데, 이 집 안방에서는 호랑이 두 마리가 으르렁대고 있네요. 주인공은 올해 일흔넷 되신 김영옥 여사님과, 두 살 위인 바깥양반 박만식 영감님입니다.
    자, 상황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영옥 여사님이 거실 바닥을 닦다가 갑자기 걸레를 바닥에 패대기칩니다.
    "아니, 이 영감이 진짜 노망이 났나! 내가 양말 좀 뒤집어 벗어 놓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요!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요? 귓구멍이 막혔어, 도대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던 만식 영감님,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대꾸합니다.
    "거참, 아침부터 귀청 떨어지겠네! 양말 좀 뒤집힌 거 가지고 무슨 나라 잃은 것처럼 소리를 질러? 그냥 빨래통에 넣으면 되지,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뭐가 어쩌고 저째요? 세탁기에 넣기 전에 내가 일일이 손으로 뒤집어서 털어야 하잖아요! 칠십 평생 당신 뒷바라지하다가 내 손가락 관절이 다 나갔어, 다 나갔다고!"
    영옥 여사님이 굽은 손가락을 들이밀며 억울해 죽겠다는 듯 소리칩니다. 그런데 만식 영감님, 그 손은 쳐다보지도 않고 TV 볼륨을 확 높여버립니다.

    "에이그, 시끄러워. 드라마 봐야 하니까 저리 좀 비켜! 밥이나 빨리 차려, 배고파 죽겠구만."
    이 말에 영옥 여사님 뚜껑이 안 열리겠습니까? 방금까지 허리가 끊어질 듯 청소했는데 밥 타령이라니요.
    "밥?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요? 당신 손발 없어요?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든지! 나는 밥 못 해, 아니 안 해! 오늘부터 파업이야!"
    영옥 여사님이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안방으로 휑하니 들어가 버립니다. 방문을 '쾅!' 닫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집이 흔들릴 지경입니다. 방 안에 들어온 영옥 씨, 침대에 걸터앉아 씩씩거리는데 눈물이 핑 돕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인간을 만났을까. 남들은 남편이랑 손잡고 여행도 다닌다는데, 나는 죽을 때까지 저 양말 쪼가리랑 씨름하다 가겠구나.'
    서러움이 북받쳐 오릅니다. 그런데 거실에서는 눈치 없는 영감님이 냄비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씨, 라면이 어디 있어? 여편네가 살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당최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그 소리를 듣는데 영옥 씨는 더 화가 납니다. 찬장 두 번째 칸에 라면이 떡하니 있는데 말이죠. "거기 찬장 열어보라고요! 눈을 폼으로 달고 다니나!" 방문 너머로 소리를 꽥 지르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씁니다. "아우, 지겨워.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지."

    그런데 말입니다, 어르신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가끔은 그 칼이 진짜로 살을 벨 때가 있는 법입니다. 거실에서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뚝 끊기고, 갑자기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는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영옥 씨는 이불 속에서 귀를 쫑긋 세웁니다. 평소 같으면 "아이고 뜨거워라!" 하거나 "이놈의 냄비가!" 하고 소리를 질렀을 텐데 말이죠. 뭔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 아시지요? 싸한 느낌에 영옥 씨가 방문을 열고 나갑니다.
    "여보? 당신 어디 갔어? 라면 끓인다며?"
    대답이 없습니다. 영옥 씨가 부엌을 지나 욕실 쪽으로 가보는데... 아이고, 세상에! 욕실 문이 반쯤 열려 있고, 그 틈으로 만식 영감님의 다리 한 짝이 삐죽 나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보!"
    영옥 씨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갑니다. 욕실 바닥에는 영감님이 거품 문 칫솔을 든 채로 널브러져 있습니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여보! 정신 차려봐! 박만식! 왜 이래, 사람 놀라게!"
    영옥 씨가 영감님 뺨을 때려보지만, 축 늘어진 채 미동도 없습니다. 바닥의 찬 기운이 영감님 몸에서 느껴집니다. 순간, 영옥 씨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합니다. 방금 전까지 싸웠던 그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일요일 아침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고, 지긋지긋했던 전쟁은 이제 생사를 건 사투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 냉전 상태에서 남편이 욕실에서 미끄러져 쓰러지고, 구급차에 실려 가는 긴박한 상황

    자, 이제 장면은 흔들리는 구급차 안입니다. 좁아터진 차 안에 소독약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간이침대에는 만식 영감님이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있고, 그 옆에는 영옥 여사님이 영감님의 손을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앉아있습니다.
    영옥 여사님의 몰골 좀 보세요. 앞치마도 못 벗고, 한쪽 발엔 슬리퍼, 한쪽 발은 맨발입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어떻게 뛰어나왔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구급대원 총각이 무전기로 병원에 뭐라고 소리치는데, 영옥 씨 귀에는 하나도 안 들립니다. 오직 '띠-띠-' 하는 기계 소리와 영감님의 가로막힌 숨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할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눈 좀 떠보세요!"
    구급대원이 소리치지만 영감님은 대답이 없습니다. 영옥 씨는 영감님의 손을 잡고 비비고 또 비빕니다. 이 손, 50년 동안 내 속을 그렇게 썩이던 손입니다. 밥상 엎던 손이고, 월급봉투 쥐꼬리만큼 가져와 던져주던 야속한 손입니다. 그런데 지금 잡은 그 손이... 너무 찹니다.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
    "여보... 만식 씨... 죽으면 안 돼. 나한테 말도 없이 이렇게 가면 안 돼. 아까 내가 화내서 그래? 밥 안 줘서 삐져서 그래? 내가 잘못했어. 일어나기만 해. 내가 갓 지은 밥에 고깃국 끓여줄게."

    영옥 씨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아까 아침에 싸웠던 일들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릅니다. '양말 좀 뒤집어 놓으면 어때서. 그거 내가 뒤집으면 1초도 안 걸리는 걸, 왜 그렇게 악을 썼을까. 배고프다는데 라면이나 끓여 먹으라고 모질게 굴었을까.'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와 영옥 씨의 가슴을 때립니다.
    구급차가 급커브를 도는지 차체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영옥 씨는 넘어질 뻔하면서도 영감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창밖을 보니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합니다. 나들이 가는 차들이 꽉 막혀 있습니다. 영옥 씨는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치고 싶습니다. '비켜주세요! 제 남편이 죽어가요! 평생 고생만 한 우리 영감이 간다고요!'
    그때, 감고 있던 영감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립니다.
    "여보! 여보! 나 보여? 나 누군지 알겠어?"
    영옥 씨가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칩니다. 영감님의 입술이 달싹거리더니, 산소마스크 너머로 희미한 신음이 새어 나옵니다.
    "으으... 추... 춥...다..."

    그 한마디에 영옥 씨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평생 열이 많아서 한겨울에도 이불 걷어차던 사람이 춥답니다. 영옥 씨는 입고 있던 얇은 카디건을 벗어서 영감님 가슴 위에 덮어줍니다. 그래도 부족해서 자신의 몸을 숙여 영감님을 꼭 끌어안습니다.
    "안 추워, 안 추워. 내가 안아줄게. 조금만 참아. 병원 다 왔어. 여보, 제발 정신 줄 놓지 마. 나 혼자 두고 가면 당신 가만 안 둬. 알았지?"
    영감님의 앙상한 가슴뼈가 영옥 씨의 품에 느껴집니다. 언제 이렇게 말랐을까요. 젊은 시절 쌀가마니도 번쩍번쩍 들던 그 튼튼하던 어깨는 어디 가고, 뼈만 남은 노인이 누워 있습니다. 내가 내 살림 챙기느라,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이 사람 늙어가는 건 못 봤구나.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영옥 씨는 기도합니다. 부처님, 하나님, 천지신명님,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이 사람 한 번만 살려달라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그 흔한 말 한마디 못 해줬는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구급차가 병원 응급실 앞에 멈춰 섭니다. 문이 열리고 찬 바람이 훅 들어오는데, 영옥 씨는 남편의 손을 더 꽉 쥡니다. 바퀴 달린 침대가 덜덜거리며 응급실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 차가운 병원 복도 끝에, 두 부부의 운명이 어떻게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 텅 빈 집에 혼자 남겨진 아내, 남편의 빈자리와 흔적을 보며 느끼는 낯선 공포와 후회

    영옥 씨가 다시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섭니다. 불과 몇 시간 전, 구급요원들이 들이닥쳐 영감님을 실어 나르느라 난리 통이었던 현관입니다. 덩그러니 벗어둔 영감님의 낡은 슬리퍼 한 짝이 현관 구석에 뒤집혀 있습니다. 영옥 씨는 그 슬리퍼를 바로 놓아주려다 그만 주저앉고 맙니다. 신발 뒤축이 다 닳아서 너덜너덜합니다.
    "아이고, 이 짠돌이 영감... 신발 하나 새로 사 신으라니까, 멀쩡하다고 고집을 피우더니..."
    영옥 씨가 떨리는 손으로 슬리퍼를 가슴에 품습니다. 아직도 영감님의 발 냄새가, 그 꼬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평소 같으면 "어우, 냄새나!" 하고 타박했겠지만, 지금은 그 냄새마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거실로 들어서니 아침의 흔적이 그대로입니다. 바닥에 패대기쳤던 걸레, 팽개쳐진 앞치마, 그리고 소파 밑에 굴러다니는 문제의 그 '양말'. 영옥 씨가 기어가서 그 양말을 집어 듭니다. 뒤집혀서 돌돌 말려있는 회색 양말. 이게 뭐라고, 이까짓 게 뭐라고 아침부터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질렀을까요.
    "여보... 내가 잘못했어. 이거 내가 뒤집으면 되는데... 1초도 안 걸리는 건데... 내가 미쳤지. 늙은 영감 기운 빠지게 왜 악을 썼을까."
    영옥 씨는 양말을 손에 쥐고 엉엉 웁니다. 뒤집힌 양말을 다시 뒤집어 바로잡는데,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뒤집어 줄 수 있습니다. 제발 살아서 돌아오기만 한다면, 평생 양말 시중들어도 좋으니 제발 그 자리에 다시 앉아만 있어 달라고 빕니다.
    부엌으로 가봅니다. 식탁 위에는 영감님이 찾다가 못한 라면 봉지가 뜯겨진 채 놓여있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물도 못 채운 빈 냄비가 덩그러니 있습니다.

    "배고팠지? 아침도 안 주고 소리만 질러서 배고팠지? 이 무심한 여편네가 밥 한 끼 안 챙겨줘서 기운이 없어서 쓰러진 거야. 다 내 탓이야..."
    영옥 씨는 냄비를 부여잡고 가슴을 칩니다. 집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평소에는 TV 소리가 너무 크다고, 귀 먹었냐고 잔소리를 해댔는데, 지금 이 적막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영감님의 기침 소리, 트림 소리, 방구 뀌는 소리... 그 시끄러운 소음들이 사실은 '나 살아있어' 하는 생명의 신호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영옥 씨는 안방으로 들어가 짐을 쌉니다. 영감님 속옷, 수건, 칫솔... 하나하나 챙겨 넣는데 손이 자꾸만 미끄러집니다. 장롱 깊숙한 곳에서 영감님이 아끼는 낡은 전대를 꺼냅니다. 그 안에 꼬깃꼬깃 접어둔 비상금 오만 원짜리 몇 장. 자식들 오면 용돈 준다고, 마누라 몰래 숨겨둔 쌈짓돈입니다.
    "이 바보 같은 사람아... 이거 써보지도 못하고 가면 어떡해. 맛난 거 사 먹고 좋은 옷 사 입지, 뭣 하러 이걸 모아놔..."
    영옥 씨는 그 돈을 움켜쥐고 침대 위에 엎드려 통곡을 합니다. 영감님의 베개 냄새, 이불의 감촉, 방 안에 배어있는 그 사람의 체취가 영옥 씨를 감싸 안습니다. '있을 때 잘할걸.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줄걸. 여보, 나 두고 가지 마. 나 무서워.'
    텅 빈 집이 영옥 씨를 집어삼킬 듯이 큽니다. 둘이 살 땐 좁다고 투덜거렸던 이 집이, 혼자 남겨지니 운동장처럼 넓고 황량합니다. 영옥 씨는 도망치듯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섭니다. 어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영감님 옆에 있어야 합니다. 이 지옥 같은 고요함에서 벗어나, 영감님의 거친 숨소리라도 들어야 살 것 같습니다. 현관문을 잠그는 영옥 씨의 손이 덜덜 떨립니다. 다시 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는, 제발 혼자가 아니기를. 제발 둘이서 티격태격하며 들어올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 병원 응급실 복도, 수술을 기다리며 지난 50년의 세월을 회상하는 아내의 독백

    다시 병원입니다. 수술실 앞, 빨간 불이 들어온 '수술 중' 램프가 영옥 씨의 심장을 조여옵니다. 뇌출혈이라 했습니다. 머릿속에 피가 고여서 빨리 빼내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을 때 영옥 씨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빨간 불만 쳐다봅니다. 자식들에게는 연락했습니다. 다들 울면서 오고 있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영옥 씨는 철저히 혼자입니다. 오직 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영감님과 생이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영감... 아프지? 춥지? 그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얼마나 무서울까..."
    영옥 씨는 묵주를 꺼내 돌리며 지난 50년 세월을 떠올립니다. 중매로 만나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시집왔던 날. 가난한 단칸방 신혼 생활. 영감님은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해서 속도 많이 썩였지요. 그럴 때마다 영옥 씨는 보따리 싸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당신이 징글징글하게 미웠어. 내가 미쳤지, 왜 저런 인간이랑 사나 가슴을 쳤지.'
    하지만 미운 정이 무섭다고 했던가요.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비바람 막아주는 건 그래도 영감님뿐이었습니다. 태풍 불어 지붕 날아갔을 때 비 맞으며 지붕 고치던 뒷모습,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굽어진 등. 생각해보면 영감님은 영옥 씨의 '울타리'였습니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세상 풍파로부터 영옥 씨를 지켜주던 든든한 울타리. 그 울타리가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
    "여보, 내가 다 잘못했어. 당신 술 먹는다고 바가지 긁은 거, 돈 못 번다고 무시한 거 다 용서해 줘. 당신이 내 옆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건데, 내가 복에 겨워서 투정만 부렸어."

    영옥 씨의 눈앞에 지난주에 같이 갔던 시장통 풍경이 스쳐 갑니다. 호떡 하나 사서 반 뚝 잘라 영옥 씨 입에 먼저 넣어주던 영감님.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 먹어" 하던 그 무뚝뚝한 한마디가 왜 그때는 사랑인 줄 몰랐을까요. 복도 저편에서 휠체어를 탄 노부부가 지나갑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무릎에 담요를 덮어주는 모습이 보입니다. 영옥 씨는 그게 너무나 부러워서 눈물이 핑 돕니다.
    '나도... 우리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었는데.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 돼서 서로 지팡이 되어주기로 했잖아. 약속했잖아.'
    시간이 야속하게 흐릅니다. 1시간, 2시간... 수술실 문은 열릴 줄을 모릅니다. 영옥 씨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영감님이 깨어나지 못한다면?
    "영감, 쇳덩이도 씹어 먹던 양반이잖아. 이까짓 수술 이겨낼 수 있지? 나 두고 가면 안 돼. 나 과부 만들지 마. 나 혼자 밥 먹게 하지 마."
    영옥 씨는 마음속으로 신과 거래를 합니다. 제 수명을 떼어줘도 좋으니 영감님만 살려달라고. 앞으로 남은 인생은 영감님 종노릇하며 살아도 좋으니 제발 눈만 뜨게 해달라고.
    그때, '딩동' 소리와 함께 수술실 위의 빨간 불이 꺼집니다. 영옥 씨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릅니다. 굳게 닫혀있던 자동문이 스르르 열리고,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걸어 나옵니다. 영옥 씨는 숨이 턱 막힙니다. 저 입에서 나올 한마디에 영옥 씨의 남은 인생이 결정됩니다.
    "선생님! 우리 영감... 우리 바깥양반 어찌 됐습니까! 살았습니까!"
    영옥 씨가 의사 선생님의 가운을 부여잡고 매달립니다. 과연, 만식 영감님은 다시 영옥 씨에게 잔소리를 할 수 있을까요?

    ※ 수술 후 중환자실, 의식 없는 남편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전하는 속마음과 눈물

    "보호자분, 수술은 잘 됐습니다. 고비는 넘겼어요."
    의사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영옥 씨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엉엉 울며 절이라도 할 기세입니다. 살았답니다. 우리 영감이 살았답니다.
    자, 면회 시간이 되었습니다. 영옥 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중환자실 문을 엽니다. 숨소리조차 내기 미안할 정도로 고요하고 서늘한 공기. 저기 구석 침대에 온갖 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누워있는 사람. 바로 만식 영감님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고, 입에는 굵은 호스를 물고 있습니다. 그 드세던 영감님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바람 불면 날아갈 깃털처럼 가냘퍼 보입니다. 영옥 씨가 침대 난간을 잡고 영감님의 손을 조심스레 잡습니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보다 조금은 온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여보... 나 왔어. 나 보여? 수술 잘 됐대. 당신 살았대..."
    영옥 씨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립니다. 영감님은 대답이 없습니다. 기계가 규칙적으로 '뚜... 뚜...' 소리를 낼 뿐입니다. 영옥 씨는 영감님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갖다 댑니다. 거칠고 투박한 손. 이 손으로 평생 못이라도 박고, 전구라도 갈아주며 살았는데. 정작 이 손 한번 따뜻하게 주물러준 적이 없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아침에 당신한테 소리 지른 거, 밥 안 차려준 거, 다 내가 잘못했어. 나는 당신이 천년만년 내 옆에서 큰소리칠 줄 알았어. 그래서 그랬어..."
    영옥 씨는 참았던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영감님이 듣든지 말든지, 지금 아니면 영영 못 할 것 같아서 봇물 터지듯 쏟아냅니다.
    "당신, 나한테 맨날 그랬지? 돈 못 벌어와서 미안하다고. 근데 여보, 나 호강 같은 거 필요 없어. 그냥 당신이 내 옆에 있어 주는 게 호강이야. 당신이 숨 쉬고, 나랑 같이 텔레비전 보면서 욕하는 거... 그게 행복인 줄 몰랐어."
    눈물이 마스크를 적시고 턱 밑으로 흘러내립니다.
    "여보, 제발 눈 좀 떠봐. 나 혼자 무서워서 못 살아. 집에 갔는데 당신 냄새는 나는데 당신이 없으니까, 지옥이 따로 없더라. 나 이제 잔소리 안 할게. 그러니까 제발... 나 두고 가지 마."
    그때였습니다. 영옥 씨가 잡고 있던 영감님의 손가락이 '움찔' 하고 움직입니다. 영옥 씨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듭니다.
    "여보? 내 말 들려? 만식 씨!"

    영감님의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아주 조금, 실눈을 뜨려고 애를 씁니다. 마취 기운 때문에 눈동자가 풀려 있지만, 분명 영옥 씨를 보고 있습니다. 입에 호스를 물고 있어서 말은 못 하지만, 그 눈빛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울지 마... 못난 여편네야, 왜 울고 있어...'
    영옥 씨는 영감님의 이마를 쓸어넘기며 다시 오열합니다.
    "그래, 그래. 나 여기 있어. 걱정하지 마. 저승사자가 와도 내가 머리채 잡고 싸워서 당신 지킬 거야. 그러니까 힘내. 알았지?"
    영감님의 눈가에도 물기가 맺혀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50년 세월,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단 한 번도 헤어지지 않았던 그 질긴 인연의 끈이, 중환자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더 단단하게 묶이는 순간입니다. 비록 말은 못 해도 두 사람은 압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잃어버릴 뻔해서 더 소중해진 이 '부부'라는 이름의 무게를 말이죠.

    ※ 일반 병실로 옮긴 남편, 티격태격하지만 예전과는 달라진 따뜻한 간병 생활

    자, 며칠이 지났습니다. 다행히 영감님은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6인실 병실 창가 자리,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침대에 만식 영감님이 비스듬히 앉아 있습니다. 아직 머리에 붕대는 감고 있지만, 혈색은 많이 돌아왔습니다.
    영옥 여사님은 그 옆 보조 의자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습니다. '사각사각' 사과 깎는 소리가 병실의 평화로운 배경음악 같습니다.
    "아, 거 좀 얇게 깎아봐. 껍질에 영양분이 다 있다는데 그걸 다 깎아내면 어떡해?"
    만식 영감님이 입을 삐죽거리며 한마디 합니다. 어라? 수술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잔소리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영옥 씨는 예전처럼 화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잔소리가 반가워서 피식 웃음이 납니다.
    "아이고, 살아나더니 또 시작이네. 영양분이고 뭐고 목구멍에 잘 넘어가게 깎는 게 최고예요. 주는 대로 드세요."
    영옥 씨가 사과 한 조각을 작게 잘라 입에 넣어줍니다. 영감님은 툴툴대면서도 넙죽 받아먹습니다.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꼭 아기 새 같아 영옥 씨는 그 모습이 예뻐 죽겠습니다.
    "여보, 나 죽다 살아나 보니까... 당신한테 할 말이 있어."
    영감님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뜸을 들립니다. 영옥 씨는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설마 '고맙다', '사랑한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걸까요?

    "뭔데? 뜸 들이지 말고 해 봐요."
    "그... 저기... 내가 쓰러지던 날 아침에 말이야."
    "응, 아침에 왜?"
    "그때 당신이 끓이려던 라면... 그거 결국 못 먹었잖아. 퇴원하면 그것부터 끓여줘. 파 송송 썰어 넣고 계란 하나 탁 풀어서."
    영옥 씨는 기가 차서 헛웃음이 터집니다. 감동적인 멘트를 기대했더니 고작 라면 타령이라니요. 하지만 그게 만식 영감님다운 겁니다.
    "아이고, 이 화상아! 죽다 살아나서 한다는 소리가 라면이야? 의사 선생님이 짠 거 먹지 말랬는데!"
    "아, 한 번만! 내 소원이야. 그거 못 먹고 죽었으면 내가 귀신 돼서 구천을 떠돌았을 거야."
    "어휴, 알았어요. 대신 국물은 안 돼. 면만 건져 먹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고 옆 침대 할머니가 웃으며 거듭니다. "아이고, 두 분은 참 금슬도 좋으셔." 그 말에 만식 영감님 얼굴이 벌게집니다.
    "에이, 무슨 금슬은... 이 할망구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내가 얼른 나가는 거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영옥 씨가 물티슈로 입가를 닦아주자 가만히 얼굴을 맡깁니다. 영옥 씨는 영감님의 까칠한 턱수염을 만지며 생각합니다.
    '그래, 이게 사는 거지. 지지고 볶고 싸워도, 내 앞에서 숨 쉬고 말하는 당신이 있는 거. 그게 기적이지.'
    영옥 씨가 슬그머니 영감님의 손을 잡습니다. 영감님은 흠칫 놀라며 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가만히 있습니다. 오히려 거친 손으로 영옥 씨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쥡니다.
    "임자... 고생했어. 놀랐지?"
    무뚝뚝한 목소리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전해집니다.
    "놀라긴... 당신 잘못되면 나 바로 딴 영감한테 시집가려고 했지."
    "뭐? 이 여편네가 진짜!"
    병실 안에 웃음꽃이 핍니다. 겉으로는 툴툴대도 속으로는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는 마음. 그 마음이 링거액보다 더 빠르게 영감님의 몸을 치유하고 있습니다.

    ※ 퇴원 후 공원 산책, 늙고 병든 서로를 부축하며 확인하는 황혼의 사랑 (엔딩)

    드디어 퇴원하는 날입니다. 병원 근처 작은 공원. 아직 다리에 힘이 없는 영감님을 위해 영옥 씨가 부축을 하고 천천히 걷습니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고,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영감님은 지팡이를 짚고, 한쪽 팔은 영옥 씨 어깨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영감님이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면 영옥 씨가 뒤따라갔는데, 이제는 나란히 발을 맞춰 걷습니다.
    "여보, 안 힘들어? 벤치에서 좀 쉴까?"
    "아냐, 괜찮아. 병원 냄새 맡다가 나오니까 천국이 따로 없어."
    두 사람은 벤치에 나란히 앉습니다. 지나가는 젊은 연인들, 유모차 끄는 부부, 뛰어노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세월 참 빠르지?"
    영감님이 먼 산을 보며 한마디 합니다.
    "그러게. 당신 처음 봤을 때 꼿꼿했는데, 이제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다 됐네."
    "당신은 뭐 안 늙었어? 주름살이 자글자글하구만."
    "뭐요? 병원비 도로 물려달라고 할까보다!"

    또 시작입니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1초 만에 웃음으로 끝납니다. 영감님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냅니다. 꼬깃꼬깃한 쌈짓돈, 그날 영옥 씨가 챙겨갔던 전대 속의 비상금입니다.
    "이거... 당신 맛있는 거 사 먹어. 병원에서 나 수발드느라 고생했는데, 고기라도 사 먹어."
    영감님이 영옥 씨 손에 돈을 쥐여줍니다.
    "당신 비상금이라며. 나 몰래 숨겨둔 거잖아."
    "아, 몰라. 죽으면 다 소용없더라. 있을 때 써야지. 당신 옷도 좀 사 입고 그래. 늙은 남편 병수발하느라 꼬질꼬질한 거 보기 싫어."
    말은 퉁명스럽지만, 그게 영감님 식의 사랑 표현이란 걸 이제는 압니다. 영옥 씨는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영감님의 손을 꼭 잡습니다.
    "여보, 우리 앞으로는 싸우지 말자. 아니, 싸워도 되는데... 각방은 쓰지 말자. 그리고 아프면 아프다고 바로 말하기. 참지 않기. 약속해."
    "그래, 알았어. 내가 이번에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와보니까 알겠더라. 내 옆에 남는 건 마누라밖에 없다는 거. 자식들도 다 제 살길 바빠서 가버리고, 결국 내 똥기저귀 갈아줄 사람은 당신뿐이더라."
    "알면 됐어요.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알았다니까. 평생 충성할게."

    영감님이 영옥 씨 어깨에 머리를 기댑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두 노인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집니다. 징글징글하게 싸웠던 지난 50년. 미움도 있었고 원망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을 견뎌낸 건 결국 '사랑'이었습니다. 화려하고 불타오르는 사랑은 아니지만, 낡은 뚝배기처럼 은근하고 식지 않는 그런 사랑 말이지요.
    "여보, 집에 가자. 가서 당신 소원대로 라면 끓여줄게."
    "진짜? 계란 탁 풀어서?"
    "그래, 대신 국물은 딱 세 숟가락만이야."
    두 사람이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섭니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뒷모습이 참 닮았습니다. 굽은 등도, 절뚝이는 걸음도, 서로에게 기울어진 어깨도. 이제 그들은 압니다. 남은 날들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줄 것이라는 걸요. "에이그, 이 웬수!" 하면서도, "그래도 당신이 최고야" 하며 웃으면서 말이지요.

    유튜브 엔딩 멘트

    "어르신들, 오늘 영옥 씨와 만식 씨 부부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듣다 보니 '어라? 저거 우리 집 이야기인데?' 하고 무릎 치신 분들 많으시지요?
    부부란 게 참 묘합니다. 젊을 땐 죽고 못 살아서 만나고, 살다 보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가, 늙으면 죽어도 못 보내는 게 부부라지요. 지금 옆에 계신 배우자 얼굴 한번 보세요. 주름진 얼굴, 굽은 등, 밉상인 말투... 그래도 내가 아프면 제일 먼저 달려와 줄 사람, 결국 그 사람 하나뿐입니다.
    오늘 밤에는 쑥스럽더라도 영감님, 할멈 손 한번 슬그머니 잡아보세요. 그리고 '고생했다, 고맙다' 말 한마디 건네보십시오. 그 한마디에 묵은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질 겁니다.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저는 다음에 더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부디 백년해로하시고 강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