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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선당 뒷뜰의 신당 — 무고의 옥 『숙종실록』

    희빈 장씨가 거처 취선당 서쪽에 신당을 차려두고 무녀를 불러 왕비를 저주했다는 고변이 올라옵니다. 숙종은 친국 끝에 장씨에게 자진을 명하고 관련 궁인·무녀를 처형했는데, 고변자가 경쟁자인 숙빈 최씨 측이었다는 점에서 조작 가능성 논쟁이 지금도 이어집니다. 대본에서는 '물증(신당·인형)은 있었으나 동기는 끝내 불분명'이라는 긴장을 살리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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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트로:

    1701년 가을, 복위된 지 불과 칠 년 만에 인현왕후가 원인 모를 괴질로 세상을 떠납니다. 왕비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창경궁에서, 숙종의 마음을 흔드는 충격적인 밀고가 올라옵니다. 왕비의 자리를 빼앗기고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가 자신의 처소인 취선당 뒤뜰에 은밀히 신당을 차려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해 죽였다는 것이었지요. 밀고를 한 인물은 다름 아닌 장씨의 최대 경쟁자, 숙빈 최씨였습니다. 과연 취선당의 신당은 왕비를 죽이려는 저주의 장소였을까요, 아니면 아들의 쾌유를 빌던 어미의 눈물이 정치적 음모와 맞물려 빚어낸 비극이었을까요?

    ※ 1: 인현왕후의 기이한 죽음

    숙종 이십칠년 신사년 팔월 열나흘날, 가을비가 처량하게 내리던 창경궁 경춘전 안에서 마침내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칠 년 전 갑술환국으로 폐서인의 설움을 딛고 다시 중전의 자리에 복위되었던 인현왕후 민씨가,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끝내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중전마마! 중전마마, 어찌 이리 허망하게 눈을 감으시나이까! 망극하옵니다, 마마!"

    어전 내관들과 궁녀들이 머리를 풀고 대청마루에 엎드려 통곡하는 가운데, 인현왕후의 차가워진 손을 붙잡고 앉아 있던 임금 숙종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굵은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한때는 희빈 장씨의 불꽃 같은 매력에 빠져 이 조강지처를 사가로 내쫓기까지 했던 비정한 지아비였으나, 다시 궁으로 돌아온 뒤 인현왕후가 보여준 한결같은 인내와 쓸쓸한 미소는 숙종의 가슴 한구석에 늘 무거운 부채감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인현왕후의 죽음에는 어의들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큼 석연치 않고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거의 일 년 넘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던 왕비는, 허리와 다리에서 시작된 종기가 온몸으로 번져 살이 썩어 들어가고 진물이 흐르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조선 최고의 명의들이 온갖 탕약과 침술을 다 동원했으나 백약이 무효였고, 왕비는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생기를 빨리기라도 하는 듯 하루가 다르게 시름시름 말라가다 숨이 끊어졌던 것이다.

    '어찌 이리도 허망하게 가신단 말인가. 어의들이 밤낮으로 매달렸건만 병의 뿌리조차 찾아내지 못하다니... 중전이 겪은 그 끔찍한 고통이 정녕 단순한 병마 때문이었단 말인가?'

    숙종이 깊은 상념과 슬픔에 잠겨 빈전을 지키고 있을 때, 경춘전 담장 너머 구중궁궐의 어두운 복도에서는 이미 흉흉하고도 섬뜩한 소문들이 궁녀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독버섯처럼 번져 나가고 있었다.

    "그 이야기 들었어? 중전마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헛소리를 하시면서, 누군가 자기 가슴에 바늘을 꽂는다고 몸부림을 치셨대."

    "쉿, 목소리 낮추어라! 안 그래도 지금 궐 안팎에서 중전마마의 병환이 예사 병이 아니라, 누군가 뒤에서 악독한 주술을 부려 저주한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단다."

    "누군가라니, 지금 내명부에서 중전마마가 돌아가시기를 가장 간절히 바란 사람이 누구겠어? 칠 년 전 왕비 자리를 도로 빼앗기고 취선당으로 밀려나 앉아 밤마다 이를 갈던 그분 말고 또 누가 있겠느냐?"

    궁녀들의 수군거림이 가리키는 곳은 단 한 곳, 바로 창경궁 통명전 뒤편에 자리 잡은 희빈 장씨의 거처, 취선당이었다.

    같은 시각, 취선당 안방에 단정히 앉아 경춘전 쪽에서 들려오는 아득한 곡소리를 듣고 있던 희빈 장씨의 표정은 알 수 없는 미묘한 그림자에 잠겨 있었다. 한때 조선의 국모로서 만인의 우러름을 받았던 그녀였으나, 다시 후궁으로 강등된 뒤 지난 칠 년 동안 그녀는 사실상 취선당이라는 화려한 감옥에 갇혀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다.

    "마마, 경춘전에서 마침내 발상(초상을 알림)을 하였다 하옵니다. 이제 중전마마께서 승하하셨으니, 원자 마마(세자)를 낳으신 우리 마마께서 다시 중전의 자리에 오르시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사옵니까?"

    최측근인 상궁 설향이 눈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제로 인현왕후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현재 조선의 왕세자 이윤(훗날 경종)은 장씨가 낳은 아들이었다. 왕비가 죽었으니 세자의 생모인 장씨가 다시 왕비로 복위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장씨는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늘하게 식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입을 무겁게 하거라, 설향아. 중전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여 서인 대신들이 호락호락 내게 다시 왕비의 옥새를 바칠 것 같으냐? 오히려 중전의 죽음을 빌미로 나와 세자를 흔들 구실을 찾으려 눈에 불을 켤 것이다. 특히나 그 물길어 오던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 년의 눈초리가 요즘 심상치 않으니 취선당 문단속을 더욱 엄히 해야 할 것이다."

    장씨의 직감은 소름 끼치도록 정확했다. 다만 그녀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정적들이 노리는 칼날이 이미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취선당의 가장 깊숙한 아킬레스건, 바로 서쪽 뒤뜰의 '그곳'을 정확히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2: 숙빈 최씨가 쏘아 올린 화살

    인현왕후의 국상이 치러지는 동안 창경궁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둡고 적막했다. 구월의 차가운 밤바람이 빈전의 흰 휘장을 흔들던 늦은 밤, 상복 차림으로 홀로 침전에 앉아 수라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던 숙종에게 내관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아뢰었다.

    "전하, 밤이 깊었사오나 숙빈 자가(최씨)께서 전하께 목숨을 걸고 올릴 긴밀한 말씀이 있다 하시며, 지금 침전 밖에서 석고대죄하듯 엎드려 계시옵니다."

    "숙빈이 이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이란 말이냐? 들라 하라."

    잠시 후, 소복 차림의 숙빈 최씨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침전 안으로 들어섰다. 본래 인현왕후의 처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미천한 무수리 출신이었던 그녀는, 인현왕후가 폐위되어 쫓겨났을 때 홀로 왕비의 생일을 챙기며 눈물로 기도하다가 숙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된 여인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몸에서 왕자 연잉군(훗날 영조)까지 태어났으니, 숙종에게 최씨는 죽은 인현왕후의 분신이자 가장 믿음직한 위안처였다.

    최씨는 어전 앞에 무릎을 꿇자마자, 소리 죽여 흐느끼며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전하... 신첩이 오늘 이 말을 아뢰면 필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줄 아오나, 돌아가신 중전마마의 피 맺힌 원한을 풀어드리지 못하면 죽어서도 중전마마의 얼굴을 뵐 수 없기에 이리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왔사옵니다..."

    "원한이라니? 숙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중전이 무슨 원한을 품고 갔단 말이오!"

    숙종이 놀라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다그치자, 최씨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내관들마저 모두 물려달라고 청했다. 방 안에 오직 임금과 단둘이 남자, 최씨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을 거대한 폭탄을 터뜨렸다.

    "전하, 중전마마께서는 결코 천명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옵니다! 중전마마의 온몸에 진물이 나고 뼈가 녹아내리는 듯했던 그 괴이한 병환은, 누군가 지엄한 대궐 안에서 사악한 무녀를 불러들여 밤낮으로 중전마마를 저주하여 죽인 끔찍한 살인이었사옵니다!"

    "무, 무엇이라?! 대궐 안에서 왕비를 저주하여 죽였다고?! 숙빈, 지금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고 하는 소리요? 대체 누가! 누가 그런 천인공노할 대역죄를 저질렀단 말이오!"

    숙종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며 용상이 흔들렸다. 최씨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숙종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망설임 없이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바로... 취선당의 희빈 장씨이옵니다, 전하!"

    "장희빈이...?! 설마, 세자의 어미인 희빈이 그런 짓을 했단 말이오?"

    "예, 전하! 희빈은 칠 년 전 중전마마께서 복위되시고 자신이 후궁으로 강등된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중전마마를 향한 원망과 저주를 멈춘 적이 없사옵니다! 희빈은 자신의 친오라비인 장희재의 첩 '숙정'이라는 요망한 여인을 통해 바깥의 무녀들을 궁 안으로 몰래 불러들였고, 취선당 서쪽 담장 밑 후미진 곳에 은밀히 '신당'까지 차려놓았사옵니다!"

    최씨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마치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것처럼, 취선당 나인들이 밤마다 신당에서 무당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인현왕후의 형상을 한 나무 인형에 바늘을 꽂고, 붕어와 쥐의 눈알을 파내어 취선당과 경춘전 마당 밑에 파묻었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인현왕후가 숨을 거두기 며칠 전에는 취선당 나인들이 모여 "이제 곧 중전이 죽고 우리 마마가 다시 왕비가 될 것이다"라며 술잔을 나누고 자축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숙종은 머리를 거대한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장희빈이... 내 첫아들인 세자의 어미가, 다시 왕비 자리에 오르겠다는 그 더러운 욕심 때문에 무당을 불러 중전을 저주해 죽였단 말인가? 허나... 아무리 장씨가 투기가 심하고 성미가 사납다 한들, 이미 제 아들이 왕세자로 책봉되어 다음 보위가 확정된 마당에 굳이 발각되면 죽을 것이 뻔한 저주 굿을 대궐 안에서 벌였단 말인가?'

    숙종의 머릿속에 한 줄기 의심이 스쳤으나, 최씨는 숙종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전하께서 신첩의 말을 믿기 어려우시다면, 지금 당장 내관과 금군을 보내어 취선당 서쪽 뒤뜰의 별당과 화초장 아래 땅을 파보게 하시옵소서! 그곳에 아직도 신당의 흔적과 저주에 썼던 흉물들이 그대로 묻혀 있을 것이옵니다! 만일 신첩의 말이 거짓이라면 신첩의 목을 베어 무고의 죄를 물으시옵소서!"

    목숨을 건 최씨의 확신에 찬 외침 앞에서, 숙종의 눈빛은 이내 서늘하고도 잔혹한 분노로 뒤바뀌었다. 인현왕후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이제 그 죽음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장희빈을 향한 폭발적인 살의로 변해가고 있었다.

    ※ 3: 땅속에서 나온 저주의 물증들

    이튿날 새벽, 창경궁의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에 숙종은 내관들과 의금부 도사, 그리고 호위 금군들을 직접 거느리고 예고 없이 취선당으로 들이닥쳤다.

    갑작스러운 임금의 행차와 시퍼런 창칼을 든 군사들의 난입에 취선당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소복 차림으로 아침 문안을 준비하던 희빈 장씨는, 댓돌 아래까지 거칠게 걸어 들어온 숙종의 살기 등등한 얼굴을 보고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하, 이 이른 새벽에 군사들을 거느리시고 이 누추한 취선당까지는 어쩐 일이시옵니까?"

    "입 다물라, 이 요망하고 악독한 여인아! 네가 감히 내 눈을 속이고 이 지엄한 대궐 안에서 무슨 천인공노할 짓을 벌였는지, 내 오늘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왔다! 여봐라! 취선당에 있는 상궁 설향과 나인 시영, 파번 등을 한 명도 빠짐없이 포박하고, 지금 당장 취선당 서쪽 뒤뜰의 별당을 수색하라!"

    숙종의 서슬 퍼런 어명이 떨어지자마자, 군사들이 취선당 나인들의 팔을 비틀어 묶고 서쪽 뒤뜰로 우르르 몰려갔다. 상궁 설향과 나인 시영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며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취선당 서쪽 뒤뜰, 평소에는 나무가 우거져 인적이 닿지 않던 작은 전각의 문을 부수고 들어간 내관들은 그 안에 차려진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반 궁녀들의 처소라기에는 너무나 기이한 오색 휘장이 걸려 있었고, 향로에는 아직 식지 않은 향재가 가득했으며, 벽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그림과 종이꽃들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아도 무당이 굿을 하던 '신당(神堂)'의 모습 그대로였다!

    "전하! 과연 이곳 서쪽 별당 안에 무녀들이 쓰던 방울과 부채, 그리고 신당이 차려져 있사옵니다!"

    내관의 보고에 숙종의 얼굴이 시퍼렇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숙빈 최씨가 일러준 대로 군사들이 신당 앞 화초밭과 마당 구석의 돌 밑을 괭이로 파헤치자, 흙더미 속에서 기괴하고 흉측한 물건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오색 비단으로 기묘하게 접어 만든 주머니 속에는 불에 태운 부적의 재와 말라비틀어진 붕어, 죽은 쥐의 뼈다귀, 그리고 사람의 손톱과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고, 그 옆에서는 색동옷을 입혀 바늘로 찔러 놓은 듯한 작은 나무 인형(목우)까지 발견된 것이다!

    "전하! 땅속에서 이런 흉측한 방서(저주 물건)들이 나왔사옵니다!"

    쟁반 위에 놓여 어전 앞으로 바쳐진 진흙 묻은 흉물들을 내려다본 숙종은, 분노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장씨의 앞으로 걸어가 그것들을 발밑에 내던졌다.

    "이래도 발뺌할 테냐, 희빈! 내 눈앞에 이토록 명백한 신당과 저주의 물증이 쏟아져 나왔거늘! 네가 칠 년 전 중전의 자리를 빼앗긴 것에 앙심을 품고, 무녀를 불러들여 밤마다 중전을 저주하여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냐!"

    발밑에 굴러떨어진 오색 비단 주머니와 나무 인형을 내려다본 희빈 장씨는,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내 고개를 바짝 쳐들고 숙종을 똑바로 바라보며 절규하듯 외쳤다.

    "전하! 억울하옵니다! 저 서쪽 별당에 신당을 차리고 무녀를 불러 치성을 드린 것은 사실이오나, 그것은 결코 중전을 저주하기 위함이 아니었사옵니다!"

    "무엇이라? 저토록 흉측한 물건을 묻어놓고도 저주가 아니란 말이냐!"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신첩의 아들이자 이 나라의 국본인 왕세자(경종)께서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잦아 신첩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사옵니다! 어미 된 마음으로 세자의 액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빌기 위해, 세자의 나쁜 기운을 저 인형과 비단 주머니에 옮겨 담아 땅에 묻는 '액막이 치성'을 드린 것뿐이옵니다! 이미 제 아들이 왕세자로 책봉되어 다음 보위가 정해져 있거늘, 신첩이 무엇이 아쉬워서 목숨을 걸고 중전을 저주하겠사옵니까! 이는 신첩과 세자를 시기하는 자들이 어미의 정성을 역모로 둔갑시킨 모함이옵니다, 전하!"

    장씨의 항변은 놀라울 만큼 논리 정연했다. 실제로 왕실에서는 세자나 왕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궁 안에서 은밀히 액막이 굿을 하거나 비단 주머니를 묻는 풍습이 종종 있었고, 무엇보다 장씨의 말대로 그녀의 아들이 이미 확고부동한 왕세자인 마당에 굳이 위험천만한 저주를 할 '동기'가 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인현왕후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고 숙빈 최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린 숙종의 귀에, 장씨의 변명은 그저 교활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닥치거라! 세자의 무병장수를 빌었다는 년이 왜 하필 중전이 병들어 누운 시기에 맞추어 밤마다 방울을 흔들었단 말이냐! 여봐라! 지금 당장 인정전에 친국장을 설치하고, 저 취선당의 상궁과 나인들, 그리고 이 일에 연루된 바깥의 무녀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뼈가 으스러지도록 국문하라!"

    숙종의 피 맺힌 포효와 함께, 조선 왕실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도 미스터리한 피의 숙청, '신사옥사(무고의 옥)'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 4: 엇갈리는 자백과 의문의 동기

    인정전 마당에 차려진 친국장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지옥도를 방불케 했다. 구월의 서늘한 가을바람조차 스산한 피비린내와 살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연기를 미처 흩어놓지 못했다. 상복을 입은 임금 숙종이 인정전 대청 위에 직접 나와 앉아 서슬 퍼런 눈초리로 심문을 지휘하는 가운데, 취선당에서 오랏줄에 묶여 끌려온 상궁 설향과 나인 시영, 파번, 그리고 도성 밖에서 체포되어 온 무녀 최씨와 장희재의 첩 숙정 등이 차가운 형틀 위에 줄줄이 묶여 모진 고문을 받고 있었다.

    시뻘겋게 달궈진 불인두가 여인들의 여린 살갗에 닿을 때마다 치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팔뚝만 한 굵기의 참나무 형장이 정강이뼈를 사정없이 내리칠 때마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여인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대궐 담장을 넘어 한양 도성 하늘까지 메아리쳤다.

    "이 요망하고 간악한 년들아! 아직도 바른대로 주둥이를 열지 못하겠느냐! 취선당 서쪽 뒤뜰에서 파낸 저 오색 비단 주머니와 바늘 꽂힌 나무 인형, 그리고 죽은 쥐와 붕어의 뼈다귀가 다 무엇이더냐! 희빈 장씨가 너희에게 은밀히 명하여 대행왕비(인현왕후)를 저주하여 죽이라 시켰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추관들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졌으나, 친국이 시작된 첫 사흘 동안 취선당 나인들과 무녀의 진술은 한결같이 희빈 장씨의 주장과 일치했다. 정강이 살점이 뜯겨 나가 피가 흥건하게 박석을 적시는 와중에도, 상궁 설향은 부러진 다리를 부여잡고 피를 토하듯 부르짖었다.

    "아이고, 나리! 하늘이 두렵사옵니다! 소인들은 정녕 대행왕비 마마를 저주한 적이 추호도 없사옵니다! 왕세자 저하께서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시고 기력이 날로 쇠하시기에, 희빈 마마께서 어미 된 애끓는 마음으로 세자 저하의 액운을 거두어 달라고 무녀를 불러 치성을 드린 것뿐이옵니다! 땅에 묻은 주머니와 인형 또한 세자 저하의 몸에 붙은 병마를 그 물건들에 옮겨 담아 땅속 깊이 가두어 묻은 '액막이 주머니'이옵니다! 제발 억울함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피눈물을 쏟으며 절규하는 나인들의 말에, 친국장 한쪽에 배석해 있던 영의정 최석정과 우의정 유상운 등 소론 대신들의 얼굴에는 깊고도 무거운 당혹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서로의 눈빛을 은밀히 교환하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음... 가만히 들어보니 저 나인들의 항변이 결코 이치에 닿지 않는 억지 소리가 아니구나. 왕세자께서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여 어의들이 밤낮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은 온 조정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더군다나 희빈 장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이미 자신이 낳은 아들이 왕세자로 책봉되어 다음 보위가 확고부동하게 정해져 있고, 인현왕후는 아들을 낳지도 못한 채 병석에 누워 있던 상태였다. 가만히 숨만 쉬고 기다려도 세자가 즉위하면 저절로 대비의 자리에 오를 여인이, 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발각되면 구족이 멸하고 세자의 자리까지 위태로워질 저주 굿을 대궐 안에서 벌였단 말인가? 물증인 신당과 주머니는 분명히 나왔으나, 그것이 왕비를 죽이려는 저주였는지 세자를 살리려는 어미의 기복(祈福)이었는지는 범행 동기가 참으로 불분명하고도 모호하도다!'

    실제로 그러했다. 모든 범죄에는 마땅히 그 위험을 감수할 만한 뚜렷한 동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는 '신당과 파묻힌 물건'이라는 자극적인 물증만 덩그러니 존재할 뿐, 장희빈이 왜 그런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동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인현왕후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은 숙종과, 이 기회에 장희빈과 남인 세력은 물론 왕세자를 지지하는 소론 세력까지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서인 노론 측 추관들에게 그런 이성적인 의심은 통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취선당에서 괴이한 물건들이 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였고, 이제 필요한 것은 그것을 '인현왕후 살해의 증거'로 못 박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궁녀들의 자백뿐이었다.

    대청 위에서 심문을 지켜보던 숙종이 용상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직접 소리쳤다.

    "저 악독한 년들이 아직도 매가 부족하여, 세자의 액운을 막으려 했다는 요사스러운 거짓말로 과인을 기만하려 드는구나! 세자를 위한다는 핑계로 국모 시해의 대죄를 덮으려 들다니, 더욱 가증스럽도다! 여봐라! 저년들에게 지금 당장 압슬형(무릎 위에 무거운 돌판과 자갈을 얹고 짓밟아 뼈를 으깨는 형벌)을 가하고, 숨이 넘어갈 때까지 주리를 틀어라!"

    임금의 직접적인 고문 독촉이 떨어지자, 친국장은 아비규환의 도가니로 변했다. 나장들이 나인들의 무릎 위에 날카로운 기왓장 조각을 깔고 그 위로 수십 근짜리 무거운 돌판을 얹은 뒤, 양쪽에서 장정들이 올라타 발로 굴렀다.

    "으아아아악! 살려주십시오! 제발 죽여주십시오!"

    무릎뼈가 가루가 되어 허연 뼈 조각이 살갗을 뚫고 튀어나오는 끔찍한 압슬형이 나흘 밤낮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지옥의 고통 앞에서, 마침내 도성 밖에서 불려 왔던 무녀 최씨와 나인 시영, 파번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산 송장이나 다름없어진 그들은,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추관들이 유도하며 불러주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거짓인지 진실인지 모를 자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그만... 제발 돌 좀 내려주옵소서! 다 말씀드리겠사옵니다... 희빈 마마께서... 중전마마가 빨리 돌아가셔야 다시 왕비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하시며, 중전마마의 침전인 경춘전과 통명전 쪽을 향해 활을 쏘고 나무 인형을 묻으라 시켰사옵니다... 중전마마의 명줄을 끊어달라고 하루에 세 번씩 빌었사옵니다..."

    "오호라! 이제야 천인공노할 진상이 낱낱이 밝혀졌구나! 추관은 지금 저년들의 자백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국문 일기에 기록하라!"

    노론 측 추관들은 쾌재를 부르며 붓을 놀렸다. 하지만 그 피로 쓰인 자백이라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투성이였다. 어떤 나인은 저주 인형을 취선당 화초장 밑에 묻었다고 했고, 어떤 나인은 인현왕후가 머물던 통명전 대청마루 밑에 묻었다고 자백했다. 그런데 정작 금군들을 보내어 그들이 지목한 통명전 마루 밑과 경춘전 주변 땅을 다 파헤쳐 보았을 때는, 인형은커녕 뼈다귀 조각 하나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고변을 올린 숙빈 최씨 측 궁녀들이 취선당 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너무나 소상히 알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오직 취선당 뒤뜰에서만 물증이 나왔다는 점은 혹시 누군가 밖에서 몰래 저주 물건을 가져다 심어놓았거나, 세자를 위한 액막이 굿판에 슬쩍 불순한 물건을 섞어 넣었을 가능성조차 의심케 했다.

    그러나 숙종은 자백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허술한 자백이 나중에라도 번복될까 봐 두려웠던지, 자백을 마친 무녀와 설향, 시영 등 핵심 궁녀들을 그 자리에서 즉시 수레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에 처하라는 추상같은 어명을 내렸다. 사건의 진실을 증언할 수 있는 모든 입이, 그렇게 권력의 칼날 아래 영원히 봉해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 5: 세자를 살리기 위한 선택인가

    취선당의 궁녀들과 무녀, 그리고 희빈의 친오라비인 장희재의 처첩들까지 무더기로 처형당한 뒤, 시월의 창경궁에는 낙엽 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서늘하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제 온 조선 조정의 시선은 단 한 곳, 문이 굳게 잠긴 채 금군들에게 겹겹이 포위되어 있는 취선당의 주인, 희빈 장씨의 처분 문제로 쏠렸다.

    시월 초닷샛날 밤, 인정전 뒤편의 편전인 선정전에서는 임금 숙종과 삼정승, 그리고 육조의 판서들이 모인 가운데 왕실의 운명을 가를 숨 막히는 어전 회의가 열렸다.

    먼저 왕세자 이윤(경종)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 선 소론의 영수, 영의정 최석정과 우의정 유상운이 관모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이마에서 피가 나도록 대청 바닥을 찧으며 간언을 올렸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희빈 장씨가 지엄한 대궐 안에 신당을 차리고 무녀를 불러들인 죄는 법도에 비추어 지극히 무거우나, 그것이 정녕 대행왕비를 해하려는 악독한 저주였는지는 고문에 못 이긴 궁녀들의 엇갈린 자백 외에 명확한 실체가 없사옵니다! 통명전 밑에 묻었다는 흉물은 끝내 나오지도 않았고, 어미가 허약한 아들의 액운을 막으려 했다는 항변 또한 일리가 있사옵니다!"

    최석정이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자, 유상운이 뒤를 이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전하! 무엇보다 희빈 장씨는 다른 후궁들과 다르옵니다! 희빈은 이 나라의 국본이자 다음 보위를 이으실 왕세자 저하를 낳은 친어미이옵니다! 예로부터 제왕의 가문에서 세자의 생모를 죽이는 일은 없었사옵니다. 만일 지금 전하께서 어미에게 사약을 내려 죽이신다면, 장차 보위에 오르실 열네 살 어린 세자 저하의 가슴에 얼마나 씻을 수 없는 피멍과 대못이 박히겠사옵니까! 어미가 대역죄인으로 사사되었다는 굴레를 씌우시면, 세자 저하의 왕권 또한 흔들릴 것이오니 부디 세자 저하를 생각하시어 희빈의 목숨만은 살려 도성 밖으로 내치는 데 그치시옵소서!"

    소론 대신들의 피 맺힌 호소에 편전 안이 술렁거렸다.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어미의 목숨만은 살려야 한다는 명분은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결코 가벼운 논리가 아니었다.

    그러자 반대편에 도열해 있던 좌의정 이세백과 민진후(인현왕후의 친오라비) 등 서인 노론 대신들이 기다렸다는 듯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소론을 맹공격했다.

    "전하! 지금 영의정 최석정과 유상운의 말은 군신의 의리를 저버리고 역적을 비호하는 망언이옵니다! 이미 취선당 땅속에서 오색 주머니와 나무 인형이라는 명백한 저주의 물증이 쏟아져 나왔고, 나인들이 입을 모아 자백을 하였거늘, 단지 세자의 생모라 하여 국모를 시해한 천인공노할 대역죄인을 살려둔단 말씀이옵니까!"

    민진후가 피눈물을 흘리며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소리쳤다.

    "전하! 춘추의 법도에 '모친이 부왕이나 적모를 해하면 아들과의 인연은 그 즉시 끊어진다(모자절도의)'고 하였사옵니다! 희빈은 국모이신 대행왕비를 저주하여 죽인 순간 이미 세자 저하의 어미가 아니라 종묘사직의 원수일 뿐이옵니다! 만일 지금 저 요망한 여인을 살려두신다면, 훗날 전하께서 천세를 누리신 뒤 세자께서 즉위하셨을 때 희빈이 다시 대비의 자리에 앉아 수렴청정을 하며 온 조정을 피바다로 만들 것이 불 보듯 뻔하옵니다! 종묘사직의 만년대계와 억울하게 승하하신 중전마마의 원한을 풀기 위해 당장 희빈에게 사약을 내리시옵소서!"

    양측 대신들의 고함과 통곡 소리가 선정전 대들보를 뒤흔드는 동안, 높다란 용상 위에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숙종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굳게 다문 입술 뒤, 차갑게 식은 머릿속에서는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비정하고도 냉혹한 제왕의 주판알이 튕겨지고 있었다.

    '취선당 서쪽 뒤뜰에서 나온 그 물건들... 그것이 정말로 중전을 죽이려는 저주였는지, 아니면 장씨의 말대로 허약한 세자의 액운을 막으려는 어미의 어리석고도 무지한 굿판이었는지... 솔직히 내 눈과 귀로도 백 프로 확신할 수는 없다. 고변을 올린 숙빈 최씨가 장씨를 완전히 밟아버리기 위해, 세자를 위한 액막이 굿을 중전 저주 사건으로 교묘하게 침소봉대하여 덫을 놓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

    숙종은 결코 어리석은 군주가 아니었다. 열네 살에 즉위하여 수십 년간 노련한 신하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환국(換局)을 거듭하며 왕권을 강화해 온 냉혈한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다. 그는 이번 사건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것, 즉 물증은 있으나 동기가 약하고 자백이 엉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숙종에게 '그날 밤 신당의 진실이 무엇인가'는 이미 아무런 중요성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죽고 난 뒤 벌어질 미래의 권력 구도였다.

    '만일... 만일 내가 지금 소론의 말을 들어 장씨의 목숨을 살려둔 채로 후일 눈을 감게 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세자는 성품이 한없이 유순하고 병약한 반면, 그 어미인 장씨는 기가 세고 원한이 깊으며 그 친정 무리들은 탐욕스럽기 짝이 없다. 내가 죽고 세자가 보위에 오르는 날, 살아남은 장씨가 대비가 되어 왕실의 어른으로 군림한다면? 그날로 인현왕후를 따르던 서인 대신들의 목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갈 것이고, 오늘 고변을 올린 숙빈 최씨와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아들 연잉군(훗날의 영조)은 장씨의 손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약을 마시고 죽어 나갈 것이 아니더냐!'

    숙종의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가 흘렀다. 결국 아비인 숙종을 움직인 것은 죽은 본처를 향한 애절한 순애보도, 귀신의 저주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었다. 병약한 세자 대신 장차 왕실의 또 다른 기둥이 될 어린 연잉군과 숙빈 최씨를 보호하고, 외척인 장씨 일가가 다시는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그 싹을 영원히 도려내려는 제왕의 무서운 결단이었다.

    '물증은 이미 충분하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역사는 취선당에서 저주 물건이 나왔다는 사실만을 기억할 것이다. 내 아들이 다스릴 왕실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어미인 장씨라는 위험한 불씨는 지금 내 손으로 완전히 꺼버려야만 한다!'

    마침내 숙종이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눈빛은 한때 장희빈을 세상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던 사내의 눈빛이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절대군주의 서릿발 같은 눈빛이었다.

    "모두 입을 다물라! 과인의 뜻은 이미 정해졌느니라! 세자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국모를 해한 대역죄인을 끝까지 비호하려는 영의정 최석정과 우의정 유상운을 지금 즉시 파직하여 도성 밖으로 내쫓으라! 그리고... 취선당의 죄인 장씨를 차마 형장에 끌어내어 목을 베지는 못하겠으니, 과인이 마지막 은전을 베풀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자진(自盡)'의 명을 내리노라! 의금부는 지체 없이 사약을 달여 취선당으로 가져가라!"

    시월 초파일 밤, 숙종의 입에서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판결이 떨어졌다. 세자는 어미를 살려달라며 선정전 돌계단 아래에서 이마가 깨지도록 빌었으나, 아비 숙종은 끝내 아들의 피눈물을 외면하고 등을 돌렸다.

    ※ 6: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자진하라는 어명이 떨어진 지 사흘째 되던 시월 초열흘날 밤, 창경궁의 밤하늘에는 별빛 하나 없이 짙고 어두운 먹구름만이 낮게 깔려 있었다. 금군들의 삼엄한 포위 속에 고립된 취선당 마당 한가운데에는, 하얀 소반 위에 올려진 사약 사발 세 개가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이십여 년 전, 역관 가문의 중인 출신 궁녀로 입궁하여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모로 임금 숙종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았던 여인. 왕자의 탄생과 함께 희빈을 거쳐 마침내 조선의 국모인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불꽃 같은 여인 장옥정은, 이제 칠흑 같던 머리를 산발하고 초라한 흰 소복을 입은 채 취선당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버티고 있었다.

    "희빈 자가! 어명이옵니다! 이미 사흘이 지났사오니,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마시고 방문을 열어 전하의 명을 받드시옵소서!"

    마당에 서 있는 의금부 도사와 어전 내관의 차가운 독촉 소리가 문창호지를 때렸다. 그러나 방 안에서 들려오는 장씨의 목소리는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것이라기에는 너무나도 한이 맺히고 매서웠다.

    "내가 어찌하여 죽어야 한단 말이냐! 나는 결코 중전을 저주하여 죽이지 않았다! 내 아들이자 이 나라의 왕세자가 밤마다 병마에 시달리기에, 어미 된 마음으로 아들의 무병장수를 빌었을 뿐이거늘 그것이 어찌 사약을 마실 대역죄가 된단 말이냐! 숙빈 최씨 년의 간악한 세치 혀와 서인 놈들의 모함에 속아, 어찌 한때 부부였던 정과 아들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내 말을 한 번도 들어주지 않으신단 말이냐!"

    장씨는 문고리를 두 손톱이 다 부러져 피가 배어 나오도록 움켜쥐고는, 대궐이 떠나가라 피를 토하듯 마지막 소원을 외쳤다.

    "전하! 야속하고도 무정하신 전하! 정녕 내가 죽어야만 전하의 속이 시원하시다면 내 기꺼이 죽어드리리다! 허나, 내가 죽어 황천길로 가기 전에 어미 잃고 홀로 이 승냥이 같은 조정에 남겨질 내 아들, 내 불쌍한 세자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보게 해 주소서! 내 손으로 내 아들의 야윈 뺨을 한 번만 만져보고 죽게 해 주소서! 세자를 보기 전에는 내 결코 내 발로 나가 이 사약을 마시지 않을 것이오!"

    어미의 찢어지는 절규는 취선당 담장을 넘어 창경궁의 밤하늘을 갈기갈기 할퀴어 놓는 듯했다. 실제로 그 시각, 동궁전에 갇혀 있던 열네 살 왕세자 이윤은 어미가 사약을 받는다는 소식에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취선당으로 달려가려다 내관들에게 가로막혀 땅바닥을 구르며 오열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전 침전에 앉아 있던 숙종은 끝내 모자의 마지막 상봉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체되자, 숙종은 내관들을 보내어 "강제로라도 문을 부수고 사약을 먹여 오늘 밤 안으로 숨을 끊어놓으라!"는 비정한 밀명을 내렸다.

    "어명이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죄인에게 사약을 집행하라!"

    내관의 호령과 함께 건장한 나장들과 상궁들이 달려들어 취선당의 방문을 통째로 부수고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놈들아! 썩 물러가지 못할까! 감히 이 나라 왕세자의 생모인 내 몸에 더러운 손을 대려 하느냐! 놓아라,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장씨는 맹수처럼 달려드는 나장들과 상궁들에게 맞서 온몸으로 발버둥을 쳤다. 비녀가 부러지고 하얀 소복이 갈기갈기 찢어졌으나, 장정 수십 명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장씨는 팔다리가 바닥에 짓눌린 채 강제로 입에 대나무 대롱이 물려졌고, 시커멓고 독한 사약이 세 사발이나 연거푸 그녀의 목구멍 속으로 거칠게 부어졌다.

    "세자야... 내 아들아... 어미가 없더라도 부디... 부디 살아남아야 한다...!"

    오장육부를 갈기갈기 타들어 가게 만드는 극약의 고통 속에서, 장씨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시뻘건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내고는 마루 위로 쓰러졌다. 열세 살에 궁에 들어와 마흔세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 온 조선을 사랑과 증오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희빈 장씨가 자신이 아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던 바로 그 취선당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시각, 창경궁의 또 다른 전각인 보경당의 창가에서는 한 여인이 어둠 속에 서서 취선당 쪽에서 들려오던 마지막 비명 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바로 이 거대한 옥사의 시작을 알렸던 고변자, 숙빈 최씨였다.

    최씨는 창문을 닫으며 어둠 속에서 누구도 보지 못할 희미하고도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방 아랫목 비단 이불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자신의 여덟 살 아들, 연잉군(훗날의 영조)의 곁으로 다가앉아 아들의 작은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이제 우리 모자의 목을 조여오던 가장 거대하고 무서운 걸림돌이 사라졌다. 취선당 뒤뜰에서 나온 그 신당과 오색 주머니가 정말로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이었든, 아니면 장씨의 말대로 세자의 액운을 막으려던 어미의 눈물이었든, 이제 와서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역사는 오직 살아남은 승자의 기록만을 진실로 믿는 법이니...'

    그로부터 일주일 뒤, 숙종은 앞으로 다시는 후궁이 왕비의 자리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빈어승후(嬪御陞后) 금지법'을 반포하며 장희빈의 시대를 완전히 역사 속으로 묻어버렸다.

    1701년 가을을 피로 물들였던 '무고의 옥'. 취선당 뒤뜰 땅속에서 나온 그 신당과 나무 인형은 과연 왕비를 죽이려던 악녀의 저주였을까, 아니면 병약한 아들을 살리려던 어미의 간절한 액막이가 경쟁자인 숙빈 최씨의 고변과 숙종의 냉혹한 정치적 계산에 맞물려 빚어낸 거대한 조작극이었을까.

    삼백 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날 밤 취선당의 진실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은 채, 궁궐이라는 화려한 감옥 속에서 스러져 간 여인들의 비정한 운명만을 쓸쓸히 증언하고 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조선야사, 숙종실록에 기록된 '무고의 옥'과 장희빈의 최후 이야기 어떠셨나요? 우리는 흔히 드라마를 통해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해 죽인 천하의 악녀라고만 알고 있지만, 실제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미 아들이 왕세자인 그녀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저주를 할 동기가 부족했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 고변자가 최대 라이벌인 숙빈 최씨였다는 점에서 지금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조작 가능성 논쟁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증은 있었으나 진실은 권력의 안개 속에 묻혀버린 씁쓸한 역사지요.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도 교과서 밖의 숨겨진 역사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